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광덕사(廣德寺)고려 충렬왕때 유청신이 원에서 모?과 열매 들여와 심었다고 전해져

광덕사 호두나무는 수령 약 400년, 높이는 18미터에 이른다
중학교 여름방학 때 고향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처음으로 호두과자라는 것을 알았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 탓에 망설이다가 큰 마음 먹고 호두과자를 샀다. 이렇게 맛난 과자가 있다니, 감격스러웠다.

요즈음에는 어디서나 호두과자를 맛볼 수 있으나 옛날에는 천안역(충남)을 경유하는 열차나 천안시내에서만 호두과자를 만날 수 있었다.

봄의 문턱에 선 주말, 호두과자의 재료인 호두나무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심은 곳이라는 광덕사(廣德寺, 충남 천안시 광덕면 광덕리)를 찾았다. 643년(신라 선덕여왕 12년) 또는 652년(신라 진덕여왕 6년)에 자장율사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832년(신라 흥덕왕 7년) 진산화상이 세웠다고도 전해지는 천년 고찰이다.

신성과 세속을 갈라놓는 경계인 일주문을 지나 광덕사 아래에 이르렀다. 노거수 호두나무가 우뚝 서서 나그네들을 반긴다. 1998년 12월 천연기념물 398호로 지정된 이 호두나무는 수령 약 400년으로 추정되고 높이는 18미터에 이른다.

신성과 세속을 갈라놓는 경계인 광덕사 일주문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9월이라고 전해진다.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오던 유청신(柳淸臣)이 호두나무의 묘목과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유청신의 장흥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의 광덕사 호두나무는 그때 심은 나무가 아니다.

호두나무 위에 있는 보화루를 지나 절 마당으로 들어서니 정면으로 대웅전이 보인다. 광덕사 대웅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1984년 5월 문화재자료 246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872년(고종 9년) 중건했으며 1983년에 완전히 해체하여 다시 복원했다.

돌사자, 부도, 마애금강역사상 등이 눈길을 끌고

대웅전 앞 층계 아래 양쪽에는 돌사자 한 쌍이 조각되어 있다. 왼쪽 사자는 입을 다물고 있고 오른쪽 사자는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이다. 풍화로 인한 마멸이 심해 사자의 형상을 찾아보기 어려워 아쉽다. 조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되는 이 작품은 1984년 5월 문화재자료 252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 앞의 삼층석탑은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1985년 7월 지방유형문화재 120호로 지정되었다.

절 뒤 산비탈로 잠시 오르면 1978년 12월 지방유형문화재 85호로 지정된 부도밭과 만난다. 청소당 부도, 적조당 부도, 우암당 부도 등 팔각원당형 부도 3기는 아래쪽에 나란히 놓여 있고 위쪽에는 석종형 부도 1기가 홀로 서 있다. 위쪽 부도는 임자가 알려지지 않은 무명 부도다. 전반적인 형태로 미루어 4기 모두 조선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광덕사 부다밭. 3기는 아래쪽에 놓여 있고 위쪽에는 1기가 홀로 서 있다
부도밭에서 내려오면 다리 건너편에 천불전이 자리잡고 있으나 너무 근대적인 건물이어서 감흥을 느끼기 어렵다. 그러나 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금강역사는 금강저를 들고 불법을 지키는 수호신인데 이곳 금강역사상은 천의(天衣)가 몸을 감싸고 있어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조선 시대 여류 시인 운초 김부용 묘를 찾아

광덕사에서 장군바위와 광덕산 정상(699m)을 거쳐 광덕사로 되돌아오는 4시간 남짓한 산길은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다. 광덕산은 천안 12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설경이 아름다워 겨울 산행지로도 인기가 높다. 광덕산 정상으로 오르지 않더라도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인의 한 사람인 김부용 묘는 꼭 들러보자.

광덕사에서 김부용 묘로 향하는 길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기분 좋은 눈길을 20분쯤 걸으면 김부용 묘에 이른다. 김부용 묘는 온통 눈으로 덮여 있고 그 위로는 임자를 알 수 없는 무명 묘가 또 있다. 사방이 숲으로 에워싸여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송도 황진이, 부안 이매창과 더불어 조선 시대의 3대 명기로 꼽히는 운초 김부용(雲楚 金芙蓉 : 1820~1869)은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시문과 가무에 재능이 있었던 그녀는 부모를 여의자 어쩔 수 없이 기녀의 세계로 들어선다. 그러다가 평양감사 김이양의 눈에 들어 그의 소실로 들어간다. 내조에 힘쓴 그녀는 주위의 칭송을 받아 초당마마라고 불렸다.

천불전 입구 다리 앞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진 마애금강역사상
1845년 김이양과 사별한 그녀는 정절을 지키며 여생을 보내다가 눈을 감으면서 김이양의 묘 근처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49년의 짧은 생애 동안 그녀는 운초시집, 오강루(五江樓) 등의 문집에 한시 350여 수를 남겼다. 그녀의 업적을 반추하며 김부용 묘를 뒤로 하고 산을 내려온다. 1974년부터 매년 4월말 경 천안문화원 주최로 운초 추모행사가 열린다니 꽃 피는 봄날 다시 찾아올 것을 기약하면서.

맛있는 집-산자락
3단 회전식 참나무 바비큐

광덕사 버스 종점에서 약 200미터 위에 자리한 산자락(041-567-0747, 2249)은 3단 회전식 참나무 바비큐로 명성이 높다. 하단부의 고온 레일에서 상단부의 저온 레일로 위치를 바꿔가며 고기를 구워 육질이 부드럽고 육즙이 풍부하다. 가마에서 구운 고기는 손님상에서 다시 숯불로 데워 먹는다.

구이 재료는 훈제 오리, 통삼겹살, 등갈비 등이며 이들을 모두 맛볼 수 있는 모듬 바비큐도 준비된다. 각종 나물류와 김치류, 곤약 등 밑반찬도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가마솥밥, 묵은지찌개, 연잎밥, 누룽지밥, 파전, 묵무침 등도 낸다. 모닥불 고구마구이장, 정자 쉼터, 그네, 널뛰기장, 연못, 족구장 등을 갖춘 공원 같은 분위기도 마음에 든다.

여행 TIP

운초 김부용 묘 위로 임자를 알 수 없는 무명 묘가 또 있다.
차를 몰고 오기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를 권한다. 연료비도 절약하고 운전의 피로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데다 음주운전의 걱정 없이 산자락의 바비큐를 맛보며 동동주 등 한잔을 곁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수도권 전철이나 열차를 타고 천안역에 이른 다음 역 앞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광덕사행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산자락'의 대표 메뉴인 모둠 바비큐. 오리, 삼겹살, 등갈비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