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아이디어에 문화와 전통 담은 업그레이드 제품 속속확실한 유통경로 판매처 확보 시급… 소비자 인식도 변해야

여행에서의 아름다웠던 추억과 느낌을 고스란히 담는 유일한 실물이라면 바로 관광기념품!

그런데 여행의 끝자락에서 가끔은 망설이게 한다. '안 사자니 어딘가 섭섭하게만 느껴지고 막상 지갑을 열어 사자니 뭔가 부족한 듯만' 싶어서다.

특히 국내 여행을 다니면서, 혹은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선물을 권할 때마다 흔히 갖게 되는 고민이다. 과연 전혀 다른 한국의 관광기념품은 없는 것일까?

대한민국 관광기념품이 명품화를 서두르고 있다. 그간 관광기념품이라면 어딘가 조악해 보이면서 고급스러워 보이지도 않는 물건이란 것이 일반인 대부분이 갖는 인상.

하지만 종전의 '그저 그렇기만 해 보였던' 선입견을 벗어나고 우리 전통과 문화를 담은 고급 명품으로의 업그레이드 노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천연 염색한 한지사와 생사. 그냥 그대로는 우리네 옛 종이와 천에 불과하지만 화사한 색깔을 입혀 조각보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그렇게 만든 것을 전통 창호처럼 벽면이나 좁은 공간에 걸면 '발'로 변신도 가능하다. 테이블에라도 깔며 매트처럼 사용되니 일석3조. 지난 해 시장에 첫선을 보인 한병우씨의 관광기념 작품 '천연의 빛'이다.

보통 뚜껑을 열면 음악 소리가 흘러 나오는 오르골(자명금). 자개를 재료로 만들고 한국의 음악을 담아 본다면…몸체는 한국의 전통 이미지와 자연을 소재로 제작됐고 아리랑이나 고향의 봄 같은 음악은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인상을 전해 주기에 충분하다.

1년 여전 무늬공방 유병록 대표가 처음 개발한 이 기념품은 전통과 자연, 문화를 동시에 효과적으로 시청각 상품화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한국관광공사(사장 이참)에 따르면 최근 국내 시장에 새롭게 선보이는 관광기념품은 연간 수천여 가지 이상으로 파악된다. 해마다 수적으로도 늘어나고 있지만 무엇 보다 제품의 질이 크게 향상되고 있다는 것이 또한 고무적인 사실. 새로운 발상으로 다양한 품목과 제품들이 폭넓게 선보이면서 관광기념품도 이제 명품화 수준으로 올라서는 추세를 보여준다.

우리 관광기념품의 업그레이드를 즉석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현장은 관광공사 주최로 열리고 있는 전국관광기념품 공모전.

한국의 멋과 소리
지난 해 12회 째를 맞은 이 전시회에는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선보이는 후보 관광기념품들로 넘쳐난다. 지금까지 무려 1만3000여점이 출품되면서 지난 해에는 사상 최고의 경쟁률을 경신했을 정도다.

특히 공모전이 '강산도 변한다'는 10여년의 연륜을 넘기고 출품작들도 밀려들면서 기발한 아이디어와 뛰어난 품질로 무장한 '명품급' 관광기념품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제주의 흙으로 빚은 살아 숨쉬는 옹기를 이용한 과일꽂이. 그 위에다 원색의 단아함이 살아 있는 산호와 옥으로 치장하고 칠보 공예까지 더해준 제품은 비로소 '한국 스타일의 과일꽂이'로 새롭게 태어났다. 동양적인 화려함을 드러내는 칠보공예는 특히 전통의 멋과 아름다움까지 선사해준다.

플라스틱이나 일반 철제로 만들어진 메모지함이 싫다면… 나전칠기 메모지가 한국을 표현하는 관광기념품으로 이제 그 자리를 대신한다.

