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루피의 짧은 만남



북인도의 리틀 티벳으로 불리는 도시 '레'에서 히말라야 산자락을 가로지르는 장장 400km의 스카이 하이웨이. 여행길의 종착지인 스리나가르로 향하는 이 도로의 정식 명칭은 '내셔널 하이웨이1D'다.

이틀을 달려 천길 낭떠러지를 옆에 둔 어느 깊은 산 길목. 지프차 안의 누군가가 외쳤다. "스톱! 경치가 너무 좋아 사진 찍어야 돼요."

카메라를 들고 주변을 서성이는 순간. 지나는 차량을 빼곤 관광객은커녕 인적이라곤 전혀 찾아 보기 힘든 언덕 길 저 윗 편에서 누군가 걸어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작은 체구인데 이런 곳에도 행인이 있나?' 그를 같이 경치에 담고 앵글을 잡느라 조금 이어진 기다리는 시간….

가까이 다가온 모습은 빨간 스웨터가 너무 인상적인 한 소녀. 사진 찍는 사람을 바라보곤 잠깐 멈칫, 10여m 멀리 서선 더 이상 다가오진 않기를 또 잠깐. 그리곤 가까이-그것도 사실은 멀찍이-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원 루피'라고 말했다. 기어 들어갈 듯 '모기 소리'만 하게 부끄러운 듯, 전혀 익숙하지 않은 말투로.

인도 화폐인 1루피는 30원, '아니, 겨우 30원 때문에 저 먼 곳에서 여기까지 걸어 내려왔단 말인가?' 인도의 대도시에서 많이 봐 온 아이들의 '능숙한 구걸'과는 결코 비교할 수 없는 느낌이다.

스스로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에 손이 갔다. 짧은 순간 의도하지 않고 캐치한 단 하나의 사진. 그리곤 일행에게 잔돈을 빌리려 왔다 갔다 하다 약간의 돈을 쥐어주곤 소녀와 나눈 '안녕' 인사. 하지만 소녀는 한동안 자리를 뜨지 않았다. 아무런 행동이나 몸짓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해맑은 미소만 보여주길 한동안.

소녀는 다른 일행들에게 다가가지도,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 분명 몇 루피라도 더 받을 수 있었을 텐데. 몇 번의 인사에도 가만있던 소녀는 온 길을 되돌아갔다. 여러 번 뒤를 돌아 보면서.

소녀가 어디서 왔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지프 차와 일행들을 기다리게 하고서라도 좀 더 지켜보니 예상대로다. 저 멀리 위에 있던 텐트 쪽으로 향한 것. 그렇게 사진 한 컷을 다시.

소녀가 누군지도 궁금했다. 그런데 서둘러 찍힌 소녀의 사진 속 미소는 신기하게도 너무나도 맑고 행복해 보인다. 미처 눈치 못 챘지만 그 짧은 틈에 소녀가 저런 미소를 띠고 있었나? 그냥 '1루피의 짧은 만남'으로만 생각했는데.

저녁때 와인 잔을 기울이며 한 일행은 "아구, 때가 절절 흐르네! 씻지를 못했나 봐. 그런데 미소를 보면 흙 속에 파 묻힌 진주 같네"라고 평했다. 인도 가이드는 "소녀는 산 속에서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집시"라고 말했다. 여름이면 산에서 가축을 치고 겨울이면 도시로 내려와 생활하는데 집시 친구들에게 수소문해 보면 자세히 물어볼 수 있다고 했다.

예쁜 옷이라도 보내주고 싶을까, 왠지 소녀의 미소가 아른거린다. 이름도, 주소도 못 물어봤는데, 영어 몇 마디라도 할까? 그러고 보니 표정과 눈빛 말고 나눈 대화도 없다. '겨우 30원 때문에 먼 길을 내려왔나?' '왜 다른 일행들에게는 달라고 안 했지?' '조금 더 잘 입고 잘 씻을 수는 없을까' '학교는 어떻게 다니고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다른 인도인 가이드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찾아요? 그렇게 어려운 아이들이 인도에 아직 많으니 그만큼 할 일도 많다는 것을 알리는 게 중요하죠."라고 달리 말했다. 여전히 인도 집시 소녀의 미소와 여유로운 표정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글·사진 스리나가르(인도)=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