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태우의 "건강은 선택이다"

노인일자리에 몰린 인파
제 진료실을 찾아 온 60세 남자분을 소개합니다. 이 분은 평생을 공무원으로 일하셨고, 현재는 지방의 큰 도시에서 최고위직을 수행하고 계셨는데, 올해로 정년을 맞게 되었지요. 정년이 다가오자 점점 불안과 우울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평생 하던 것이 공무원 생활이었는데 이제 그만 두면 어떻게 할까에 대한 고민이었지요. 본청에서 물러나 유관기관에 2~3년간 더 봉직할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남은 인생을 생각해 보면 근본 해결책은 아니었고,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하여 요즈음 여기저기 아픈 데도 많아지고 큰 병으로 죽을 것 같은 공포에도 시달린다고 하였습니다.

제 진료실에는 이 분 같이 은퇴를 눈 앞에 둔 분뿐만이 아니라 이미 은퇴를 해서 지내는 분들이 종종 옵니다. 그 중 많은 분들이 여러 가지 신체 질병도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을 보게 되지요. 많은 은퇴자들이 그야말로 제대로 살 수가 없어서 자살을 선택한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고 있습니까?

자살이라고 하면 청소년의 자살이나 자살사이트를 통한 20~30대의 자살만 주로 보도가 되기 때문에 나이들은 분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들 하시지요? 60세를 넘은 사람들이 10대, 20대보다도 훨씬 더 많이 자살을 하고, 이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노인들에게는 질병이 많아 질병사로 잘못 진단되거나, 남은 가족들이 쉬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보고된 자살률도 실제보다는 훨씬 낮은 것이지요.

은퇴한 남자들은 최소한 다섯 가지를 잃습니다. 첫째, 가졌던 일에 의한 지위와 경제력을 잃게 되지요. 둘째는 친구가 거의 없어집니다. 그 동안의 관계가 거의 '일'에 의한 관계이었기 때문에 그 일이 없어지면서, 관계도 같이 끝나게 되는 것이지요. 셋째는 건강을 잃습니다. 젊었을 때 일에 올인하다 보니 자신의 건강을 챙길 기회를 무시한 결과입니다.

넷째, 할 수 없이 자신의 자식들에게 가서 '야, 아들아 같이 놀자!' 라고 해 봅니다. 그랬더니, 그 아들이 심각하게 반문을 하지요. '아빠! 나 힘들 때 아빠는 어디에 있었어?'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부인에게 갑니다. '마누라야! 나하고 같이 놀자.' 하니까 이 번에는 부인이 심각하게 나옵니다. '우리 이혼하자!'. 물론 모든 은퇴자가 이 다섯 가지를 다 잃지는 않겠지만, 정말 그렇다면 무슨 선택이 남아 있을까요?

여기서 잠깐 남자와 여자의 생존능력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한번 살펴 볼까요? 여자가 훨씬 뛰어나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쉽게 짐작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홀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남자들은 했던 일은 잘 하지만 기본적인 생존능력에 있어서는 배운 적이 없거나 무능하기까지 하지요.

음식 만들기, 입을 옷 준비하기, 집안 청소하기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더구나 자존심이 강해서 이런 일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깊은 좌절과 우울에 빠지게 되지요. 남에게 부탁하는 것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그러니 하는 일이 없을 때, 부인이나 누군가가 뒤치다꺼리를 제대로 해 주지 않으면 얼마나 그 생존이 어렵겠습니까?

과거에는 은퇴 후 5년 내지10년 어영부영 보내면 대충 다 죽었습니다. 그래서 은퇴 후를 그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요. 요즈음에는 어떻습니까? 은퇴 후에도 20~30년은 너끈하게 살고, 많은 사람들이 40년을 더 살기도 합니다.

한국의 은퇴자가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제 성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지난 30~40년간의 고도경제성장 시대를 겪으면서 많은 40~50대의 남자들이 질병으로 죽었다는 것을 여러분들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제 40~50대에 질병으로 죽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은퇴자들이 자살을 하기 시작합니다. 이게 다 무슨 이유일까요?

박정희시대로 대표되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가 지금도 그대로 우리의 가장 강력한 가치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시기 이후 1인당 국민소득은 수 백배 증가하였고,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세계 13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더 행복하지도 않고 한국에서 살기 싫다고 떠나는 사람도 많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훨씬 많아졌지요.

저는 오늘부터 새로운 선택을 하라고 권고를 드립니다. 그 동안의 삶이 열심히 일하고 일찍 은퇴해서 편안히 살아 보겠다는 주의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즐겁게 일하고 죽을 때까지 은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현재 있는 직장에서 승진과 성공만을 바라보고 있는 분들은 반드시 그 승진과 성공 후의 추락도 동시에 고려해 보실 것을 권고드립니다. 같은 일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지금부터 준비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유태우 신건강인 센터 원장 tyoo@unh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