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두구육' 둘러싼 사회 저명인사들의 가상 토크

비빔밥은 요즘 괴롭다. 산케이 신문 구로다 기자가 '양두구육'을 들먹이며 시비를 걸어 왔을 때는 스스로도 잠시 발끈했지만 곧 이어 폭탄처럼 각계 각층에서 반론이 튀어 나오자 이젠 제발 그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나 세계 무대 진출을 코 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득이 될지 실이 될지 알 수 없는 이런 논란은 반갑지 않다. 괴로워하는 비빔밥을 위해 끝장토론 시간을 마련했다. 비빔밥 비하를 둘러 싼 명사들의 한 마디를 토론으로 재구성했다.

사회자: 안녕하십니까? 이곳은 비빔밥 끝장토론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입니다. 논란의 시발점이 된 구로다 기자와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이자 칼럼니스트, 소설가 이외수 님, 가수 김장훈 님, 배우 김정은 님, MBC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께서 나와 계십니다. 구로다 기자께 먼저 여쭙겠습니다. 요새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괜찮으신지요?

구로다: 칼럼이 나간 후 항의 전화를 수도 없이 받았습니다. 내가 사무실에 없을 때 때려 죽이고 싶다, 주소가 어디냐, 찾아 가겠다는 등 마치 신체 위협을 가하려는 듯한 그런 뉘앙스의 전화가 왔었다고 비서로부터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전화들로 인해 제가 실제로 신체적 위협을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그보다 뭘 이렇게 심각하게 받아 들입니까? 칼럼 전체를 읽어 보기는 했습니까? 비빔밥이 보기엔 아름다운데 막상 먹을 때는 숟가락으로 맹렬히 뒤섞어 정체불명의 음식이 돼버리니까 서양 사람들이 보기에 괜찮을까 걱정해서 한 말입니다.

김정은: 저, 잠시만요. 비빔밥은 숟가락으로 비비지 않구요, 젓가락으로 비빕니다. 참고로 고 마이클 잭슨이 내한했을 때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기도 하고요.

구로다: 네, 뭐 어쨌든 한국 사람들은 팥빙수든 카레 라이스든 자장면이든 전부 뒤섞어 먹는 습관이 있는 반면 서구와 일본에서는 음식을 비벼 먹는 문화가 없습니다. 그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킬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보기엔 비비고 난 후에 음식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니 좋은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지요.

이외수: 음식 문화를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일본의 회나 스시는 아직도 원시 상태를 탈피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미개한 음식 그 자체이지요.

사회자: 이외수 선생님, 감정적인 표현은 자제해주십시오. 이모티콘처럼 논란을 유발할 수 있는 도구는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구로다: 이외수 선생에 대해서는 평소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뭐 재미있게 말해야 관심을 끌고 화젯 거리가 되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겠지요. 저는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장훈: 저는 별로 화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 편협함에 대해 안쓰러움을 느낍니다. 비빔밥을 비볐을 때 모양이 파괴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화가가 물감을 비벼 섞듯이 음식을 자기에 맞게 조합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어할 수도 있구요. 그 많은 경우의 수 중 오직 하나, 모양이 파괴된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시다니… 그리고 비빔밥을 두고 양두구육이라고 하셨는데요, 겉모습은 서민적이지만 그 안에는 엄청난 맛과 영양이 숨어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구두양육이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구로다: 양두구육이라는 말은 일본에서는 일상에서 가벼운 농담으로 쓰이는 말입니다. 식당에서 음식 견본과 실제 음식이 다를 경우 '이거 양두구육이네'라고 말하는 정도입니다. 물론 좋은 뜻은 아니지만 유머라고 쓴 건데 내가 마치 한국 음식을 사기로 묘사한 것처럼 심각하게 받아 들이시는 것 같네요.

