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싱글 가구 급증… 한 사람을 위한, 식당 늘어나

1. 하나사부정 1인용 샤브샤브 2. 비아디나폴리의 7인치 피자 3. 마켓 오 잇다이어트박스.
2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의 여자들이 자주 모여 피부 미용과 연애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는 한 커뮤니티에서 때 아닌 경쟁이 벌어졌다.

"전 혼자 피자나 스테이크도 잘 먹는데."

"전 패밀리 레스토랑에도 혼자 가요. 회전 초밥집도요. 다음에는 코스 요리에 도전해보려고요."

"전 혼자 노래방에도 잘 가는데요?"

"헉, 노래방을요? 혼자요?"

1. 오헤야의 샐러드 밥상 2. 신촌 이찌멘 3.켄달잭슨 반병 와인
마지막으로 혼자 고기 부페에 가서 불판을 올려 놓고 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용자가 게시판을 평정하면서 경쟁은 일단락되었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

한국에서 혼자 밥을 먹는 일이란 뒤통수에 쥐가 나는 일이다. 싱글 인구의 급증으로 영화관이나 카페에 혼자 앉아 있는 이들을 보는 건 이제 그다지 생소한 일이 아니지만 밥, 그것도 적당히 때우는 개념의 끼니가 아니라 정식으로, 시간을 들여, 맛있게,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싱글들에게는 아직 정복하지 못한 성역이다.

고깃집에 앉아 홀로 불판을 앞에 놓고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말 없이(또는 기대하는 눈빛으로) 고기를 굽는 것이나, 코스 메뉴를 파는 레스토랑에 앉아 전채를 먹은 후 가만히(또는 기쁜 낯빛으로)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모습은 마치 보드 게임방에서 혼자 젠가를 쌓으며 웃는 사람처럼 어딘가 이상해 보인다.

혹자는 한국인들의 혼자 먹기 공포증에 대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농경 사회에서부터 비롯된 동양의 전체주의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서양과 달리 집단이 중요시되는 동양 문화권에서 혼자 있는다는 것은 속할 단체가 없거나, 있어도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피해야 할 일이라는 것.

그러나 가까운 나라 일본에만 가도 이 가설은 쉽게 깨진다. 영화배우 배두나는 그의 책에서 일본에 촬영을 갔다가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도시락을 받자마자 뿔뿔이 흩어져 먹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에 대해 쓰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전체주의 국가 일본에서도 식당에서 혼자 밥을 먹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방송작가로 일본을 수십 차례 드나들며 <도쿄 싱글 식탁>을 펴낸 김신회 씨의 이야기가 오히려 납득할 만하다.

"일본 사람들은 대단히 사회적이고 조직우선적인 성향이 강해요. 그렇기 때문에 밥을 먹을 때만이라도 혼자이고 싶어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특성상 밥 먹는 내내 상대방과 페이스를 맞추는 등 배려하느라 정신이 없을 테니까요."

일본 전체주의의 이면이든, 서양 개인주의의 발로든 한국에도 점차 혼자 밥 먹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에서 혼자 밥을 먹는 풍경이란 밥 때를 놓쳐 기사식당에서 급하게 한 끼 때우시는 가장의 뒷모습이 고작이었으나, 서두의 댓글 경쟁에서 보듯이 이제는 여자들, 그것도 3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혼자 먹기에 당당해지고 있다.

고수들이 전하는 혼자 밥 먹기 노하우


카페에서부터 시작하라

스타벅스 등 커피 전문점이 아닌 차와 식사를 동시에 파는 카페를 찾는다. 홍대나 삼청동에 가면 이런 카페가 비교적 많은 편. 혼자 차를 마시는 사람들 틈에서 여유롭게 밥을 먹을 수 있다.

'한 그릇' 음식을 찾아라

밑반찬을 줄줄이 내오는 식당은 '나 홀로 손님'을 달가워하지도 않을뿐더러 받아준다고 해도 혹시나 반찬을 남기게 되면 미안해진다. 덮밥, 칼국수, 라멘 등 일품 음식을 파는 곳을 공략하는 것이 좋다.

붐비는 시간은 피하라

당당한 싱글도 좋지만 정각 12시에 식당 한 가운데 4인용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밥을 먹는 것은 본인의 마음도 편치 않은 일일 것이다. 11시 반이나 12시 40분쯤, 식당이 한 숨 돌릴 때 찾아가면 훨씬 더 느긋하게 먹을 수 있다.

