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2)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가정식과 뜨거운 탱고 공연이 있는 레스토랑

위좌) 빠스뗄 드 빠빠, 위우) 니뇨 엔부엘또, 아래) 까바요 스테이크
'아르헨티나 사람은 스페인어로 말하며 프랑스인처럼 생각하고 유대인처럼 일하며 스스로를 독일인이나 영국인이라고 착각하는 이탈리아인이다.'

올해는 아르헨티나 건국 200주년의 해다. 이민자들이 이룬 나라. 19세기 후반 달러를 찾아 배를 타고 건너 온 유럽인들('엄마 찾아 삼만리'의 엄마를 포함한)이 현재 아르헨티나의 시작이다.

수많은 민족, 그리고 그 수만큼 많은 문화가 녹아 엉겨 붙어 제 3의 무엇을 만들기에 200년은 너무 짧은 시간이다. 그 말인즉슨 이 나라에서 고유의 음식 문화란 기대할 수 없다는 소리다.

멕시코의 선인장 요리를 보고 흥분한 이들은 남미의 파리라 불리는, 지구 반대편의 이 신비한 나라에서야말로 고대 문명의 흔적이 느껴지는 이색적인 요리를 맛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기대는 곧 깨지고 만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에서 건너온 이들은 자기네가 먹던 피자와 홍합찜을 그대로 싸 들고 와 그 나라에서 똑같이 먹고 있다.

아르헨티나식 디저트 '엠빠나다'
때문에 몇 년 전 신사역 근처에 아르헨티나 음식점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문을 연 것은 참으로 신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마치 피렌체에 문을 연 미국 전통 음식점이나 파리 깡봉 거리에 새로 오픈한 한국 양장점처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킨다.

"도대체 뭘 팔고 있는 거야?"

지구 반 바퀴를 돌게 만드는 맛, 아사도

"아르헨티나 하면 쇠고기죠. 유럽에 있는 아르헨티나 음식점은 전부 스테이크 하우스예요."

피자, 파스타 같은 익숙한 음식들의 나열로 잠시 김이 새기는 했지만 '이 음식이야말로 아르헨티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기는 하다. 아사도라고 불리는, 원주민들의 음식에서 유래한 이 쇠고기 요리는 다른 것 없이 그저 장작불에 오래오래 구운 쇠갈비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지하에서 펼쳐지는 탱고공연
특별한 양념이나 조리법 없이 소금만 쳐서 구운 아사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유는 순전히 아르헨티나의 특별한 소 때문이다. 인구 3천만 명에 소가 6천만 마리인 이 나라에서는 남한의 28배에 달하는 넓은 땅의 3분의 1을 소의 사육에 내어주고 사료 대신 무공해 풀을 뜯게 한다.

그 결과 세계 최고의 소를 뽑는 대회에서 매번 1등을 놓치지 않는 최고급 품종의 소가 탄생하는 것이다. 먹어본 이들에 의하면 오직 이 아사도 하나 때문에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것이 전혀 아깝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아사도뿐 아니라 아르헨티나에서는 거의 모든 음식에 고기가 들어간다.

생선도 많이 잡히지만 스페인에서 온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별로 즐기지 않는다. 거리마다 조성된 공원에 주말이면 가족 단위로 몰려 나와 아사도를 굽고, 소의 각종 부위와 내장을 석쇠에 구워 전채로 먹는 빠리쟈다도 유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입 규제 때문에 한국에서 진짜 아사도를 맛볼 수 있는 길은 없다. 대신 레?랑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아르헨티나 식으로 요리한 등심 스테이크와 전통 소스, 그리고 현지인 셰프가 직접 선보이는 아르헨티나의 전통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시내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파는 음식은 전부 유럽식(그것도 전혀 변형되지 않은) 또는 스테이크뿐이기 때문에 전통 또는 고유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것은 원주민인 '아보리헨'들이 집에서 해먹는 음식들이다. '아르헨티나 스페셜'에 있는 빠스뗄 드 빠빠도 그 중 하나로 뚝배기 비슷한 오목한 그릇에 으깬 감자와 치즈, 다진 쇠고기를 넣고 그라탕처럼 구워낸 음식이다.