이어령: 음식 맛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거야 각자 자유니까 어떤 의견이든 받아 들이고 참고해야 하는 것 맞지만 이 양두구육이란 말은 정서에 맞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오방색에 끌려 먹으러 왔다가 비비면 없어지니까 허망할거다 뭐 이런 말씀이신데 정말 양두구육이 그런 뜻이라면 일본 음식이야말로 양두구육이 아니겠습니까? 눈으로 먹는다는 일본 음식은 보면 아름답고 먹기 아깝지만 막상 먹어보면 별 맛이 없거든요. 오히려 본인들 얘기를 한 게 아닌가 생각되네요.

구로다: 실제로 일본 음식은 시각적으로 아주 신경을 많이 씁니다. 맛을 혀로도 보고 눈으로도 보는 셈이지요. 이어령 교수님의 표현도 틀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 사람이 일본 음식을 먹었을 때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겁니다.

사회자: '무한도전-한식 세계화' 방송 이후로 <뉴욕 타임스>에 비빔밥 광고를 게재한 김태호 PD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태호: 그 광고가 나간 후 미국 현지에서는 비빔밥이 웰빙 샐러드 밥으로 인식되면서 미국인들이 직접 신문을 오려 식당을 찾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스시가 고급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세계화에는 비빔밥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음식이 세계화되니까 배가 아프셨나요? 앞으로 한식당 근처에는 얼씬도 못 하시겠습니다. 한식을 드신다면 본인 스스로가 양두구육이 될테니까요.

조갑제: 한식을 세계화하려면 어설픈 민족주의부터 버려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한국 음식에 정통한 일본 기자가 비빔밥을 비판했다고 해서 한국 지도층들이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어떤 외국인들이 한국 음식을 먹어 주겠습니까? 음식점 주인이 손님으로부터 지적을 당하면 '앞으로 더 잘 만들겠습니다' 해야지, '싫으면 먹지 마' 해버리면 누가 그 음식점을 다시 찾겠느냐는 말입니다.

구로다: 자부심을 가지고 <뉴욕 타임스>에까지 광고를 했으니 감정적으로 말이 나오는 것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는 제 칼럼에 대해 한 외국인의 시각으로 보고 긍정적으로 참고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너무 거부 반응이 심하니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한국 음식을 전략적으로 알리는 과정에서 외국 사람의 의견을 거부하면 어떻게 세계화를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여전히 비빔밥이 그대로 세계에 나가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비빔밥보다 다른 좋은 음식이 많지 않습니까. 저는 이전부터 한정식을 살리자고 주장해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비빔밥이 가장 먼저 나가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이어령: 한식에서 왜 자꾸 비빔밥을 이야기하냐 하면 전통적으로 그 오방색이 혼합의 사상, 나와 다른 이질적인 것들을 조화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짠 반찬과 싱거운 밥이 입 속에 들어가 간이 다른 음식들이 하나로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한국 음식은 완성됩니다.

서양 음식은 하나 하나 독립돼 있어 접시 하나 먹고 또 다음 접시를 비우는 식이라면 우리는 비빔밥처럼 육해공에서 나는 서로 다른 맛을 다 같이 조화시켜서 먹죠. 이렇게 전부 비벼서 먹는 것과 따로 먹는 것은 음악으로 치면 교향곡과 독주곡의 차이와 같습니다. 이런 음식 문화는 가까운 일본이나 중국에도 없습니다. 한국 고유의 문화로 우리의 정신이 음식에까지 미친 경우입니다.

사회자: 비빔밥을 비빌 때 모양이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 맞게 조합하는 것이라는 발언과 한식을 세계에 알리고자 할 때 외국인의 의견을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비빔밥이 상징하는 한국인들의 조화의 정신에 대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비빔밥의 정신에 맞게 쓴 소리도 함께 비벼서 맛있게 먹는 자세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토론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 모든 발언은 <뉴스 한국>, <평화 방송>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 집중> 라디오, <쿠키 뉴스>, 개인 블로그,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음을 양해 바랍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