한국의 전통 나전칠기로 만든 자개 메모지함은 대중적 메모지와 전통 소재인 자개를 결합시킨 콘셉트. 현대 생활 속에서 자개의 멋과 정취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공예 문화소품이면서도 업무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전북 일 08 천연의 빛
한국 전통 의상으로 카드를 만드는 것은 어떨까. 우리 궁중 전통 의상의 문양과 색상 형태를 특수지에 디자인, 다양한 색상과 의미, 내용을 전달하는 축하카드로도 쓸만 하다. 물론 해외 관광객들에게 한국의 전통 의상을 보여주는 문화상품으로서는 기본.

제주도에서는 흔하다 할 수 있는 말총(말꼬리털)도 문화관광상품으로 각광을 받는다. 제주의 대표적 상품인 갈천과 천연가죽, 염색한 말총을 활용해 키홀더나 자석메모 홀더, 냅킨 홀더 등으로 디자인하는 것도 이미 현실화 돼있다.

또 한국의 전통 한복 인형을 자석을 이용해 생활용품에 접목시킨 '', 천연 재료인 자개로 입체감과 색감의 조화미를 살린 '자개 벽걸이 액자', 장생과 장수의 염원을 담고 있는 한국의 전통 문양인 당초문양을 응용한 장식을 선보이는 액세서리들, 천연가죽을 그대로 사용해 부드럽고 고급스러운 이미지의 통가죽으로 만든 나전칠기 등도 모두 최근 새롭게 출시된 '신인 관광기념품'에 속한다.

한국관광공사 관광서비스개선팀 안철한 과장은 "요즈음 시장에 선보이는 관광기념품들은 소재와 문양, 디자인 콘셉트면에서 우리 문화와 전통을 살리면서도 실용적인 용도를 함께 갖추고 있다는 특성을 띤다"고 설명한다. 여기에다 이제는 품질까지 뒷받침 되면서 '살만한, 그리고 소장하고, 또 선물할 만한' 수준의 상품성도 더해지고 있다는 것.

특히 근래 들어서는 첨단 IT(정보통신) 기술까지 접목시킨 관광기념품들이 속속 등장하며 새로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문화와 전통, 예술이라는 고정 요소에 디지털 기술이라는 또 하나의 특장점이 더해지고 있는 추세.

131 번 한국 전통의상 카드
나전 디지털 액자나 이 대표적 기념품. 소중한 사진을 담아 집이나 해외여행중에도 간편하게 볼 수 있는 나전 디지털 액자는 나전의 영롱함만으로 장식용으로도 인기가 높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깃들어 있고 서울을 상징하는 해치와 궁의 느낌을 담은 봉황 이미지를 각종 디지털 용품에 전통 옻칠로 접목시킨 문화상품 또한 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도이다. 휴대전화보조충전기나 마우스, USB메모리, 이어폰 등이 모두 가능한 대상 제품들이다.

관광공사 장재선 관광서비스개선팀장은 "전통소재와 생활용품의 결합, 도자기에 나전이나 옻칠을 더하는 것 등 복합적인 문화적, 기술적 시도 등 신종 관광기념품들은 기존의 단순한 장르 벽을 허물고 있다"고 설명을 덧붙인다. 또한 단순한 추억, 기념, 장식만을 위한다기 보다는 건강, 기능 등 실생활적인 성격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는 평.

새로운 차원의 관광기념품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히트작들도 탄생하고 있다. 수년 전 제주 마그마석으로 생활잡화나 기능성 건강 제품을 만든 아이디어는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기업형 성공 스토리로 회자된다. 한국의 주화를 기념품 주화로 만든 시도 또한 관광기념품 중에서는 최대 매출을 올린 사례 중 하나. 전통가옥이나 거북선, 초가집 등을 조립식 키트로 만든 기념품도 히트를 쳤다.

