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음식에 대한 강한 자부심과 고집이 식문화 발전의 원동력

마카로니 마켓의 치즈
우리가 향유하고 누리는 눈부신 문화의 뿌리는 때론 너무 비윤리적이라 우리를 당황케할 때가 있다. 프랑스 왕정의 끝간 데 없는 사치가 오늘날 프랑스를 세계 최강의 패션 대국으로 만든 것처럼 여기 미움과 반목의 원액을 먹고 자란 문화가 있다. 아집이 빚은 맛의 역사.

"미국 커피에서 나는 발 냄새는…"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라는 책에서 미국의 커피를 맹렬히 비난했다.

"…아메리칸 커피 중에는 더러 몹시 뜨겁기만 하고 맛은 지지리도 없는 것이 있다. 대개 역의 구내 식당에서 사람들을 몰살시킬 목적으로 사용한 보온병 재질의 플라스틱 컵에 따라 마시는 펄펄 끓는 고약한 혼합물 말이다 … 아메리칸 커피 중에는 위에서 말한 것 말고도 구정물 커피가 있다. 대개 썩은 보리와 시체의 뼈, 매독 환자를 위한 병원의 쓰레기 장에서 찾아낸 커피콩 몇 알을 섞어 만든 이 커피는 개숫물에 담갔다 꺼낸 발 냄새 같은 그 특유의 향으로…"

이탈리아인들에게 있어 모든 음식이 그렇지만 특히 커피는 각별하다. 우리가 에스프레소라고 따로 지칭하는 커피가 이탈리아인들이 일반적으로 마시는 것인데 그들은 카페(caffé)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인들은 스스로 가장 맛있는 커피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며 그것을 마시기 위해서라면 타인의 눈에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 어떠한 촌극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촌극에는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에스프레소 주전자(카페티에라: cafetiera)를 가지고 있어 자신이 마실 커피를 직접 제조한다거나, 가장 맛있는 온도로 마시기 위해 바에 서서 카페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서빙 시간이 50초가 넘어갈까 봐), 에스프레소 주전자를 절대로 세제로 닦지 않는다는 것 등이 포함된다. 이방인의 눈에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최고의 카페를 맛보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나온 지 1분 정도 지났거나 세제로 닦은 주전자로 만든 카페로 블라인드 테스트라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심하라. 카페티에라를 세제로 씻었다는 이유로 큰 싸움이 나는 곳이 바로 이탈리아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세계의 식탁을 제패한 나라들은 유구한 음식의 역사와 비례하는 싸움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싸움의 원인은 종교, 영토, 때로는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등등으로, 결국 요지는 '내가 너보다 잘났다'는 것. 음식은 그 중에서도 단골 주제다.


자국 음식이 최고인 것은 더 이상 얘기할 가치도 없으며 이 위대한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는 극도의 주의와 세심한 정성이 들어가야 함을 역설한다.

예를 들어 스파게티에 넣는 페스토 소스는 바질과 마늘, 너트, 파마산 치즈와 올리브유를 한데 넣고 으깨어 만드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재료를 넣는 순서를 지정해 놓고 있다.

마늘 – 너트 – 바질 순으로 넣으라고 주장하는 그들에게 '어차피 한데 으깨질 텐데 순서가 중요하냐'고 물으면 그들은 너트에서 오일이 빠져 나올 때까지 필요한 시간과 그 후에 들어갈 재료와의 조화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그러나 어딘가 찜찜하다.

꼭 고급 레스토랑 식탁 위에 올라가는 음식에만 고유의 조리법이 존재하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햄버거에 딸려 나오는 감자 튀김은 프렌치 프라이(French fries)라는 미국식 명칭과는 달리 프랑스가 아닌 벨기에가 그 원산지로 알려져 있다. 벨기에에서는 어느 동네를 가든 감자 튀김 전문점이 있으며 일반 가정에서도 시스템 키친에 감자 튀김기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우리 나라의 김치 냉장고처럼) 국민 음식 대접을 받고 있다.

