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사이카보' 오픈… 일본인 셰프 4명, 일본 가정식 요리 진수 선보여

일본 도쿄의 중심가, '처가방(妻家房)'이라는 상호의 음식점들이 여럿 눈에 띈다. 하나만 진짜고 나머진 짝퉁인가? 아니, 사실 일본 전역에만 21개나 되는 일본 내 한국 음식점들의 이름이다. 김치 등 한국 식품점만 별도로 15개, 모두 합치면 36개나 된다. 그것도 다 직영이다.

처가방의 주인은 한국인 오영석 대표다. 1983년 패션을 공부하러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지금은 일본 속 한식 전도사가 됐다. 백화점에서 김치 등 한식 밑반찬들을 만들어 팔고 김치 박물관과 김치 교실 등을 운영하면서 연 매출 350억원의 중견기업을 이끌 만큼 성공 스토리를 써오고 있다. '일본의 김치 아저씨' '김치를 디자인한 남자' 등이 그를 부르는 별칭들이다.

그가 한국에 왔다. 전공인 한식을 가지고? 실은 '부전공'인 일식을 갖고서다. 자리를 잡은 곳은 서울 청담동. 이름은 '도쿄 사이카보'다. 사이카보는 한국어로 처가방, 서울에 있지만 '도쿄의 그 처가방'이란 의미에서 이름 지어졌다.

서울 강남에 흔하디 흔한 것이 일식당과 스시집들. 그 와중에 그는 어떤 음식과 생각을 가지고 왔을까?

"강남을 비롯해 시내에 유명하다는 일식당들은 다 다녀봤습니다. 사시미(회)와 초밥(스시)을 다들 훌륭하게 하더군요. 그런데 회와 스시가 일본 음식의 전부가 아니란 것이 문제죠. 특급호텔들에 자리한 일식당조차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대부분의 일식당에 가면 회나 초밥이 메인 메뉴다. 다른 음식들도 나오긴 하지만 한마디로 '보조' 수준, 오죽하면 곁반찬(쯔끼다시)으로도 불린다. 사람들 역시 일식당 하면 스시나 초밥을 주로 먹는 곳이라고만 생각한다.

오영석 대표는 이런 기존 상식에 과감히 도전장을 던졌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식은 사시미와 스시만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 일식에도 조림과 튀김, 묻힘, 볶음, 구이 등 다양한 요리들이 많고 이들 요리 역시 일식의 메인이라는 믿음이다.

그래서 도쿄 사이카보는 일식 레스토랑이 아니다. 대신 일본 레스토랑으로 부른다. 회나 초밥 중심의 일식당 개념과 달리 일본의 가정식 요리들을 선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1) 오영석 사장(가운데)과 딸 오지선 이사 & 가사하라 셰프.
2) 조리사가 꼬치 요리를 만들면서 불 조절을 위해 부채질을 하고 있다.
3) 스시바
4) 홀


일본의 전통 요리와 입맛을 그대로 가져오기 위해 일본인 셰프 가사하라씨도 데려왔다. 그는 도쿄 시내에서 '찬부양론(贊否兩論)'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 자신의 레스토랑도 운영하기 바쁠 텐데 서울까지 오가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적잖은 돈을 들여) '모셔온' 셈이다. 일어식 발음은 '싼삐요론' 정도.

그런데 레스토랑 이름에 웬 논리 얘기? 찬성은 뭐고 반대는 또? 시사프로그램도 아니고 양론이란 단어가 붙어 있다. 그의 일식당은 원래 일본의 정통 코스 요리인 '가이세키'에 반기를 들고 태어난 신식 레스토랑이다. 지나치리만큼 길다랗고 격식에 얽매인 정찬인 가이세키를 버리고 젊은 감각의 코스 요리를 선보인 것.

1인당 평균 2만엔을 훌쩍 넘는 가이세키처럼 코스 형식은 유지하지만 가격은 6000~8000엔 대로 대폭 낮췄다. 그래서 어느 요리가 진짜 정찬이고 좋은 것이냐는 취지에서 찬반 양론이 붙었다고 붙여진 이름. 일단 흥미를 가질 만큼 작명 단계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오영석 대표가 그를 만난 것은 1년여 전. 한 번 먹어 보곤 '바로 이거다'를 외쳤다. 그를 설득해 총 4명의 일본인 셰프가 서울에 왔다. 도쿄의 찬부양론과 메뉴와 음식 스타일은 거의 80%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두 곳 다 체인이나 계열 관계라고까지는 아니다.

일식이 굳이 회나 초밥 맛이 아니라면 어떤 맛일까? 도쿄 사이카보는 한 마디로 담백한 맛과 재료의 맛이 일본 음식의 맛이라고 소개한다. "한식이 어떤 면에서 장맛, 양념맛, 손맛이라고 한다면 일식은 재료의 맛을 살리는 데 더 치중한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그런지 재료 하나마다 조리사의 손길과 정성도 많이 들어갑니다."

그렇다고 양념맛이 없지만은 않다. 도쿄 사이카보가 그 어느 것보다 신경쓰는 것은 간장 맛. 웬만한 소스로도 간장이나 냉이고추(와사비)가 사용된다.

대표적인 메뉴가 일본식 회덮밥. 보통 회덮밥이라면 참치나 한두 가지 회를 메인으로 야채를 얹고 초고추장을 뿌려 비비곤 한다. 하지만 '진짜 일본식 회덮밥'에는 야채가 거의 없다. 일본 사람들은 회덮밥을 먹을 때 (아주) 약간의 야채를 고명 정도로만 놓는 정도라고.

