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5~6년새 흉부·정형·신경외과·비뇨기과 등 진출 활발

1-여의사 불모지로 불리는 성형외과 의사를 꿈꾸는 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레지던트 송정윤 씨와 지도교수인 김석화 교수
2-여자 외과의사의 대모 격인 서울대 박귀원 교수는 소아 대장암 수술 분야에서 인정받고 있다. 자상한 성격으로 환자와 가족들이 매우 잘 따르는 의사로도 정평이 나있다. 그는 외과 전문의를 희망하는 여의사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3-서울대병원 성형외과 레지던트 송정윤 씨

여성의 도전과 성취가 곳곳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남성주의 문화가 강한 의사 사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여성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제 ‘OO의과대학의 수석입학이 여학생’이라든가 ‘대학병원 인턴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는 소식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최근 5~6년 새 흉부외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비뇨기과 등 여자는 불가능하다고 인식되던 외과분야에도 여의사의 진출이 늘고 있다.

여자 흉부외과 레지던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 <봉달희>나 <뉴하트>의 인기도 금녀의 벽을 뛰어 넘은 여의사에 대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반영한다. 남자들도 기피하는 위험하고 힘든 수술을 거침 없이 해내며 생명을 구하는 여자 외과 의사들.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그들을 드라마가 아닌 실제 삶에서 만나본다.

“힘들어도 보람 있는 외과 의사 할래요”

강남에 가면 눈에 밟히는 게 성형외과 간판이지만 그 중 여자 성형외과 전문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성형외과 하면 쌍커풀 수술처럼 간단한 것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 이 분야의 수술이 결코 녹록치 않기 때문이라고 해당 파트의 전문의들은 말한다.

특히, 선천적 얼굴기형이나 사고로 인한 손가락 절단 등을 다루는 치료성형은 집도의에 고도의 기술은 물론, 초인적 끈기와 순발력 그리고 담력을 요구한다.

서울대병원 성형외과는 4년 전, 처음 여자 전공의(레지던트)를 받아들였다. 현재는 18명의 전공의 가운데 3명이 여자다.

이 병원 레지던트 2년차인 송정윤(27 세) 씨는 “성형외과는 수술 영역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굉장히 광범위한 게 매력”이라며 다양한 수술을 한다는 것이 역동적이고 재미있어 이 분야를 택했다고 말한다.

익히 알려진 대로 성형외과는 요즘 의대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전공분야로 경쟁이 치열하다. 그래서 성형외과 전공의가 되려면 우선 학교성적이 뛰어나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명감도 남달라야 한다. 의과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외과 의사를 꿈꾼 그는 여기에 한 가지 덕목을 더 추가했다. 바로 수술 강행군에도 꿋꿋이 버틸 수 있는 체력이다. 장시간 수술의 경우, 하루종일 이어지기도 한다.

“학생 때는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을 하며 기본 체력을 단련해뒀어요. 지금도 틈틈이 운동을 하며 관리하고 있고요.”

혹시 함께 훈련 받는 남자 동료들이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차별도 배려도 없는 그냥 동등한 대우”라고 답했다.

그러나 환자들은 젊고 수술 경험이 부족한 전공의에다 여자라는 점 때문에 그를 신뢰하지 않는 일이 많다.

“현장에서 수술해 보니, 수술 자체가 힘든 것보다 여의사라고 신뢰하지 않는다거나, 응급실 환자들이 언성을 높이고 신경질을 많이 내는데, 거기에 잘 대처하는 게 어려워요. 특히 얼굴을 다쳐 오는 환자들은 얼굴에 흉터가 남을까봐 신경이 매우 날카로워져 있거든요. 환자의 상황을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해주면 여의사라고 꺼려하던 환자들도 좋아해 줍니다”

송 씨는 전공의 과정을 마친 후에도 학교에 남아 얼굴기형 등을 계속 치료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하고 있다.

“훌륭한 외과의사, 남녀 구분 없어”

선천적 얼굴기형 치료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가로 꼽히는 김석화(54세) 서울대병원 소아성형외과 교수는 “전공의 시절, 2년 여자 후배가 성형외과를 하겠다고 했지만 남자들이 거세게 반대해 그 후배는 꿈을 접어야 했다”며 격세지감을 드러냈다.

“당직도 많고, 힘들고 겁나는 상황이 많아 당시엔 여학생은 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던 거죠. 옛날엔 여자가 리더십이 부족하고, 체력도 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자 전공의와 일해 보니 그건 기우였어요. 웬만한 남자보다 체력도 좋고, 일도 열심히 잘해요. 아직 단점은 모르겠습니다.”

서울대병원 성형외과에 4년 전, 처음 여자 전공의가 입국한 이래 매년 1명씩 입국하고 있다. 외과의사의 꿈을 키우는 여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방증이다.

김 교수는 “의료환경이 환자중심으로 바뀌고 있다”며 “이제는 환자가 수술법을 미리 공부하고 와서 의사에게 주문하는 식이다. 보통 외과의사 하면 남성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 않다. 고집스럽게 주장하는 남자 의사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여의사가 훨씬 유리한 시대”라고 덧붙였다.

