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역설적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높아지게 된 데에는 과거보다 사랑을 중요시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오늘날에는 결혼을 의무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즉 자신이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하려고 하기 때문에 결혼의 결정에 더 신중해지기도 했지만, 결혼을 한 후에도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거나 자신이 배우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면 과감히 이혼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고 있다.

이는 자녀가 있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가족제도와 같은 이데올로기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경향은 남성들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반드시 여성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약해진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오래 전부터 남성들은 부인에 대한 사랑이 식었을 때 집밖에서 그 대안을 찾을 수 있었다.

즉 직업에 몰두하거나 친구나 여러 유흥 수단을 통해서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의 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거 여성들은 그런 대안을 찾기 어려웠으며, 그래서 자신의 팔자를 탓하고 살아가거나 자식에 대한 과도한 헌신으로 한을 풀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 지적으로나 경제적인 면에서 남성보다 그다지 불리하지 않게 된 현대 여성들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 가정문화의 변화는 여성이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성의 이런 변화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남편은 부인을 충분히 사랑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부인의 사랑을 얻지도 못한다.

문제는 이런 남편일수록 자기 부인의 심리적 상태를 잘 모르거나 가볍게 여긴다. 자신의 부모님 세대나 비슷한 친구들의 말만 듣고서 자신의 가정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 부인은 결혼생활에 불만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녀를 위한 마음이나 경제적 사정 때문에 이혼을 못하고 있는 것뿐일 경우가 많다.

어떤 부인들은 젊어서는 남편의 기세에 눌려서 지내다가 자녀가 장성한 후에 갑자기 이혼을 요구해 오기도 한다. 실제로 젊은 층의 이혼은 줄고 있는데 비해서 장년 이후의 소위 '황혼 이혼'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아니면 이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어서 당한 서러움을 보복이라도 하듯이 늙고 힘없어진 남편을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한다.

이런 부인들의 분노는 너무 강해서 상담이나 약물로도 치유가 어려울 정도다. 그 남편의 입장에서는 뒤통수를 맞은 것 같겠으나, 이런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서 미처 충분히 예방하지 못한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또한 여성의 사회활동이 늘어나면서 여성의 애정욕구가 남성들보다 결코 적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자신의 욕구를 가정에서 해소하지 못한 부인은 행복해 보이는 다른 여성이나 자상해 보이는 다른 남자를 보고서 자신이 불행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불만을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하면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커지고, 더러는 부인의 외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아니면 부부 모두 서로에 대한 신뢰가 깨져서 결과적으로 그 가정은 돈 벌어오는 남자와 살림하며 애 키우는 여자의 공동 거주공간 정도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이런 가정의 불행은 부부에게만 머물지 않고 나아가서 그 자녀까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를 피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젊어서부터 서로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오랜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부부도 화해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또 바람직한 부부의 모델을 모르거나 선천적으로 애정표현에 서툰 사람이라도 가정을 지키고 자녀의 장래 행복도 살피려는 의지가 있으면 그 방법을 배워서 실천할 수 있다.



박수룡 백상신경정신과의원 부부치료클리닉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