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단풍 취'

하루 하루 달라진다.

매일 아침 만나는 광릉숲의 풍광은 하루 자고 나서 돌아보면 그 때깔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만큼 성큼성큼 숲이 가을 빛으로 물들고 있다.

계수나무 동그란 잎새가 노랗고 달콤하게 물들더니 복자기나무 가지 끝에서 점차 붉은 색이 퍼져나간다. 가을의 한 가운데에 우리가 서있다.

식물이름에는 단풍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 여럿 있다. 단풍나무집안이어서 당단풍, 중국단풍, 섬단풍, 설탕단풍하며 부르는 것 이외에 식물학적으로는 무관하나 이름에 '단풍'이 들어 있는 식물들 말이다.

돌단풍, 단풍마, 단풍제비꽃 그리고 단풍취도 그 중에 하나이다. 재미난 것은 이들 식물들은 정말 '단풍'이라는 현상 혹은 계통식물학적인 특징과도 무관하게 잎의 모양이 단풍나무처럼 깊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붙여진 이름이다.

식물의 본질은 꽃이나 열매와 같은 생식기관의 특성인데도 겉으로 보이는 잎의 겉모양이 이름을 결정지었다. 사람의 판단도 겉모습에 자유롭지 못한 우리의 한계는 식물을 이름을 짓는데도 작용하는구나 싶어 잠시 웃었다.

단풍취는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좋은 활엽수 숲에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아주 오래 전 대도시나 공단처럼 대기오염과 관련이 있는 지역 주변의 숲과 오염과는 무관한 청정지역 숲속에 사는 식물들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

재미난 결과는 깨끗한 지역에는 없고, 대기오염이 심한 지역에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대기오염의 지표종 같은 식물은 찾지 못했는데, 반대로 깨끗한 지역에선 어디나 공통적으로 출현하는 식물들이 있었다.

오늘의 주인공 단풍취가 바로 그러하다. 그래서 단풍취가 발아래 펼쳐지는 숲길을 걷고 있다면 크게 기지개를 켜고 마음껏 숨 쉬어도 좋다.

가을이어서 단풍취가 떠올랐지만 어찌 보면 이 풀은 가을보다는 여름풀로 구분하는 이들이 많을 듯하다. 한여름에 꽃이 피기 때문이다.

단풍잎을 닮은 잎새들 틈에서 꽃대가 쭉 올라와 달리는데 자세히 보면 아주 가느다란 설상화들이 개성 넘치는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가장 자연스러운 아니 자연 그 자체인 천연림 숲 속에 그토록 현대적인 감각의 잎과 꽃을 가진 단풍취가 자란다는 것이 멋지다.

봄에는 어린 싹을 나물로 먹는다. 국화과 식물이 대부분 독성이 없이 연하여 먹을 수 있는 것이 많은 것을 보면 당연하다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저런 문헌들을 찾다 보니 단풍취는 산나물을 개발하는 연구나 식용기름에 관련된 연구에도 등장하고 있다.

더욱이 한방에서는 뚜렷이 약용으로의 이용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현대의학에서는 이 식물의 항염증제를 비롯한 여러 효과에 대한 연구성과들이 나타나고 있는 제법 주목받는 식물이다.

생각해보면 다복한 단풍취 한 포기도 제법 모양새가 있다는 생각이다. 화려한 꽃으로 눈길을 끌지 않아도 숲 속 그늘에서 삭아버리지 않고 오래도록 싱그럽고 개성있는 잎을 자랑하는 단풍취라면 생태적인 조경의 한 소재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단풍취는 괴발땅취, 괴발딱지, 장이나물, 좀단풍취 같은 독특한 별칭들이 있다. 그만큼 예전부터 곁에 있던 정다운 식물이란 뜻일 테다. 올 가을엔 단풍취의 단풍을 닮은 잎이 어떻게 가을을 나는지 잘 관찰하는 것을 숙제로 보태어야겠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