그는 “외과의사를 남자와 여자, 성으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남녀에 상관 없이 우수한 두뇌와 뛰어난 손재주, 돌발상황에 신속히 판단하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판단력과 민첩함이 있다면 외과의사에 적합한 인재”라고 말했다.

혹독한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외과 전문의가 됐다고 꿈을 이룬 것은 아니다.

“외과의사는 끊임없이 학문적인 연구를 계속하고, 새로운 치료법을 익히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어요. 창조적인 아이디어도 필요하고요.”

여의사 전성시대 열리나

금녀의 분야인 외과에 여의사가 뛰어든 지는 30여 년이 흘렀다. 32년 전,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박귀원 교수(60세)가 당시 외과를 지원한 유일한 여성 전공의였고, 1980년 서울대 의대 외과에 첫 여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외과에 지원하는 여의사가 간혹 있었으나, 그야말로 가물에 콩 나듯 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외과를 지원하는 여성도, 이들을 받아들이는 곳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최근 5~6년 전부터 외과를 지원하는 여자 전공의가 늘고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전공의 과정을 마치고 대학 교수로 임용돼 활동 중이다.

의료정보 사이트 코레메디 닷컴(www.koremedi.com)이 지난해 여름, 고려대 안산 정형외과 왕준호 교수의 말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재 국내 대학병원에서 정형외과 여자 교수는 2~3명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물론 전체 정형외과 교수와 전공의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철옹성 같은 금녀의 벽이 무너지고 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밖에 신촌 세브란스 병원 흉부외과 이삭 교수 등 흉부외과에도 여교수가 2~3명 가량 재직 중이다.

연세의료원 심장혈관센터에서 이삭 교수를 지켜본 한 외과 전문의는 " 이 교수는 환자의 피가 갑자기 뿜어져 나오는 등 돌발상황에서도 남자 의사들보다 훨씬 의연한 태도로 대처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윤하나 교수는 국내 최초의 비뇨기과 여의사다.

요즘 대학병원에서 교육받는 인턴의 절반이 여성인 점, 2007년 서울대의대 재학생 가운데 절반 이상이 여성인 점, 여성의 사회진출이 보다 활발해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등을 감안하면 여자 외과의사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그러나 단순한 양적 증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외과가 생명의 위중한 부분을 다루는 만큼 얼마나 실력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의사가 배출되느냐가 관건이다.

의료계 내부는 물론 사회적 차원에서 보다 열린 마음으로 여의사를 받아 들이고, 양성하는 열린 분위기가 형성돼야 할 것이라는 게 의료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4-강남세브란스 유방외과 이승아 교수
5-강남세브란스 외과 박윤아 교수
6-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남세브란스 외과 박정수 과장, 이승아 교수, 박윤아 교수

인정받는 여자 외과의사로 사는 법

강남 세브란스 병원 외과 박윤아(35), 이승아(34) 교수는 훈련과정을 끝내고 이제 막 외과 전문의로 발돋움하기 시작한 새내기들이다.

6~7년 전, 이들이 전공의 코스를 밟을 때만 해도 외과에 여성 전공의는 아주 드물었다.

"지금은 외과에 여자 레지던트가 많아졌지만 그때만 해도 안 그랬어요. 여자 외과 선배들 가운데는 실력이 뛰어난데도 교수로 뽑아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뿐 아니라, 외과에서 여자 레지던트를 받을 땐 수련기간 중엔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혼 포기 각서'까지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외과 내 여성차별이 뚜렷이 존재했다는 증거인데, 그래도 외과의사가 너무 되고 싶었어요."

대장암 전문가인 박 교수는 "의사가 아닌 다른 직업을 해 봤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있지만, 의사 중에서 외과가 아닌 다른 분야를 전공했더라면 하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외과에 대한 애착이 크다.

힘들고, 위험하고, 어렵다는 외과 의사, 어떤 점이 그렇게 좋을까.

"힘들지만 수술한 환자가 나아서 퇴원할 때 의사로서 느끼는 보람이 얼마나 큰지 몰라요. "

쉽게 일하고, 돈 많이 벌 수 있는 분야의 의사가 됐더라면 이러한 '의사로서의 행복감'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그의 말이다.

유방암 전문의 이 교수 역시 외과의사를 천직으로 여긴다.

"외삼촌이 정형외과 의사인데, 제가 외과를 전공하겠다고 하니까 "여자가 하기엔 너무 힘들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안 된다"며 뜯어 말렸어요. 그래도 하고 싶은 걸 어떻게 해요. 대개 의사들은 경륜이 쌓이면서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는데, 외과 의사는 반대예요. 경륜이 쌓여 가면서 수술 건수가 늘어나는 게 보통이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도 편해질 날을 기대하지 않아요. 힘들지만 외과 의사라는 직업에 정말 만족해요."

이 교수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환자의 모습을 보는 기쁨은 담당 의사가 아니면 모른다"고 말한다.

데이트 할 시간 없지만 그래도 행복해

30대 중반으로 둘 다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으나 아직 미혼이다.

