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의 딜레마친환경 바람에 자전거족 늘어나는데 법률과 의식은 제자리걸음

회사원 이 모(31)씨는 지난달 16일 출근길에 봉변을 당했다. 이 씨는 오전 8시께 한강대교 남단에 있는 한강시민공원의 자전거 길을 달렸다. 자전거 도로가 끊기고 인도만 있는 거리가 나왔다. 인도를 지나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이 씨는 자전거를 타고 인도를 지나다 경찰과 마주쳤다.

단속경찰은 길에서는 보이지 않는 대교 하단 기둥 근처에 있었다. 이 씨는 범칙금 통고서를 떼려는 경찰과 10여 분 동안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인도를 지날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가야 한다는 법을 내세웠다.

결국 이 씨는 서울 동작경찰서에서 발부한 3만 원의 범칙금납부 통고서를 받아 들어야 했다. 그는 매일 서울 영등포구 자택에서 강남구 삼성동의 직장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자전거 출근족'이다.

이 씨는 "단속 지점은 노들역이 생기면서 지하로 도로가 뚫려 자전거가 지상의 인도로밖에 다닐 수 없는 곳"이라며 "관련 법률 미비로 정부 정책에 호응해 자전거를 타는 시민만 손해를 보는 꼴이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여있다. 법률대로 도로로 가자니 자동차가 경적음에 쫓기기 일쑤고 인도로 다니자니 법률상 단속대상이 되는 상황이다. 자전거 관련 법률 개정과 교통문화 의식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도로? 인도? 자전거는 어디로

자전거가 도심의 도로와 인도 모두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도로로 달리게 돼 있지만 혼잡한 교통상황에서 자전거 통행을 배려하는 자동차 운전자는 드물다. 법대로 도로를 달리는 자전거는 자동차 경적음 소리에 도로의 '미운 오리 새끼'가 되기 일쑤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마로 분류돼 도로의 최하위 차선으로 달리게 돼있다. 그러나 최하위 차선에 버스전용차로가 설치돼 있는 경우에 자전거는 범칙금 부과 대상이다. 서울 시내의 경우 최하위 차선에 버스전용차로가 설치돼 있는 곳이 많다.

버스전용차로가 없는 최하위 차선이더라도 맨홀 뚜껑과 전기분납함 등을 비롯한 장애물이 많아 무리 없이 이동하기는 힘들다. 자전거가 인도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여건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인도를 지나는 자전거 운전자는 자전거에서 내려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이용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자전거를 탄 채 인도를 달리면 이 씨와 같이 범칙금을 무는 신세가 된다.

인도에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역시 여러 위험 요소를 안고 있다. 인도에 설치된 자전거 전용도로는 일반 보행자가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제동거리가 자동차보다 긴 자전거가 일반 보행자를 칠 경우 법률상 자동차와 똑같은 수준으로 배상책임을 진다.

인도에 설치된 자전거 전용도로일지라도 도로의 자동차 진행방향과 반대로 달리면 역주행으로 간주돼 역시 범칙금을 부과받는다.

자동차 운전자 보험은 수십 종인데 반해 자전거 운전자 보험은 첫 상품이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전거 전용도로라굽쇼?

시내 도로에 일부 설치되고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역시 중앙정부의 시책에 맞춘 구색 맞추기용인 경우가 많아 문제로 지적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역 인근 도로에 설치되고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의 경우 폭이 1.1미터에 불과해 자전거 곡예사가 아닌 이상 제대로 주행을 할 수 없는 정도다. 자전거 전용도로의 폭을 1.1미터 이상으로 규정한 도로교통법의 구문만 염두에 뒀을 뿐 실제 적용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넓은 폭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 역시 대부분 자동차가 차지하고 있는 상태다. 서울 광진구 군자교에서 어린이대공원 인근까지 설치되고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출퇴근 시간 대부분을 자동차들이 차지하고 있다.

도로에 설치된 자전거 전용도로의 경우 가드레일을 설치해 교차로 지점에서는 우회전 차량과 접촉사고를 낼 위험이 오히려 커졌다. 우회전 차량이 시간적 여유를 갖고 차로 변경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토목공사 보다 법률개정, 의식개선이 더 시급

이명박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전국 곳곳을 자전거 길로 연결해 생태문화가 뿌리내리도록 하겠다"고 말한 이후 곳곳의 도로에 자전거 전용도로 공사가 시작됐다. 정부는 도심지 자전거 도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2012년까지 자전거 전용도로를 5853km 더 늘릴 계획이다. 1조 49080억 원을 투자해 총 연장 3114km의 전국 자전거 도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구상 역시 진행 중이다.

그러나 도심 자전거 운전자는 자동차를 피해 인도로 올라갔다 범칙금을 물고, 자전거 전용도로에 뛰어든 시민을 칠 경우 자동차 운전자에 준하는 피해보상을 해줘야 하는 처지다.

인구밀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 가운데 하나인 서울시의 도로 다이어트가 성공할 것으로 여기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도로 다이어트를 하고 자전거 전용도로 설치 붐을 이뤘던 일본 도쿄에서는 도심부 방치 자전거가 사회문제화되고 있다. 일본 역시 자동차를 경차량으로 분류하는 법률을 고수하고 있다.

문화와 생태를 새로운 동력으로 삼는다는 녹색성장의 방향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시책을 믿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운전자는 여의치 않은 도로사정과 자동차에 준하는 법률 적용으로 애를 먹고 있다. 자전거 관련 내용을 세분화한 도로교통법 개정과 도로의 약자인 자전거 운전자를 배려하는 교통문화 의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자전거 운전자에게 자동차 규칙을 지키라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도로의 절대 약자인 자전거 특성에 맞는 법률을 도로교통법에서 따로 떼어내 개정하고 자전거 전용신호를 적용하는 등의 제도개선, 자동차 운전자 등의 시민의식 개선 없이 전용도로 설치만으로 자전거 문화를 진흥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 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