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예전에는 남자나 여자나 중년이 되면 성 능력이 약해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오늘날에는 평균수명이 연장되고 건강도 좋아졌기 때문에 중년에 이르러서 오히려 성적으로 더 만족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중년 부부의 만족스러운 성 생활은 깊은 상호신뢰와 오랜 애정에서 비롯된다. 만약 부부가 갈등 상황에 있으면 부부의 잠자리도 그만큼 부정적인 영향을 받기 마련이므로, 성 장애의 원인이 오랜 부부갈등에 있다면 그 문제부터 푸는 것이 옳다.

하지만 부부 간에 뚜렷한 갈등이 있지 않으면서 중년에 이르러 성 관계가 뜸해지는 부부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처럼 중년 부부의 성욕을 감퇴시키는 이유는 정신적 스트레스나 신체적 피로 외에 일상화된 부부관계에서 오는 권태감 때문인 경우가 많다.

중년이 될 때까지 부부가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신뢰하여 상호의존적으로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다른 곳에서 얻을 수 없는 깊은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익숙함에서 오는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아주 심하지만 않다면 가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것은 남녀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대개는 혼자만의 공상으로 끝내지만, 이런 충동을 잘 이용하면 단조로운 성 생활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즉 부부 각자의 성적 환상을 부부의 소재로 삼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부인이 자신이 가진 성적 환상을 이야기하면 남편이 그 상대 역할을 하는 식이다. 이처럼 부부가 각자의 성적 환상을 공유할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필수적이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성적 환상을 함께 나누는 것만으로도 부부는 깊은 일체감과 성적 만족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또 단조로워진 잠자리에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장소나 시간 또는 체위 등을 바꾸어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윤활제나 보조 기구 또는 성인 영상물을 이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에는 사전에 배우자의 동의를 얻는 것이 중요하며, 그렇지 않고 어느 한 편의 주장이 너무 지나치면 오히려 전보다 더 심한 성적 혐오감을 남길 수도 있다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어떤 부부는 젊었을 때 남편이 제안한 체위에 부인이 심한 거부감을 보였다가 이후 부인이 나이가 들면서 그 체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나 남편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부인이 자신의 성적 환상을 털어놓은 후에야 알게 된 남편이 '왜 그걸 지금껏 이야기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부인은 '당신이 원한다고 해놓고서 지금껏 해주지 않는 것 아니었냐'고 되물었다.

이처럼 성적 취향은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질 수 있는데, 이 부부는 성적 대화를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치료를 통해서 성적 환상을 공유하게 된 부부가 성 생활에서 더 많은 활력을 얻게 된 것은 물론이다.

이들 부부처럼 수 십 년 동안 잠 자리를 가지면서도 각자의 성적 환상을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기본적인 성적 대화조차도 나누지 않는 부부가 아주 많다. 부부의 성적 대화란 그들의 잠자리에서 무엇이 가장 만족스러운지, 어떤 접촉을 좋아하는지, 어떤 자세가 편안한지, 또 불편한 것이 무엇인지 등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것으로, 다른 대화와 마찬가지로 가급적이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이는 성 관계 후에 자신이 성적으로 괜찮은가에 대한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상대에게 만족했는지를 묻는 것과는 다르다. 부부 간의 성적 대화는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에게 알리기 위한 대화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공동의 즐거움을 위해 서로 노력하는 자세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이런 성적 대화를 나누고 나면 대부분의 부부는 상대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성적 만족도 함께 높아진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