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KBS 2TV '사랑과 전쟁'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경제적 성장을 달성하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의 잠재적 능력이 그만큼 높은 덕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밤잠을 줄여가며 산업일선을 지켜낸 근로자의 수고와 높은 교육열이 큰 몫을 하였다.

그런데 그처럼 최선을 다하여 경제발전을 추구하다 보니 개인의 행복과 가족의 소중함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여기게 된 면이 있었고 그 부작용은 오늘날 우리나라 가정의 위기로 나타나고 있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나라의 많은 어버이들은 일자리를 찾아서 가족을 떠나 머나먼 타국에서 피땀을 흘렸다. 그렇게 고생해서 키운 자녀들이 이제는 장성하여 산업전선에 나서게 되자 또 다시 자신의 가족을 떠나 세계 방방곡곡으로 나아가거나 국내에 있더라도 경제활동을 이유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결혼을 하고서도 직장이나 자녀교육 등을 이유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1인 가구가 5년 전에 비해서 37.9%가 늘어났다. 세대는 달라졌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단란한 '가족의 꿈'을 포기하고 사는 것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는 지방에서 직장을 다니지만 나머지 가족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서울에 사는 소위 '주말가족'과, 결혼은 하였지만 빨리 돈을 벌기 위해서 떨어져 살기를 선택한 '주말부부'가 늘어난 때문이다.

물론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고 또 오랜만에 만나면 연애감정 같은 설렘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부부나 가족이 떨어져 살다 보면 많은 위험이 따른다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신혼부터 떨어져 사는 주말부부는 예전의 이성친구 관계와 별 차이가 없어서 결혼은 했지만 각자 자유롭게 살다가 함께 살게 되면 미처 알지 못했던 불편함과 배우자의 단점들이 갑자기 부각되어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남편의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이다. 직장을 마치고 귀가하면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이 하나 없다는 느낌을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고, 구태여 시간을 맞추어 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직장동료와 어울리고 술이라도 한 잔 하다 보면, 자신이 이렇게 사는 이유가 막연해진다. 그래서 더러는 유흥업소의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고,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애인' 정도는 있어야 한다는 부추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부인에게 잠자리를 거절당하기라도 하면 그 이유를 알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외도를 합리화한다.

반면 자녀를 맡고 있는 부인은 집안의 대소사 처리를 포함하여 부모의 역할을 혼자서 다 하느라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주말에 돌아온 남편이 이런 부인의 사정을 헤아려 위로해준다면 다행이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이 자신의 피로를 풀어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사소한 말다툼이 싸움으로 이어지기 쉽다.

또 자녀들은 어머니와 나름대로의 약속을 해서 잘 지내고 있는데, 아버지가 와서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하는 것이 싫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나중에는 서로 떨어져 있을 때가 차라리 더 편안하더라는 느낌을 갖게 되면 차라리 이혼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가족은 함께 지냄으로 서로를 더 잘 알게 된다. 각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을 머리로는 이해하더라도, 직접 부대끼며 겪는 것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불편을 감수하고 지내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사랑이 단순한 감정 현상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결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일정기간 떨어져 지내야 하는 가족들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자주 연락하여 위로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공백을 최소화하고, 공동의 목표나 활동을 통해서 가족생활의 즐거움을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노력이 효과를 나타내면 주말부부라도 동거부부보다 더 깊은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