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푸드'의 귀환대안적 먹을거리체제로 생산자·소비자 신뢰 회복, 지역사회 복원로컬푸드 인증의 공정성, 가공시 순수성 유지, 제도적 지원 등 과제

로컬푸드 산지농가(위), 강원 원주시 두레한우축사
경북 예천군 20여 농가는 2006년 12월부터 자신들이 기른 한우를 직접 판매할 목적으로 참우작목반을 만들었다. 5000여 만원을 출자해 200㎡(60평) 규모의 매장을 내고 직접 판매하기 시작했다.

유기농법을 도입해 한우의 질도 높아졌다. 소화불량에 걸리기 쉬운 소에게 볏짚과 함께 주던 화학약품을 끊었다. 이들은 출자금으로 직접 된장과 청국장을 원료로 쓴 소화제를 만들어 여물과 함께 매일 먹였다.

산지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자 더 신선한 한우를 싸게 사려는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 등의 여파로 먹을거리 공포가 확산되며 참우작목반은 더 탄력을 받았다.

참우작목반이 2006년 매장을 설립하며 농민에게 거둔 투자비는 5000만여 원이었지만 지난해 매출은 60억여 원에 이르렀다. 처음 20여 개에 그쳤던 참여 농가는 현재 122개에 이른다. '참우마을' 매장도 10여 개로 늘었다.

산지와 소비자의 거리를 좁히고 유통마진을 최소화 한 '로컬 푸드'가 각광받고 있다. 로컬푸드의 인기는 먹을거리에 대한 공포감 확산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농장에서 입까지' '종자에서 식탁까지'갈수록 거리를 멀게 하는 세계농식품체제가 강화될수록 로컬푸드의 저항도 확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로컬푸드 인증의 공정성 문제, 가공생산이 필요한 경우 로컬푸드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없는 딜레마, 제도적 지원의 미미 등은 걸림돌이다.

생산자-소비자 관계복원

먹을거리 공포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욕구는 다시 로컬푸드를 찾게 하는 가장 직접적인 요인이다.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는 로컬푸드는 당연히 더 신선하다.

생산자와 산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안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런 활동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사회적 관계를 회복하는 효과를 낸다.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이 2009년 4월부터 강원 횡성군, 경북 상주군, 전북 김제군의 산지를 중심으로 벌이고 있는 제철 꾸러미 사업이 대표적이다. 여성농민회에 제철 꾸러미 택배를 신청하고 10만원의 회비를 내면 매주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한 계란(유정란), 두부, 제철 채소·곡식·과일 등의 농산물을 꾸러미로 배달해준다.

소비자의 반응은 안전한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를 반증한다. 4월 40가구뿐이었던 제철꾸러미 회원수는 현재 170가구로 4배 이상 늘었다. 농민회는 2006년부터 텃밭 가꾸기를 권장하며 지역 먹을거리 운동, 식량주권·토종씨앗 지키기 운동을 벌여왔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개방으로 확산된 대중적 먹을거리 공포는 로컬푸드 붐을 일으킨 결정적 계기가 됐다. 두레생활협동조합, 경북예천의 참우작목반 등도 쇠고기 수입개방이 이슈였던 지난해 촛불정국 이후 회원이 폭증했다. 한살림의 회원수는 매년 20~30%씩 증가하고 있다.

윤정원 여성농민회 사무장은 "회원은 누가 어디서 생산한 것인지 알 수 있어, 대량생산 농식품의 유해성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다"며 "농민들도 자신이 만든 것을 누가 먹는지 알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면서 자부심과 자존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건강한 지역사회 복원

로컬푸드는 소비자가 보다 싼 가격에 상품을 구매할 수 있게 한다. 산지농가에도 보다 많은 수익을 돌려줄 수 있다. 유통거리를 줄여 중간마진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신뢰 획복은 건강한 지역사회 복원으로 이어진다.

산지와 소비자의 거리가 좁혀지자, 참우작목반 소비자는 30% 정도 더 싼 가격에 좀더 신선한 한우를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농가도 유통업자에게 판매하는 것 보다 10%가량 더 이윤을 낸다.