하지만 이처럼 독특한 아이디어, 뛰어난 품질 수준과 작품성까지 갖춘 이들 명품급 관광기념품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가장 시급한 것이 시장에서의 확실한 유통 경로와 판매처 확보. 아무래도 대부분의 관광기념품들은 크게 '밝은 빛'을 보지 못하고 그저 그런 제품으로 연명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제주 일 16 한국 스타일 과일꽃이- 백년해로
"시장이 중국산 싸구려 기념품들로 넘쳐 나잖아요. 머리를 쓰고 정성을 기울여 좋은 관광기념품들을 만들어 놓아도 많은 경우 그 뿐입니다. 고정적인 판매 수요가 보장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더 이상의 연구개발이나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관광명품협회 김명효 부회장(맘키드크래프트 사장)은 "시장에서 싸고 조잡한 중국산 관광기념품들의 범람은 관광기념품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까지 확산시키며 자칫 국내 관광기념품 시장 전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고 현실적인 어려움을 토로한다.

실제 예상 이상으로 우수한 품질의 이들 관광기념품들을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쉽게 접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유통 경로가 그리 넓지 못하고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념품들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의 아트숍, 일부 전문 공방 등에서만, 소규모로 판매되고 있는 실정.

때문에 지금까지 개발된 관광기념품이 상품화되고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그 자금이 다시 신상품 개발에 재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수준 높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작품들도 이런 여러가지 구조적 모순 때문에 그 빛을 제대로 발하지 못해 왔다는 것이 세간의 평가다. 유통에서의 수익 배분 문제, 관련 업체들의 영세성, 외국산 관광기념품들의 국내 시장 잠식 등은 세부적 요인들로 꼽힌다.

"여러 가지 이유들로 거론되지만 가장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소비자의 인식입니다. 관광기념품을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이 우선 적은 돈으로 싼 것부터 찾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왜 싸고 좋은 것만을 사려 하나요? 좋은 물건이라면 조금 더 주고라도 사는 것이 정석이 돼야 합니다." 한국관광명품협회 김영애 회장(우주산업 사장)은 일반인들이 관광기념품을 대하는 기본 태도와 인식에서부터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광양죽필
또한 '관광기념품=곧 장식품'이라는 고정관념도 최근 변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집안의 인테리어 장식 범위에서만 벗어나 문화 예술성을 갖추면서도 실생활에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는 실용성을 겸비한 상품들이 크게 늘어나는 추세.

새로운 차원과 수준의 관광기념품들이 각광을 받으면서 일반에게 가깝게 다가서려는 노력도 작지만 강하게 추진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경우 해 마다 공모전이 끝난후 일반을 대상으로 전시회를 갖고 있는데 그간 서울 일변도에서 지방으로까지 전시를 확장하고 있는 것.

대구와 부산, 광주에 이어 지난 해에는 남이섬에서 전시회가 열렸다. 무엇 보다 대도시가 아닌 유명 관광지에서 전시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주말 평균 수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는 장소에서 전시를 함으로써 홍보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 드는 장소라는 점이 고려됐다.

"관광기념품은 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을 반추할 수 있게 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의 독특하고 감동적인 추억을 잊지 않고 새록새록 되새길 수 있도록 해준즌 우리만의 멋스러운 관광기념품은 그런 의미에서 작지만 매우 중요한 관광상품이라고 봅니다."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은 "아름다운 관광기념품이 외국인들에게는 한국에서 가장 처음 만나는, 그리고 먼 훗날까지 그들의 일상과 함께 하는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며 "관광기념품이 촉매제 역할을 해 그들이 주변에 한국을 선전하고 스스로 다시 한국을 찾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콘셉트의 이들 관광기념품은 관광공사 지하1층 판매관에서도 일부 전시 판매된다.

5번 나전칠기 메모지

제주 일 08 말총을 이용한 관광상품
겨레의얼 신훈민정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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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의 만남 제주감귤정과
나전디지털액자
구름문양을 이용한 식기세트
Dream of Hacci
해치와 봉황의 이미지를 응용한 디지털 선물용품
자개장식과 금속을 결합한 전통당초 문양액세서리
제주화석을 이용한 데스크 상품

남이섬=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