감자 튀김에 적용하는 그들만의 철칙은 반드시 감자를 기계가 아닌 손으로 잘라야 하며, 튀김 온도를 처음에는 160도에서 10분, 두 번째 튀길 때는 또 몇 도에서 몇 분간 등으로 쓸데없이 복잡하다.

점점 퉁명스러워지는 마음은 다음 음식으로 넘어가면 좀더 명확하게 실체를 드러낸다. 밀가루에 올리브유와 소금, 허브를 넣어 구운 빵인 포카치아의 레시피에는 소금 100g이 들어가는데 소금의 종류는 가는 소금 50g, 굵은 소금 50g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제야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들은 고집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흰말의 엉덩이든, 백말의 궁둥이든?

여기에 한심스럽다고 비웃는 이도 있다. 관대하지 못하다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기에 서로 물어뜯고 싸우기까지 하냐며 짐짓 어른스러운 척 꾸짖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아집이 낳은 경제적 효과를 보면 그냥 웃어 넘길 수만은 없다.

이탈리아인들의 또 하나의 강박 중 '알덴데'가 있는데 스파게티 면의 삶긴 정도를 말하는 단어다. 면이 살짝 덜 익어 단면의 가운데 딱딱한 심이 약간 남아 있는 정도를 알덴데라고 하는데, 글로 표현하기도 모호한 이 상태에서 정확히 가스 불을 끄는 일에 자국인들의 신경줄은 팽팽하게 당겨진다.

물론 여기에도 변명은 존재한다. 물 대신 계란으로 반죽하니 살짝 덜 익혀야 계란이 반숙이 돼 소화가 잘 된다는 것. 그러나 모든 스파게티 면의 봉지에 조리 시간이 표기돼 있고 (스파게티는 8분, 펜네는 13분 등), 가정마다 불 끄는 시간을 알려주는 타이머가 있으며, 심지어 조리 시간이 초과할 경우 면을 버리고 다시 끓이는 그들의 행태는 여전히 강박이라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이들이 그토록 보존하려고 애썼던 스파게티는 그 조리법과 먹는 법까지 세트로 묶여서 전세계로 퍼져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문화가 되었다. 만약 그들이 '너그럽게도' 스파게티 면은 몇 분 동안 끓이든지 상관 없으며 포크로 말아먹든 젓가락으로 휘감아 먹든 어차피 뱃속에 들어갈 음식이니 다 똑같다고 말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스파게티를 먹더라도 그 음식이 어느 나라로부터 왔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며 원조의 맛을 내기 위해 굳이 이탈리아에서 면과 소스를 수입하려는 이들도 없을 것이다.

유난스러움은 함께 있는 이들을 피곤하게 하는 동시에 시나브로 세뇌하는 힘을 가진다. 자국의 음식이 최고라는 신념은 모르는 사이에 타국인들에게 전염된다. 그들이 내세우는 여러 절차와 법칙을 귀찮아하면서도 함부로 무너뜨리지는 못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국이 부끄러워하는 음식은 당연히 밖에서도 천덕꾸러기다. 본적을 잃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원형을 알아볼 수 없도록 변형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다.

사실 음식에 오랜 시간 동안 공을 들이고 지역마다, 집집마다 텃세를 부리기로는 한국만 한 나라가 없다. 온 집안을 뒤집어가며 된장, 간장을 담그고 손맛이 떨어진다고 장갑도 끼지 않고 손으로 버무리는 어머니들의 고집은 우리 식문화의 탄탄한 원동력이다. 그런데 이 까탈이 세계화 앞에서는 이상할 정도로 흐물거린다. 뭐가 부끄러운 것일까. 우리가 인정하지 않는 음식은 세계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다.

음식 및 도움말: 마카로니 마켓 추찬석 지배인
참고 서적: 진짜 세계사, 음식이 만든 역사, 21세기 연구회, 홍성철 역, 베스트홈



황수현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