젖소 수소의 새로운 이름… 한우 버금가는 품질 제대로 알리기 나서

소고기라면 한우가 있고 또 수입육, 그리고 다른 종류가 더 있다면? 혹시 ‘육우’!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우유를 마신다. 당연히 젖소에서 짜낸 것들인데 물론 젖소 고기는 ‘맛이 없다’고 정평이 나있다. 우유를 생산하느라 단백질 지방 등 몸 안의 온갖 영양분들을 뺏겨서인지 자연스레 육질이 떨어지기 때문.

그런데 젖소인 암소에게서는 우유를 짜내는데 젖소 중 수소는? 그러고 보니 많은 이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 중 하나다. 바로 이들 젖소 수소들의 새로운 이름은 ‘육우’이다.

육우가 ‘제3의 소고기’로 떠오르고 있다. 한우도 아닌 것이, 또 수입육도 아닌 것이 최근 들어 자신들도 ‘정통 소고기다’며 울음 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물론 육우농가들이 앞장서고 있다.

소고기는 크게 4가지로 나뉜다. 한우 고기와 수입육, 그리고 젖소 고기와 육우 고기다. 농림수산식품부 고시에 따르면 이 중 젖소 고기는 송아지를 낳은 경험이 있는 젖소 암소 고기를 가리킨다. 육우 고기는 ‘육용종, 교잡종, 젖소 수소 및 송아지를 낳은 경험이 없는 젖소 암소에서 생산된 고기와 검역 계류장 도착일로부터 6개월 이상 국내에서 사육된 수입 생우에서 생산된 고기’를 지칭한다.

육우에 대한 정의가 조금 복잡하게 들리지만 풀어 보면 국내법상 한우 고기와 젖소 고기를 제외한 모든 국내산 소고기를 통칭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암소가 우유소로 이용되는 홀스타인종의 수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래서 간단히 육우 하면 ‘얼룩무늬를 가진 (젖소 종류지만 수컷이어서 젖을 짜낼 수 없는) 수소’로 보면 정확하다.

특히 최근에서야 ‘육우’가 일반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대내외 소고기 시장 변화와 정부 정책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 지난 해 미국산 소고기 수입 시장이 개방되면서 소고기의 원산지 표시제가 시행되고 지난 6월부터 소고기 이력추적제가 더불어 시행되고 있기 때문.

특히 소고기 이력추적제의 실시로 육우는 더욱 스스로의 정체성을 갖게 됐다. 송아지가 출생하면 고육 개체식별번호가 부착된 국가공식 귀표를 부착하고 생산에서 도욱, 가공, 판매 단계까지 모든 유통 경로를 기록 관리하도록 해서다.

물론 이전부터 소고기는 국내산일 경우 한우, 육우, 또는 젖소로 소고기의 종류를 구분해 표기하도록 하고 있다. 더불어 이력추적제 실시와 함께 도축장에서부터 육우는 아예 녹색 도장을 받고 한우는 적색, 젖소는 청색 도장이 찍히도록 되면서 구분은 더욱 명확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 부분. 육우 고기라는 단어가 그간 일반에 알려지거나 인식된 부분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엄연히 시장에 존재하는 고기임에도 육우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거나 회자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다.

이 같은 현실은 육우에 대한 잘못된 편견도 적잖이 작용한 덕분이다. 한마디로 떳떳이 ‘육우’라고 자신 있게 자신을 드러내 놓지 못한 결과인 것.

흔히 젖소는 우유 생산이 목적인 소로 역시 식용으로도 판매된다. 우유소로서 수명이 다 된 경우 도축해 판매하는데 식용으로는 전혀 문제가 없으나 아무래도 육질이 떨어져 주로 가공육 등에 사용돼 온 것. 이런 인식은 비록 수컷이지만 같은 품종인 수소, 즉 육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때문에 젖소 품종인 육우는 그간 ‘자신 있게 자신의 신분증’을 내밀지 못해왔다. 자칫 젖소로 오해받을 수도 있고 그럴 경우 소비자들이 ‘맛 없다’고 외면하거나 시장에서 제 값을 받지 못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육우 소고기는 ‘(수컷이라) 우유를 짜내지 못해서인지’ 비교적 높은 육질을 자랑한다. 그래서 실제 시장에서 아예 ‘한우’로 둔갑해 팔리면서 높은 인기(?)도 누려왔다.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서울 강남의 유명 고깃집들이 ‘한우가 아닌 한우를 팔다’가 적발됐다는 보도가 가끔 나왔는데 이 경우 대부분은 한우 대신 육우를 사용한 케이스다. 일부 유통업자들은 육우를 한우라고 속여 팔며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는 역으로 육우가 ‘한우에 비견할 만큼’ 육질이 우수하다는 얘기로도 통한다. 적어도 한우 소고기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는 증거이기도 한 것. 역으로 육우 고기는 그간 젖소 고기 또는 수입소고기로 오인되기도 하면서 가치가 평가절하되는 수모도 겪어왔다.