단골 식당을 만든다

자주 가는 식당이라 주인과 안면이 있다면 식사하는 동안 간간이 주인과 대화를 나누며 어색함을 줄일 수 있다. 활달한 주인일 경우 자연스럽게 옆 사람과도 말을 틀 기회가 생긴다. 아예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단골 식당이라면 한층 편안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시선 둘 곳이 있으면 좋다

정말 강심장이 아닌 한은 입으로는 밥을 씹으면서 눈으로는 자신을 흘끔거리는 사람들과 일일이 시선을 맞추고 있기가 어렵다. 창문이 시원하게 뚫려 전망이 좋거나 그 달의 잡지나 재미있는 책을 구비해 놓은 센스 있는 식당을 찾아라.

"같이 먹을 사람 찾는 것도 귀찮아요"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현재 1인 가구의 수는 342만 가구다. 14년 전인 1995년도와 비교하면 두 배 수준이다. 주목할 것은 독거 노인이 아닌 미혼 남녀, 3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결혼 적령기를 지나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싱글 가구 급증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집에서는 애물단지일지 모르나 사회에서는 다르다. 의료계, 교육계, 법조계 등 각계의 전문가들은 이들을 사회병리학적 관점에서 분석하려고 시도하면서 이들의 두툼한 지갑에서도 눈을 떼지 못한다.

확실히 그들은 각자 속한 직장에서 대리급 이상의 위치를 점하고 그에 걸맞은 수입을 벌어 들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기성세대와 구분짓는 가장 큰 특징은 죄책감으로부터 해방돼 있다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투자에 대상 모를 죄책감을 가졌던 부모 세대와 달리 이들은 많은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과 그 돈을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조선시대부터 유전자에 박혀 있던 청빈 사상이 드디어 뽑혀져 나간 것인지, 그들은 풍요와 즐거움을 노골적으로 탐닉한다.

그 즐거움 중 미식은 아주 기본적이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고 해서 편의점이나 패스트 푸드로 때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혼자지만, 아니 혼자라서 더 맛있게 예쁘게 건강하게 먹고 싶다.

자신의 입맛을 강요하거나 습관적인 불평으로 입맛을 떨어뜨리는 친구와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 먹는 게 낫다고도 느낀다. 식품 업계와 요식 업계가 이들의 요구 하나하나에 촉수를 곤두세우는 것은 당연하다.

햇반이 절반 용량으로 출시된 것은 훗날 21세기 초 한국의 사회상을 기록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지도 모른다. 210g이던 (여자 혼자 먹기에는 확실히 너무 많았던) 햇반의 용량이 130g짜리 2개 들이 세트로 나와 대히트를 치자 CJ제일제당은 스팸과 두부에 아예 '싱글'이라는 단어를 붙인 소용량 제품을 출시했다.

우유와 와인도 크기가 줄었다. 이마트에서 최근 선보인 엔젤 우유는 가장 작은 사이즈였던 200ml를 반으로 뚝 자른 100ml 미니 우유다. 기존 와인의 용량을 반으로 줄인 '반병 와인'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기 침체 때문에 탄생했지만 어쨌거나 혼자서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기 힘들었던 싱글들에게 환영받는 아이템이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375ml 용량의 반병 와인은 에스쿠도 로호, 캔달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도네이, 베라찌노 키안티 클라시코 등 10여 종. 대부분 스크류 캡으로 되어 있어 오프너 없이 야외에서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

비아디나폴리는 얼마 전 1인용 피자를 출시했다. 일명 '7인치 피자'로, 직경이 약 17cm 정도. 라지 사이즈의 피자를 2~3개 먹는 여성이라면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크기다.

"피자는 우리 나라에서는 여럿이 모여 먹는 음식이잖아요. 그런데 사실 이탈리아에서는 혼자 먹는 경우가 많아요. 이탈리아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대식가이기 때문에 혼자서 한 판을 다 먹는 데 무리가 없어요. 물론 우리가 먹는 피자보다 크기가 좀 작고 두께도 얇죠."

종류는 총 8종으로 제일 잘 팔리는 피자들만 선별했다.

이름 그대로 패밀리들을 위한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싱글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마켓 오의 '3코스 밀'은 한끼 식사 값으로 세 종류의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코스를 짠 것. 양은 줄이고 종류는 다양하게 해 혼자 와서 먹어도 스테이크와 파스타, 샐러드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닭가슴살 스테이크를 주 요리로 요일마다 면 요리와 샐러드의 종류가 바뀐다. 더 좋은 것은 칼로리를 500kcal로 맞춘 것. 운동하는 싱글들을 위한 도시락도 판매한다.

닭가슴살과 아몬드, 바나나 등 몸 만들기에 필수적인 재료들로 구성한 '잇 다이어트 박스'는 예쁘게 포장해 집이나 헬스 클럽 휴게실 등에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게 했다.

일반 식당 중에서도 드물기는 하지만 혼자 먹는 사람들을 위한 장소가 하나 둘 생기고 있다. 혼자 먹기 문화가 비교적 널리 퍼진 곳은 홍대인데 이곳에서는 혼자 앉기 편한 바나 도서관 열람실처럼 커다란 테이블을 자주 볼 수 있다.