"요즘엔 여자 의사가 신부감으로 인기가 많다던데, 여자 외과의사는 예외에요. 데이트 할 시간도 안 나지만, 맞선이나 소개팅 제안도 거의 안 들어오거든요(웃음). 여자가 외과의사라고 하면 드세고, 씩씩한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가 봐요."

"이 교수나 저나 외과를 전공하기 전까지는 행인에게 길도 못 물어보고, 가게에 가서 점원에게 말도 못 붙일 정도로 소심하고 여린 성격이었어요. 하지만 외과의사를 하다 보면, 그렇게 곱게곱게만 해서는 일이 해결되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아무래도 외과 분야에서 여자가 소수이다 보니, 더 남성스럽게 말하고 행동해야 불이익을 받지 않을 거라는 인식도 생기고요. 자연스레 씩씩하고 괄괄해졌죠."

또, 주중엔 진료에 수술, 강의 준비와 논문 발표, 야간 응급환자 수술 등으로 정신 없이 바쁘다. 주말에도 교대로 수술을 하거나 진료를 봐야 하고, 밀린 잠과 연구를 하다 보면 개인적인 생활을 할 수가 없다.

어지간한 사명감과 일에 대한 열정 없이는 버티기 힘든 일정이다.

"개인시간이 없어도, 맞선이 안 들어와도 저희가 하는 일이 너무 좋고, 행복해요. 그렇지 않으면 외과의사 하기 힘들어요."

외과의사는 인간미 넘쳐야

이 병원 외과 수장이자 갑상선 분야 전문가인 박정수(66세) 교수는 여자 후배들이 힘든 수술을 마친 날이면, 와인 잔을 기울이며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 날은 박윤아 교수가 로봇수술로 고난위도의 대장암 수술을 끝냈다.

박정수 교수: "요즘은 로봇이나 내시경 수술이 발달해서 섬세하고 인내심 많은 여의사가 수술하기 좋은 환경이야. 게다가 의료수준이 높아지면서 수술하기 전에 거의 대부분 예측하고 하잖아. 우리 때는 일단 메스로 수술 부위를 열어서 판단해야 했지만. 무턱대고 메스부터 들이대는 과거 방식에선 여자가 적합하지 않지. 여자 외과의사가 실력을 발휘하기 좋은 여건이고, 제대로 평가해줘야 할 때가 왔어."

박윤아 교수: "네, 그런데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환자들은 여자 외과의사를 신뢰하지 못해요. 여자 의사한테는 수술을 잘 안 받으려고 하죠. 그걸 극복하는 길은 환자에게 실력과 정성을 보여주는 것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시 태어난다 해도 외과의사 될 것

박정수 교수: "그래, 두 사람 모두 잘 하고 있어. 내가 다시 강조하고 싶은 말은 수술은 의사에겐 일상이지만 대부분의 환자와 그 가족들에겐 첫 경험이라는 거야. 의사에게 일상적인 업무라고 해서, 환자에게도 사무적으로 대하면 절대 안 돼. 실력은 기본이고, 진정성이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고. 수술받는 환자와 가족들은 불안해.

나는 아무리 바빠도 수술 들어가기 전에 꼭 환자의 손을 잡아 주고, 따뜻한 말을 건네 준다고. 또, 수술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서도 미리 다 설명해주고. 수술을 마친 후에도 환자를 찾아가서 위로의 말을 전하지. 그러면 환자는 반드시 그 의사를 믿게 돼."

이승아 교수: "저 역시 여의사라고 환자들이 덜 신뢰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아요. 하지만 말씀하신대로 따뜻한 의사가 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껴요. 특히, 유방을 절제해야 하는 젊은 환자들은 수술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남자 의사가 얘기하면, 말을 안 듣다가 비슷한 연령대의 여자 의사가 감정적인 동조를 많이 해주면서 설득하면 대부분 수술을 받더라고요. 수술 후에도 그냥 저와 얘기가 하고 싶다며 찾아오는 환자들이 많아요."

박정수 교수의 진료실은 언제나 전국에서 몰려드는 환자들로 붐빈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갑상선 질환에서 최다 수술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여기에 전공의 교육과 해외 논문 발표 등으로 숨가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지금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인터넷으로 해외 논문을 검색하며, 학문의 흐름을 익히고 있다. 지금껏 정기휴가 한번 써 보지 못했다. 골프 칠 시간도 없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스스로 외과의사라면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후배에게 외과의사로서 성실한 삶을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얘기한다.

박 교수는 "힘들고, 돈도 많이 못 벌었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외과의사를 하겠다"고 한다.

"전공의할 때, 우리 스승이 내가 잘 따라가지 못하면, "너 같은 놈이 무슨 외과의사를 해? 나가서 피부과 의사나 해"라며 꾸중을 했어. 당시엔 그게 가장 모욕적인 언사였지. 그 말을 듣는 날이면 나가서 혼자 술을 푸곤 했어(웃음)."

현 의료계를 비판하는 선배의 말에 신세대인 두 여교수가 동의한다. 30년이라는 긴 세월과 남녀의 차이를 넘어 이들을 하나로 묶는 건 환자의 생명을 구한다는 외과의사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 그리고 휴머니즘이 아닐까.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