이에 대해 이승호 한국낙농육우협회장은 “그동안 국내 소고기 시장은 모든 것이 한우 위주의 틀 속에서만 짜여져 육우 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저조하거나 왜곡된 것이 사실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한다.

그래서 한국낙농육우협회를 비롯한 육우 농가들은 최근에서야 ‘육우 제대로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이제는 육우에 대한 정확한 사실을 소비자들에게 알려줘야만 하는 시점에 다다랐고 그럼으로써 육우도 시장에서 ‘정당한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서다.

(좌) 축사에서 사료를 먹고 있는 육우 (좌) 육우 고기

“한 마디로 육우는 맛있고 안전하며 가격은 경제적인 우리 소고기입니다. 한우와 똑 같은 방식으로 비육되고 질 좋은 비육사료를 먹여 출하되기 때문에 한우의 품질과도 크게 다를 바 없지요.” 이승호 육우협회장은 “고가의 한우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중 서민층 소비자가 믿을 수 있는 국내산 소고기를 저렴하게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육우”라고 단언한다.

실제 가격에서도 육우 고기는 한우의 60~70%대, 수입 소고기는 육우 고기의 60~70%대 수준에 형성되고 있다. 가격 측면에서 수입육과 직접적인 경쟁이 가능하고 한우와 수입육 시장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통해 한우를 포함한 전체 국내 소고기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육우 농가들의 ‘논리적’ 근거다.

특히 육우는 수입육에 대해서는 ‘서슴지 않고’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국내산 소고기는 한우건 육우건 도축 즉시 냉장 유통돼 신선하고 위생적이라는 주장. 반면 수입육은 대부분 냉동으로 수입돼 냉동과 해동을 반복, 맛과 신선도에서 떨어진다고 문제점을 제기한다. 수입 냉장육의 경우에도 수출국에서 도축 후 가공, 검역, 선적, 장거리 이동, 국내 도착 후 또 다시 검역, 이동 등을 거쳐 국내 판매대에 오르는 데만 30~45일이 소요된다는 것.

특히 육우 등 국내산 소고기는 이제 소고기 추적이력제 등 실시로 엄격한 관리를 받기 때문에 같은 등급의 수입 소고기와 비교해 BSE 등 안전성 논란에서도 더 유리하다는 것이 육우 농가들의 판단이다.

또 하나 육우가 자신의 신분증을 떳떳하게 내밀 수 있는 커다란 이유는 ‘한우에 버금갈 만한 품질’이다. 그간 육우의 등급이 한우보다 못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들어 2등급 이상의 육우 고기 생산 비율이 부쩍 높아지고 있다는 것.

축산물등급판정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한우는 1등급 이상이 54%였고 육우는 2등급 이상이 43%로 육질의 품질은 다소 처지는 편이다. 바로 육우가 ‘한우 보다는 아직 못하다’며 ‘겸손하게’ 머리를 숙여야만 하는 이유다.

“국내 도축 두수 중 육우 비율은 15%나 됩니다. 사육 농가도 6000여 가구에 달할 만큼 경제 규모도 크죠. 특히 육우와 한우는 서로 경쟁 관계가 아니라 각각의 소비층을 가지고 수입육에 대응해 국내 소고기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하는 상호 보완 공존관계입니다.”

이승호 육우협회장은 “낙농의 산물이 수송아지(육우)는 자연적인 필연의 결과물”이라며 “한우가 토종 최고급육으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면 육우는 대중적 고급육으로 시장에서 앞으로 자리매김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시했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