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자정리(會者定離)'라는 말이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배우자의 외도 때문에 화를 내는 사람도 우선은 상대의 잘못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이야기하지만, 한편으로는 상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이별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그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면 된다'고들 위로하지만, 그것을 알면서도 마음을 잡지 못하니 더 괴롭다. 왜 사랑은 만났을 때의 기쁨보다 더한 고통을 주는 것일까? 그리고 그처럼 정말 피할 수 없는 일이 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실연 때문에 고통을 겪는 사람들을 상담해보면 이들 중에 상당수가 상대와의 만남에 지나치게 많은 것을 기대하거나 의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이 상대에게 얼마나 잘 해주었는지, 또 상대의 부족한 점이나 잘못한 것을 얼마나 눈감아 주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자신의 고마움을 알면서 어떻게 떠나갈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인데, 마치 상대를 붙잡기 위해 그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거꾸로 그 동안 자신에게 너무나 헌신적으로 잘 해주던 상대가 갑자기 헤어지자고 하는데 어떻게 견디느냐고 항의 아닌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처럼 실연에 따르는 고통에서는 누가 더 많이 주었거나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들은 대부분 상대와의 만남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를 잃는다는 것이 자신이 다시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이런 불안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상대를 위협하거나 용서 또는 사정을 해서라도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 다시 시작하게 되더라도, 이전에 무엇이 문제였는지도 모르고 자신과 상대 모두 달라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잘 해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는 결국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나중에는 자신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인지, 상대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정말로 안타까운 것은 이처럼 소모적인 만남을 유지하느라 자신과 상대가 가지고 있는 많은 가능성들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이 이처럼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건강한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때문인 경우가 많다. 즉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경우에는 적은 관심이라도 보이는 사람에게 깊이 빠져들기 쉽다. 또 부모의 만성적인 불화를 경험한 사람은 계속되는 자신들의 싸움도 당연하게 보거나 반대로 싸워야 할 것을 양보하여 필요한 변화를 얻지 못한다. 자신이 가진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해 자신과 어울리지 않은 상대와의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심리적으로 결핍상태에 있다가 우연히 만난 상대에게서 충족감을 경험하게 되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사람과의 관계를 지속하려 한다. 이런 사람을 만난 상대도 여태껏 이처럼 자신을 열렬히 환영해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주 잘 맞는 쌍처럼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만남이 길어질수록 기쁨보다 갑갑함이 커져 결국 헤어질 것을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이별을 맞이한 사람은 우선 어떻게든 상대와의 만남을 지속하고 싶은 욕구를 견뎌내야 한다. 또 새로운 사람으로 허전함을 채우려는 충동도 이겨내야 한다. 이는 알코올이나 약물 중독자가 중독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 이처럼 소모적인 애정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사랑 중독증'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런 중독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중독상태에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그런 후에는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망가져있는지를 깨닫고,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회복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 씻고 먹는 것으로 시작하여 학생 같으면 공부를, 직장인 같으면 일을 해야 한다. 사랑의 중독상태에서 벗어나 건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신체적 건강을 위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 충실한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