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중년의 부부가 서로를 위해서 해야 하는 것들 중에서 우선 자신과 상대의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어느 시기의 부부에게도 기본적인 것이지만, 특히 중년의 시기에는 그 동안 자신하고 있던 건강에 대한 위협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결혼을 하고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것들 중의 하나는 자신을 아끼며 잘 대해주는 좋은 보호자의 역할이다. 과거에 부모에게서 충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은 사람은 배우자에게도 같은 역할을 기대하고, 부모에게서 충분히 받지 못한 사람은 배우자를 통하여 충분한 보상을 받으려 한다.

이러한 암묵적인 기대가 있기 때문에 배우자가 자신에게 충분한 관심을 보이지 않거나 배려가 부족한 경우에는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고 나아가 분노를 경험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남편은 자신의 외모와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는데 아내는 여전히 자녀의 성공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이 남편은 가정에서 자신의 존재감에 회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남편은 이러한 자신의 실망과 분노를 의식하지 못할 수 있으며, 만약 의식한다고 해도 쉽게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자신이 아내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것이 너무 어린아이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때 자신의 건강이나 외모에 관심을 가져주는 젊은 여직원이 있다면 남편은 아내에게 기대했던 보호자의 역할을 그 여직원에게 ‘투사’하게 된다. 그리고 그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자신이 젊어지는 느낌을 경험하고, 나중에는 아내와는 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 같은 짓’까지도 하게 된다.

반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남편은 사회적 성취를 쫓고 자녀는 이미 성장하여 각자의 재미를 찾아 다닐 때 그 부인은 갑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를 잃는다. 이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이성이 나타나면 사랑에 빠지겠지만, 이것마저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대부분의 중년 여성은 깊은 우울에 빠지게 된다.

특히 남편에게 오랫동안 눌려 살아온 경우에는 ‘화 덩어리’가 가슴에 쌓여 여러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자신에게 무슨 이상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자신에 대한 관심’을 호소한다.

이런 상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부부가 젊어서부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그렇지 못한 부부라도 중년에 도달해서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 동안 제각기 살아온 것에 대해 서로에게 미안해하며 배우자를 칭찬하고 감사해 하는 것이 중년을 새로운 삶의 기회로 만들어줄 수 있는데, 이 때는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도움이 될만한 예를 들자면, 부부가 함께 건강검진을 받는 것이 대개의 경우 그 출발점이 될 것이다. 불행히도 배우자가 당뇨나 고혈압, 고지혈증 같은 질환이나 관절염 같은 퇴행성 질환에 걸려있다면 부부가 함께 섭생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아가 남편은 아내를 위한 배려로 가사분담에 참여하고 음주나 흡연 같은 잘못된 생활 습관을 개선하는 노력을 직접 표현할 필요가 있다. 대개의 부인들은 남편의 건강과 체력 유지에 좋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이 남편에게 얼마나 감동적인지 잘 모르고 있다.

부부가 함께 운동을 하거나 같은 취미 생활을 할 수 있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하면 서로에게 알맞은 여가 활동을 권장하여 삶을 재충전하도록 격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루를 마치고 난 후 배우자가 서로 마사지 해주는 것은 신체적 피로는 물론 정신적인 스트레스의 해소에도 좋다.

문제는 이런 점들을 알면서도 부부가 함께 노력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 이유는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전문가를 찾아 상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부부관계 개선뿐 아니라 자신의 활기를 되찾기 위해서도 필요한 노력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