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자녀를 양육하는 동안 부모는 자녀를 위해 많은 수고와 양보를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모든 것들이 전부 자녀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부모의 사회경제적 성취가 자녀에게는 오히려 상당한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부모의 지나친 관심과 과잉보호가 자녀에게는 심각한 해를 줄 수 있는 것처럼, 자녀를 위한 부모의 사랑이 현실에서는 의도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면서 가장 잘못하기 쉬운 것이 적절한 때에 자녀를 독립시켜 떠나 보내는 것이다. 특히 오랫동안 역사적인 고난을 견디어 온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자녀의 행복을 자신의 삶의 이유로 삼아 살아왔다.

그렇다 보니, 자녀가 장성한 이후에도 자녀에 대한 책임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 부모에게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은 자녀는 그 사랑의 대가로 부모에 대한 과도한 짐을 지고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이처럼 부모와 자녀가 잘 분리하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최근 방영되고 있는 한 주말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들레 가족>에 나오는 어머니의 잘못은 오늘날 많은 어머니들이 저지르는 잘못이기도 하다.

드라마를 보면 이 어머니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 세 딸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딸들도 역시 어머니의 희생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큰 딸은 어머니의 바람대로 착하고 예쁘게 자라서 부잣집에 시집을 간다. 그것이 어머니의 기대를 실현하는 것일 뿐 아니라 자신의 꿈이기도 하다고 믿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으로는 '동일시(同一視)'라고 하는데, 큰 딸은 그것이 어머니의 희망일 뿐이라는 것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 결혼생활을 해가지만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차츰 깨닫는다.

이처럼 부모의 계획대로만 살아온 사람들은 대개 뒤늦은 허전함과 공허를 맛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진정으로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여 선택하고 고통을 통해 얻어낸 성과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주변 사람에게 칭찬도 듣고 부러움도 받지만, 마치 모래로 만들어놓은 성처럼 이들에게서는 무엇보다도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사소한 유혹에 빠져 외도를 저지르거나 조그만 실패에도 좌절하여 깊은 우울에 빠지거나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반면에 둘째 딸은 어머니의 깊은 사랑과 간섭에 따르는 속박을 벗어나기 위하여 일찌감치 연애를 해서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하는 것으로 반항한다. 부자 언니네처럼 잘 살지 못해서 불편한 점은 많지만 그들 나름대로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준다.

둘째 딸의 선택은 얼핏 보면 큰 딸과는 판이하게 달라 보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같은 맥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만약 이 딸이 어머니와의 심리적 갈등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벗어나 있다면 드라마에서처럼 어머니나 언니와 사사건건 부딪히고 싸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즉 이 딸은 어머니의 속박을 벗어나려고는 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어머니나 언니를 보면 자극을 받는 것이다. 출신 가정의 복잡한 상황이나 부모와의 갈등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른 나이에 독립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찍부터 집을 떠나 생활한다고 해서 정말로 심리적인 독립을 이루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진정한 독립을 이룬 사람은 문제를 회피하는 대신에 문제 중에서 자신이 책임져야 할 부분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한다.

부모의 사랑과 기대에 대한 '강박적 순종'에서 벗어난 자녀라면 부모의 꿈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것이 자신이 바라는 것과는 다르다는 점을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을 부모가 받아들이면 많은 대화를 통하여 상호 발전에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입장의 차이만 확인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불필요하게 상대를 자극하고 비난하는 행동은 자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자녀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어려운 결단을 요구하는 것이므로, 자녀가 이런 곤란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의 기대와 자녀의 행복을 분별하는 것이 현명한 부모의 책임이다.



박수룡 편한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