생선회도 한 두 종류로만 간단하지도 않다. 연어와 도미, 마구로, 광어, 농어 등 회와 새우, 장어 등 대여섯 가지의 해물이 같이 들어가는 것이 독특하다. 또 알치고는 큼지막한 붉은 연어알도 더해진다. 무엇보다 초고추장 대신에 간장과 와사비를 섞어 비벼 먹는 것은 전혀 새로운 방식이다.

맛 또한 새롭다. 고추냉이 때문에라도 약간 매울듯 말 듯, 해물 자체의 짭짤한 맛에 간장은 그리 많이 넣을 필요도 없다. 해물 재료의 맛이 강하게 느껴지면서 바다 내음이 나지만 그렇다고 짜지는 않다. 무엇 보다 통통한 연어 알이 비비는 와중에 잘 터지지도 않는다.

오야코동이라는 점심 메뉴도 눈길을 끈다. 오야코는 친자(親子)라는 뜻. 우리네 덮밥인데 밥 위에 닭고기와 계란을 같이 얹는다. '슬프게도' 닭과 계란이 모자 관계이니 '같이 희생돼서' 음식 이름에 '친자'가 들어갔다. 날계란을 풀어 육수에 넣고 터뜨려 익히는데 밥에는 야채를 올리고 밥과 함께 굳어진 상태에서 계란을 올려 낸다.

고구마나 감자를 으깨서 동그랗게 만들어 고로깨 비슷하게 튀겨내는 튀김, 생선 육수로 밥을 짓고 그 위에 생선을 구워 얹어내는 가마솥밥, 배추와 관자를 조합시킨 배추관자 샐러드, 일본식 야채절임인 모듬 츠게모노 등도 추천 메뉴. 한국에서 보기 드문 가마솥밥은 밥 위에 생선을 올려내는 것이 특이한데 실은 가마가 아닌 냄비를 사용한다.

특히 가사하라는 일본에서 꼬치요리의 전문가로 통한다. 역시 요리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30여년간을 꼬치요리 전문으로만 이름을 떨친 명인이었다고. 그 역시 비법을 전수받아 직접 꼬치 요리들을 선보인다. 닭, 돼지, 소고기나 생선 야채 등 갖가지 재료들을 모두 꼬치로 요리한다.

특히 닭은 가슴, 날개, 다리, 등 부위 별로 다른 맛을 내는데 그의 대표 재료들. 가장 굽기도 편하고 수분 함량이 많아 맛을 내기 좋다고 한다. 맛의 비결은 신선한 고기를 쓰는 것이 1순위. 거기에다 아버지대부터 30년 넘게 내려오는 여러 가지 양념들을 섞어 만드는 특제 소스가 풍미를 더해준다.

물론 굽는 노하우도 중요하다. 너무 바삭하게 구우면 수분이 없어버리기 일쑤. 밖은 바삭하게 굽지만 안은 부드러운 질감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그의 기술이다. 꼬치 구이를 만들자마자 바로 먹는 것보다 조금 놔두는 것이 더 맛있다고 셰프는 강조한다. 식재료에 소스 맛이 배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메뉴는 이밖에도 회나 구이, 튀김, 냄비, 찜 요리 등 재료별, 조리방법 별로 다양하다. 특색이라면 이들 음식들을 각각 따로 시켜야 한다는 점. 일정액을 내고 사시미와 초밥이 주로 나오고 다양하게 곁반찬들이 자동으로 따라오는 관례와는 완전 다르다. 일본 식당 방식이지만 자칫 한국에서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 일반 일식당에서 보통 반찬으로 계속 나오는 것들도 추가로는 따로 주문해야만 한다.

일본에서의 비즈니스에서 성공을 거둔 오영석 대표가 한국에서 사업에 나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식이라면 구이 요리인 야키니쿠(소육)나 돌솥비빔밥밖에 모르던 시절 처가방이 일본에서 지짐, 묻힘, 볶음 등 다양한 한식 요리들을 처음으로 소개했다면 도쿄 사이카보는 진정한 일본식 메뉴들을 선보이겠다는 것. 비록 나라와 음식은 다르지만 철학은 한가지로 일치하는 부분이다.

아직 시행착오도 있다. 들어 온 손님들 중에 메뉴판만 보고 '비싸다'고 그냥 나가는 손님도 보인다. 그냥 식당으로 생각했을 수도. 하지만 가치를 알고 온 이들은 맛을 음미한다. 그래서 가격은 오픈 직후보다 더 낮췄다. 일반 일식당과 달리 홀이 크고 테이블마다 오픈돼 있다는 점도 조금은 낯설다. 룸은 2층에 몰려 있는 구조.

"처가방은 우리 집에 오는 모든 손님들을 장모님이 비밀스럽고도 맛있는 요리를 대접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오영석 대표는 "담백하고도 재료의 맛을 중시하는 일본의 진정한 가정식으로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에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서울 도쿄 사이카보의 메뉴와 운영은 그의 첫째 딸인 오지선 이사가 맡는다.

메뉴: 점심 특선 메뉴 1만~2만원대. 대중소가 있는 모듬 생선회 중 사이즈는 5만8000원. 배추관자샐러드 1만4000원, 모듬츠게모노 1만원, 메뉴를 낱개로도 주문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청담동 프리마호텔 건너편 푸조 매장 뒷골목 새벽집 옆 (02)517-0108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