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사랑을 하면 많은 긍정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사랑을 하면서 우리는 행복감과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데, 이는 어릴 적에 부모로부터 받았던 무조건적인 사랑을 재경험하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신체적 효과부터 보자면 사랑하는 동안 뇌에서는 도파민, 세로토닌, 엔돌핀 등 소위 '행복 호르몬'이 분비되어 생활에 활력을 준다. 그래서 좋아하는 상대와 만나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또 다시 만날 생각만 해도 즐겁다. 그뿐 아니라 사랑을 하면 면역세포와 인터페론 같은 면역물질이 활성화되어 신체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는 노래가사나 '금슬 좋은 부부가 오래 산다'는 말은 과학적으로도 확인되고 있다.

그러나 사랑의 궁극적인 효과는 인격의 성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이기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사랑을 통해서 타인을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다른 모든 인간 관계에서는 손익을 따지지만 사랑의 관계에서는 자신의 사랑을 받아주는 상대의 작은 눈빛에도 기쁨을 느끼며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싶어진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는 자신의 불편을 양보하고 이타적인 희생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와의 관계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 상대가 자신에게 바라는 특성을 강화시켜 나간다. 그 결과 남자는 더 남성다워지고 여자는 여성스러운 태도를 더 발달시킨다. 그뿐 아니라 사랑은 상대를 닮고 싶은 욕망을 자극하여, 이전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분야에도 흥미를 가지게 만든다. 나무토막 같던 사나이가 아름다운 시를 외거나 게을렀던 아가씨가 새벽잠을 줄이고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거나 난생 처음 음식장만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사랑의 원형은 어머니의 희생에서 볼 수 있는데, 많은 이들이 어버이가 된 후에 자신이 이전과 달라지는 것을 경험한다. 즉 개인적 이익과 충동적 감정을 제어하면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을 찾는 자세로 바뀐다. 그리고 사랑이란 것이 한 순간에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품어가는 것임을 깨닫는다. 또 사랑의 과정에는 장미꽃 향기 날리는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흙먼지 날리는 뙤약볕이나 살을 에는 칼바람도 있다는 것도 어버이가 된 후에야 알게 된다.

이런 경험들을 거친 후에는 사랑이 자신과 상대방에게만 해당되는 개인적인 행위가 아니고, 서로의 가족은 물론 나아가 인간사회 전체를 향한 책임과 결단에 관계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자녀를 향한 사랑이 타인의 자녀에게도 연장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자기 자녀의 편익을 위해서 타인의 기회를 빼앗는다. 그리고 이는 끝없는 경쟁으로 이어져 행복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최근 대중매체에서 세계적인 경제적 위기를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젊은 시절부터 경제적 안정과 노후대책을 준비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결혼을 앞둔 많은 젊은이들이 부유한 부모를 둔 신붓감이나 좋은 직장을 가진 남편감을 찾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경제적 능력이 사랑의 조건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부의 결혼만족도나 자녀의 행복지수는 그 가정의 경제력과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여러 나라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행복과 국민소득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실에서만 보더라도 상당한 사회적 및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도 부부간 또는 자녀의 문제를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경제적 안정이 안락한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성공이 행복과 이어지기 위해서는 사랑을 통한 인격의 성숙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래 위에 성을 쌓은 것처럼 어떤 성공도 작은 시련에 무너질 위험을 갖는다. 자기 인격의 성숙을 동반한 사랑이 기초가 되어있을 때에만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