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중년의 부부에게 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들 중의 하나는 성적 불만이다. 이 시기의 부부들이 호소하는 모습은 남편은 여전히 성적인 요구가 왕성한데 부인이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거꾸로 남편의 성적 욕구가 감퇴되어 뒤늦게 왕성해진 부인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경우다.

첫째 경우는 젊어서부터 남편의 성적 욕구가 부인에 비해 압도적인 경우가 많다. 부인이 아직 성행위에 익숙하지 않은 신혼기부터 과도한 횟수의 잠자리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체위를 남편이 일방적으로 요구하여 부인이 성적 굴욕감을 갖게 한 것이 원인일 수 있다.

또 이런 남편은 시부모나 아이들이 조심스러워서 관계를 피하는 부인을 아직도 순진해서 빼는 것 정도로 생각하고 내심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부인이 자신의 거절을 받아주지 않는 남편을 ‘뭐든지 제 맘대로 하려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은 모르고, 마지못해 하는 잠자리에서 부인이 아파서 신음하는 것도 좋아해서 내는 소리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남편은 부인이 자신을 ‘짐승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남편이 밖으로 돌지 않게 하려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참고 있다는 것을 짐작도 하지 못한다. 더 심한 남편은 ‘여자의 불만은 잠자리만 잘해주면 없어지는’ 줄 알기 때문에 부부의 갈등은 반복되고 악화되기 쉽다.

반면 부인은 남편과의 성적 즐거움을 전혀 기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제 나이도 먹고 했으니 좀 편하게 자고만 싶을 뿐이다. 때문에 이런 부인은 병이 났다거나 다른 핑계를 대어 아예 몇 년째 각방 생활을 하기도 한다.

둘째 경우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 및 생활 주기가 달라지는 데에서 비롯될 수 있다. 남성의 성 호르몬 분비는 20대에 최고에 도달해서 이후 계속 감소되는 것과 달리 여성은 나이가 들면서 여성호르몬이 감소되며 상대적으로 남성 호르몬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중년 부인의 성욕이 높아질 수 있는데, 반면에 남편은 출산과 수유 때문에 생기는 부인의 신체적 변화로 부인에게 성적 매력이나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남편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받는 스트레스가 높아서 성욕이 떨어지거나 오랜 음주나 흡연 등으로 발기 능력이 감퇴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에 반해서 부인은 자녀양육이나 살림에 대한 부담감에서 해방되어감에 따라 자신의 요구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되고 성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성적 쾌감을 즐기게 된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이유든 이처럼 부부의 성적 욕구의 차이가 줄어드는 것에 대해서 부부가 잘 이해하고 적절히 응하지 못하면 중년의 성적 불만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해답은 중년 이후에도 활발하게 성적 만족을 유지하는 부부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에게 성관계에 관한 질문을 하면 대부분 ‘매번 오르가슴을 경험하지는 않지만 잠자리에는 만족한다’고 답한다. 또 ‘잠 자리를 반드시 누가 주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더러 자신의 성적 요구를 상대가 외면하더라도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지도 않는다. 본래 남성적인 성은 행위 자체에 목적이 있고 여성적인 성은 상호관계의 확인을 위한 수단이라는 특징이 있는데, 이런 부부들의 성은 이 두 가지 요소가 잘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을 과대평가하지도 과소평가하지도 않는다.

만약 남편이 스트레스로 인한 발기부전 등의 문제가 생기면 부부가 함께 치료에 협조하고, 상대가 새로운 성적 경험을 원하면 최대한 관심을 보인다. 이들은 성행위를 하거나 하지 않거나 서로를 만족시키는 비결을 알고 있지만, 자신이 여전히 상대에게 만족스러운 배우자가 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즉 이들에게 있어서 성행위는 오랫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터득한 상호 배려와 대화 방법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이것이 성적 부조화로 갈등을 겪는 중년 부부들을 위한 해답이 될 것이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