길이는 6인용 테이블과 비슷하지만 폭은 더 넓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 맞은 편에 사람이 앉더라도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어 동석이되 동석이 아닌 상황이 만들어진다.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늘면서 기존 4인 식탁 일색의 구성이 무너지고 있어요. 비효율적이거든요."

홍대에 위치한 프렌치 비스트로 엠퓨스에는 아예 1인 좌석이 있다. 푹신한 소파의 맞은 편은 벽이라 좀 당황스럽지만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깥 전경을 즐길 수 있다.

모든 안주는 반만 달라고 하면 반 가격에 먹을 수 있으며 와인 역시 250cc, 500cc, 한 잔 등으로 세분화해서 판다. 신촌의 라멘 전문점 이찌멘은 아예 칸막이를 쳐버렸다. 일본 카레 전문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형태로 무인자판기에서 계산을 하고 독서실 같은 칸막이에 들어가서 먹는다.

한스 페터 뒤러에 따르면 독신 가정은 "미래의 이상적인 사회 형태"다. 독서실 같은 식당에서 이상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는 어렵지만 어찌됐건 그들은 독립성과 자율성이라는 현대사회 요구의 충실하고 고독한 이행자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잘 차린 한 상 혼자 먹고 오기


하나샤부정

고깃집은 혼자 먹기의 진수로, 싱글들에게는 난공불락의 장소, 게임으로 따지면 마지막 판에 등장하는 왕인 셈이다. 집에서 혼자 구워 먹는 삼겹살로 성이 차지 않는다면 혼자서 먹는 샤부샤부 집을 찾아가자.

삼성동에 있는 하나샤부정은 17년 전통의 맛집이다. 홀은 4인용 테이블들이 차지하고 있지만 바에는 혼자 앉아 먹을 수 있도록 1인용 화덕이 마련돼 있다.

샤부샤부는 쇠고기와 돼지고기, 딱 2종류로 반찬도 간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종류를 다양하게 하라느니, 반찬 개수를 늘리라느니 하는 요구는 거의 없다.

신선한 고기와 채소, 진한 육수를 맛 보고 나면 다른 불평이 싹 사라지기 때문. 자리에 앉는 것과 동시에 끓인 육수를 내와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데쳐서 먹을 수 있는 것도 혼자 온 손님들에게는 장점이다.

이 집의 정수는 참깨 소스와 식후에 나오는 우동. 마치 강된장처럼 보이는 참깨 소스는 고소하면서 감칠 맛이 있어 같이 나오는 간장이 찬밥이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식사 후 진하게 우러난 육수에 가쓰오부시 국물을 넣고 우동을 만들어 주는데 국물이 끝내주는 수준을 넘어서 거의 보양식에 가깝다. 일본 조미료인 시찌미를 넣고 살짝 맵게 해서 먹으면 등줄기에 땀이 흐를 정도로 요즘처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저절로 생각 나는 맛이다.

인심 좋은 주인장이 식사 때를 놓친 손님들을 위해 점심 시간과 저녁 시간 사이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공항터미널 맞은편 식당가 골목. 02-538-7114

오헤야

요리가 취미가 아니고서야 싱글로서 잘 차린 가정식 백반을 먹는 일이란 쉬운 게 아니다. 아무리 맛으로 소문난 식당이라고 해도 1인분은 안 판다면 무용지물. 밑반찬을 좌악 깔아주는 한국식 백반집에서는 혼자 먹기가 눈치 보이지만 일본식 백반은 밥, 국, 반찬이 모두 1인용으로 나오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가로수길 골목에 얼마 전 생긴 오헤야는 저녁에는 사케와 안주를 팔지만 점심 때는 실한 가정식 백반을 파는 밥집으로 변신한다.

샐러드 밥상과 가쿠니 밥상 두 종류가 나오는데 둘 다 주인장이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밥상을 재구성한 것. 둘 다 네 가지 기본 찬에 미소시루가 따라 나오며, 샐러드 밥상은 보울에 풍성하게 담은 샐러드와 오니기리(일본식 주먹밥)가, 가쿠니 밥상은 돼지고기, 곤약, 무를 졸인 주 요리에 덮밥이 나온다.

찬과 국은 거의 매일 바뀌며 오니기리에 넣는 재료도 조금씩 변화를 준다. 가쿠니는 일본식 조림 요리인데 짜지 않은 간장에 재료를 넣고 2시간씩 졸여 식감이 부드럽고 간이 잘 배어 있어 어느새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게 된다.

음식 준비 시간이 오래 걸려 하루에 20인분밖에 판매하지 않으므로 늦게 가면 이미 다 떨어지고 없는 경우가 많다. 가로수길 미래희망산부인과 골목. 070-7613-6610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