주로 추운 지방에서 많이 먹는데 세 가지 재료가 층층이 쌓여 있기 때문에 긴 국자나 수저로 바닥까지 푹 퍼서 먹어야 한꺼번에 쇠고기와 감자, 치즈를 맛볼 수 있다. 부드럽고 담백한 으깬 감자에 적당히 짭조름한 쇠고기가 어우러져 한국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 입맛에 잘 맞는다.

남부 지방에서 먹는 니뇨 엔부엘또는 햄과 치즈, 마늘을 얇은 쇠고기로 돌돌 말아 토마토 소스를 뿌린 쇠고기 롤이다. 칼로 한 입 크기로 썰면 가래떡처럼 뽀얀 치즈가 롤 밖으로 비어져 나온다. 양이 적어 보이지만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다.

까바요 스테이크를 시키면 250g짜리 등심 스테이크 위에 볶은 야채, 그리고 그 위에 달걀 프라이를 얹어 나오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특유의 스테이크 서브 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익히지 않은 노른자가 터지고 쇠기름을 제거하지 않은 스테이크의 육즙이 더해지면 제법 괜찮은 조합이 탄생한다.

이렇게만 먹어도 충분하지만 소스의 풍미를 원하는 사람은 함께 곁들여지는 3가지 전통 소스, 치미추리, 쁘루벤살, 끄리오샤 중 하나에 찍어 먹어도 좋다. 올리브 오일에 오레가노와 마늘 등을 넣어 만든 아르헨티나 식 소스인데 다른 음식들과 마찬가지로 이국의 생소한 풍미 대신 어디서 맛 본 듯한, 그래서 거부감이 없는 게 특징이다.

와인에 취하고 탱고에 취하다

디저트 문화도 상당히 발달했다. 밀가루 안에 고기나 치즈, 야채를 넣고 튀긴 엠빠나다는 전문점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디저트이자 전채이다. 우유와 설탕만 넣고 8시간 동안 저으면서 끓여 만든 둘세데레체도 대표적인 디저트다.

한국 사람들은 거의 입에도 못 댈 정도로 달지만 아르헨티나에서는 여기저기 찍어 먹고 발라 먹고 그것도 모자라 그냥 퍼 먹기도 한단다.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는 취급하지 않지만 '우유잼과 아이스크림' 메뉴를 시키면 이 둘세데레체를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물론 달기는 현지의 10분의 1 수준으로 조절했다.

모든 음식에는 와인이 곁들여 진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저렴하고 질 좋은 와인이 많이 나는데 그들은 디캔팅이나 품종을 따지는 격식 따위는 집어 치우고 컵에다가 와인을 따라 자유롭게 마신다. 식당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자리 잡은 지하 4층, 지상 4층의 건물에는 수만 병에 이르는 와인이 빼곡하게 들어 차 어디서나 와인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아르헨티나 와인을 수입하는 멘도사 코리아가 모 기업이기 때문이다. 비싼 와인부터 1만 원대 와인까지 가격대의 폭이 넓으며 테이블에서 마시지 않고 사갈 경우 50% 할인된 가격에 판다.

아르헨티나 요리에 와인을 마시고도 현지의 숨결을 느끼기에 부족하다고 생각된다면 식사를 마친 후 한 층 아래의 탱고 공연장으로 내려가면 된다. 아르헨티나 대사관에서 문화원으로 지정한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 문화의 정수를 알리기 위해 꺼내든 카드는 음식보다는 사실 탱고다.

처음 아르헨티나에 발을 디딘 개척자들이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췄던 탱고는 그 에로틱한 기원대로 실제로도 퇴폐 문화에 일조한 면이 있어 한때 자국에서 금지령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이후 프랑스에서 돌풍을 일으키면서 역수입돼 지금은 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일반인들이 즐겨 추는 밀롱가 탱고와 여자 무용수를 들었다 놨다 하는 현란한 스테이지 탱고로 나뉘는데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하 2층에서는 매일 밤 9시 스테이지 탱고 공연이 펼쳐진다. 식사를 하는 고객들은 무료로 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무용수 2명이 추는 탱고에서는 채 식지 않은 현지의 열기를 가감 없이 느낄 수 있다.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찡그린 얼굴로 열정적인 춤을 추는 남녀 댄서들에게 오뜨라(otra: 앙코르)를 외쳐보라. 시원스런 미소로 답하며 한 곡을 더 춘다. 크리스마스 이브 같은 특별한 날에는 손님들에게 밀롱가 탱고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일요일은 휴무이고 공휴일에도 영업을 한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