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 속 음식들과자 집, 염소 젖 등 각 나라 식문화를 반영

<팥죽할멈과 호랑이>, 시공주니어
얼마 전 한 포털 사이트에는 희한한 게시물이 떴다. 일명 '가난 수프 만들기'라는 그 게시물의 내용은 동화 <플란더스의 개>의 주인공 네로가 늘 먹던 수프를 재현하는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주홍빛 국물에 건더기 하나 달랑 떠 있는 이른바 '가난 수프'를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우유, 케첩, 감자, 양파 등이 동원됐다.

결과는 물론 대 실패. 네로의 가난 수프는 네로와 파트라슈의 찢어지는 가난을 상징하고, 나가서 그들의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는 복선이었겠지만 어째 보는 사람의 눈에는 군침 돌게 만드는 음식이었나 보다.

문학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음식은 유독 강렬한 판타지를 형성한다. <스크루지>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칠면조 요리, <꼬마 깜둥이 삼보>의 호랑이 버터로 만든 핫 케이크, <빨간 머리 앤>이 다이아나와 나눠 먹은 초콜릿 캐러멜은 줄거리는 잊혀져도 마지막까지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상상 속의 또는 국내에 없는 음식이라는 이유만으로 환상의 음식으로 머리 속에 자리잡게 되고 정교하지 않은 삽화는 더욱 호기심을 부추긴다. 급기야는 그 음식을 맛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사람들이 나오는가 하면, 정확한 음식 이름을 모를 경우 앞서 언급된 이처럼 직접 만들어 보려는 시도도 속출한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항상 현실이 따라 잡지 못하는 법. 이제 하나하나 드러나는 문학 속 음식들의 실체에 너무 놀라지 말라.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

문학 작품 속에서 음식이 잊을 수 없을 만큼 화려한 오브제로 쓰인 경우는 역시 <헨젤과 그레텔>이다. 어린 아이를 잡아 먹는 마귀 이야기는 전 세계 동화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소재지만 그 중 헨젤과 그레텔이 가장 유명한 이유는 역시 마녀의 집으로 등장하는 이 과자 집 때문일 것이다. 당시 국내에 수 십 개에 달했던 번역판은 그 과자집을 어떻게 그려내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결정될 정도였다.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이 동화의 탄생 시기와 배경을 살펴 보면 과자 집은 순전히 상상의 산물이다. 지금에야 과자로 집을 만드는 것쯤 제과 회사의 이벤트로라도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지만, 초콜릿은 신대륙이 발견된 이후에야 독일로 건너갔기 때문에 서민들은 감히 맛보지 못할 귀중품이었고 설탕 또한 17세기까지는 상류층 사람들의 전유물이었다.

또 독일 과자는 프랑스나 기타 다른 유럽에 비해 달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설탕 덩어리 마쉬 멜로우 대신 나무 열매나 말린 과일을 사용하고, 부드러운 크림 대신 신 맛이 나는 유제품도 빈번하게 썼다. 그러므로 보기만 해도 이가 저릴 정도로 달콤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생각보다 달지 않은 웰빙 과자 집이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하이디의 염소젖과 치즈

과자집에 대적할 만한 강력한 상상 속의 음식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등장하는 염소젖과 치즈다. 하이디가 처음 산장으로 들어온 날 할아버지는 손수 만든 치즈 덩어리를 긴 꼬챙이에 꿰어 구워주고 방금 짠 따뜻한 염소 젖을 내온다. 시골에서 부잣집으로 간 하이디가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왔을 때도 그릇에 가득 찬 염소 젖을 꿀꺽꿀꺽 마시는 것으로 기쁨을 표현한다. 이 장면이 어찌나 강한 인상을 남겼는지 지금도 동화의 배경인 스위스에는 염소 젖 짜기와 치즈 만들기 체험이 포함된 투어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신선한 우유 맛에 플러스 알파를 기대하고 마신 이들에게 염소 젖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강한 암내와 시큼털털함을 선사한다. 물론 지금은 국내에서도 어디에서나 염소 젖을 맛볼 수 있다. 마트에서 파는 산양유가 바로 그 염소 젖의 실체다. 한국 사람들의 입 맛에 맞게 어느 정도 신 맛을 조절했다고는 하지만 마니아층을 위한 또는 건강식으로만 팔리고 있다. 역시 널리 유통되지 않은 음식은 다 그 이유가 있는 법이다.

빵을 밟은 소녀의 흰 빵

작품 곳곳에서 특유의 잔인성을 엿볼 수 있는 안데르센의 작품 중 <빵을 밟은 소녀>는 <인어공주>만큼 유명하지는 않지만 강한 인상을 남기는 동화다. 심성이 거만하고 못된 소녀가 부잣집으로 입양된 후 가난한 친부모에게 문안하러 가는 길, 진흙탕에 새 구두를 더럽히기 싫은 마음에 주인 마님이 들려 보낸 흰 빵을 웅덩이에 던져 디디고 가려다가 그만 빵이 구두에 달라 붙어 지옥으로 떨어졌다는 줄거리다.