로컬푸드는 산지농가에 혜택을 주면서도 합리적인 소비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두레생협은 2006년 직접 돈을 모아 강원 원주·화천의 농가에 송아지 604마리를 분양하고 유기농 방식으로 생산시킨 뒤 구매했다. 현재 45개 농가가 두레생협의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송아지 숫자는 1500마리로 늘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참우마을' 매장에는 더 신선한 소를 더 싸게 사려는 손님들 때문에 차를 댈 곳이 없을 정도다. 인근의 한우농가와 식당에도 손님이 더 많아졌다.

여성농민회에 농산물을 공급하는 소규모 여성농가 170여 가구는 대기하는 소비자가 넘쳐 생산량을 대지 못하고 있다. 밭떼기 등 대량 거래를 하지 못해 직접 장에 농산물을 내다 팔던 시절과 판이해졌다.

최병용 참우마을 대표는 "정부는 자꾸 대농만이 대안인 것처럼 말하지만 농가의 자본력이나 여력은 이에 미치지 못한다"며 "소농이 출자로 연합하면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경쟁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순환농법으로 자연 되살려

로컬푸드는 순환농법으로 농작물을 생산해 자연환경을 되살리는 효과가 있다. 농산물 대량생산지의 황폐화를 막을 수 있는 환경친화적 대안이기도 한 것이다.

생협이 관계하는 로컬푸드 산지는 대부분 한우에서 나온 거름으로 비료를 만들어 다시 쌀농사에 쓰는 방식의 순환농법을 사용하고 있다. 두레생협의 산지인 강원 원주시는 원래 70년대부터 카톨릭 농민회를 중심으로 한 친환경농법이 자리잡은 곳이다.

두레생협 산지에서는 땅을 갈고 씨를 뿌려 가꾸는 경종농업 도중에 생기는 볏짚·왕겨 등을 소의 먹이로 사용한다. 소 분뇨는 지렁이를 이용해 숙성시켜 거름으로 만드는 순환농업방식을 사용한다.

한살림도 카톨릭 농민회가 순환농법을 보급한 산지를 중심으로 농산물을 생산하고 있다. 회원수 19만여 명에 이르는 한살림은 지역 자급축산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사료·오폐수 등을 거름으로 만들어 농작물을 생산한다. 유기농으로 생산된 농작물은 다시 가축 사료로 활용하고 있다.

한살림은 올해부터 수입의존도가 높은 농작물 35종을 선정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표기하는 이산화탄소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쌀·밀가루·건고추 등에 표시된 이산화탄소 발생량/삭감량, 이동거리 등은 자연스럽게 로컬푸드 소비의 당위성을 설명한다.

로컬푸드 인증 문제와 가공시 딜레마도

로컬푸드 인증제는 로컬푸드의 확산과 친환경 소비를 넓힐 여지가 크다. 공정한 인증단체의 신뢰도가 확보되면 로컬푸드의 범위가 지역에서 국내 전역까지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로컬푸드의 기준과 적용범위는 제각각이어서, '짝퉁'이 출현해 소비자 가격만 높일 우려도 있다.

먹을거리의 완벽한 지역 내 생산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 역시 로컬푸드 확산의 걸림돌이다. 지역에서 유기농으로 생산된 쌀 원료로 한과를 만든다 치자. 국내에서는 사탕수수가 거의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원료의 설탕을 첨가하는 편이 수월하다. 조청을 자체생산해 로컬푸드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로컬푸드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일본 지산지소(地産地消 :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지역에서 소비)운동의 중심 역할을 하는 직매소의 농산물 취급 비율은 70%에 이른다. 우리나라에서 웰빙과 공정거래 붐을 타고 확산하는 로컬푸드의 성장속도는 만만치 않다. 제도적 지원책과 인증기준 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다.

한편, 지자체가 로컬푸드를 생산을 장려하는 제도적 지원은 걸음마 단계다. 용정순 강원 원주시의회 의원은 로컬푸드 인증을 제도화하고 농가의 로컬푸드 생산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하는 조례를 발의해 12월 6일 의결을 앞두고 있다. 경기 평택시와 충남 서천시에서도 로컬푸드 관련 조례개정 움직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병선 건국대 사회과학부(경제학) 교수는 "로컬푸드의 핵심 정신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복원을 통한 지역사회 복원"이라며 "로컬푸드 운동은 세계화된 먹거리체제에 대한 대안적 성격을 띤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이어 "물리적 거리에만 집착하게 될 경우 신토불이(身土不二) 운동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이를 통해 먹거리의 안전을 확보하고, 그동안 단절됐던 사회적 관계를 올바로 회복시키는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청환기자 ch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