여기서는 빵을 맛있게 먹는 장면도 없고 심지어 빵에 대한 어떤 자세한 설명도 없이 그저 흰 빵으로만 묘사되지만 독자들은 '먹는 것 가지고 장난치면 지옥 간다'는 메시지 대신 그 흰 빵은 대체 무슨 맛일까에 집착했다. 지금에야 흰 밀가루로 만든 빵은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지만 안데르센이 활약하던 19세기 덴마크에서 빵의 흰 색깔이란 부유함의 상징이었다.

때문에 일부러 노릇하게 굽지 않고 최대한 색이 하얗게 나도록 밀가루를 포슬포슬하게 뿌린 뒤 살짝 굽는다. 이렇게 하면 흑빵의 거친 질감과 대비되는 아기 엉덩이처럼 뽀얗고 말랑말랑한 식감의 빵이 탄생한다. 물론 그때만해도 잡곡으로 만든 흑빵이 훗날 웰빙 음식으로 등극하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꼬마 깜둥이 삼보의 호랑이 핫 케이크

한때 호랑이 버터 붐을 일으켰던 동화 <꼬마 깜둥이 삼보>에서는 상상 속의 식재료가 등장한다. 삼보를 잡아 먹기 위해 나무 주위를 빙글빙글 돌던 호랑이들이 서로 꼬리를 물고 원을 그리며 점점 빠르게 달리다가 녹아서 버터가 돼 버린 것. 여기까지였으면 좋았겠지만 삼보의 어머니가 이 호랑이 버터를 듬뿍 넣어 핫 케이크를 구워주는 바람에 전국의 주부들은 있지도 않은 호랑이 표 핫 케이크를 만들어 내야 했다.

그러나 이 동화는 수많은 왜곡을 거쳐 탄생한 줄거리다. 일단 아프리카에는 핫 케이크라는 음식도, 호랑이도 없었다는 사실. 사정은 이렇다. 삼보의 작가 헬렌 배너만은 영국 여성으로(영국은 유럽에서 유일하게 팬 케이크를 먹는 나라다) 인도에서 의료 활동을 펼치던 중 이 동화를 집필하게 된다.

그녀가 그린 삽화에서 삼보는 가무잡잡한 인도 꼬마의 모습이었지만 여러 나라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유를 알 수 없게 흑인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실 인도 사람들의 주식은 화덕에서 구운 납작한 밀가루 빵 '난'이고 인도 요리에서 자주 쓰이는 버터는 '기이'다. 그러니까 꼬마 삼보가 먹었던 호랑이 핫 케이크는 실제로는 기이가 듬뿍 들어간 난인 셈이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의 새알심 팥죽

한국의 전래 동화에도 음식이 주요한 매개로 등장하는 경우는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에서는 당시 서민들에게 최고의 간식은 곶감이었음을 알 수 있고, 해님 달님 이야기에서는 사람의 목숨을 몇 번이고 살려줄 만큼 떡을 별미로 쳤음을 읽을 수 있다. 그 중 군침 돌게 만드는 이야기 중 하나가 팥죽 할멈과 호랑이다.

할멈을 잡아 먹으러 왔다가 동지 팥죽을 기다리는 호랑이, 그리고 팥죽을 나눠 주면 호랑이 사냥에 협조하겠다는 알밤과 멍석과 항아리와 지게 이야기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고 동물이고 사물이고 할 것 없이 팥죽 한 사발에 목숨을 건다는 설정이다.

이 이야기는 강원도 지역 설화로, 강원도에서는 찹쌀이나 수수쌀로 새알심을 만들어 동지에 나이 수대로 먹는 풍습이 있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쌀이 풍부해 팥죽에도 쌀을 넣었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쌀을 넣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그러니 호랑이와 알밤, 멍석이 먹고 반한 팥죽은 쌀 대신 새알심을 듬뿍 넣고 뜨끈하게 끓여낸 팥죽이었을 것이다.

문학 속 음식은 그 나라의 사람들이 당시 가장 사랑하고 즐겼던 음식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찍어 보여주는 사진과 같다. 우리 전래 동화 속에서 최고의 매작과를 찾아 떠난 나그네 이야기나 비빔밥 맛에 홀려 이웃을 배반한 총각처럼 본격적으로 음식을 탐하는 이야기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약간 아쉬운 일이다. 그러나 귀족이 아닌 서민들의 터전에서 형성되는 설화에서 최고의 별미는 안타깝게도 곶감까지인 듯하다.

참고서적: 미식견문론, 요네하라 마리, 마음산책

도움말: 이화여자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조미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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