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3) 미국'올 아메리칸 다이너'… 정통 미국식 햄버거·버팔로 윙 등 맛볼 수 있어

장충동 원조 할머니 족발과 시청 장호왕곱창의 김치찌개, 을지로 우래옥 냉면을 똑같이 재현한 한식당이 보스턴 한복판에 생긴다면?

이태원 길 초입의 올 아메리칸 다이너의 정식 명칭은 리처드 카피캣츠 올 아메리칸 다이너다. 리처드는 꽃미남 사장의 이름, 카피캣츠는 남의 식당 음식을 따라했다는 사실에 대한 떳떳한 공언이다.

남의 식당이 어딘고 하니 미국 전역에 퍼져있는 맛집으로, 사장은 인상 깊게 먹은 식당의 음식 맛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맛을 똑같이 재현해낼 수 있는 레시피를 완성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음식 맛이 잘 기억 나지 않으면 해당 식당 옆의 모텔을 잡아 그곳에서 먹고 자며 같은 맛이 날 때까지 모친과 연구를 거듭하는 촌극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들여온 음식들은 뉴욕의 스타 셰프들이 만든 화려한 작가주의 음식이 아니다. 데니스의 프레시 소시지와 해시 브라운, BW3의 버팔로 윙, 이름 모를 어느 호텔에서 먹은 불맛이 살아 있는 햄버거는 그들이 아침마다 먹고 저녁마다 먹는, 우리로 따지면 집 밥인 셈이다.

미국 음식 문화에 대한 경멸 어린 시선은 20년 전에 비하면 상당히 좋아진 편이다. TGIF와 아웃백스테이크가 들어오기 훨씬 전인 '국민학교' 시절, 할아버지 선생님들은 '200년 밖에 안된 나라에 무슨 먹을 게 있겠느냐'고 빈정거렸고, 한식의 풍성한 콘텐츠와 건강함을 설명할 때는 상대적으로 부실한 미국 음식과의 비교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때는 물론이고 맥도날드와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국을 점령한 이후에도 진짜 오리지널 미국 음식을 맛 본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 음식이 실체와 180도 다르지는 않다. 여전히 패스트 푸드고 고 열량, 고 콜레스테롤 음식들이다. 그러나 맛에서는 큰 오해가 있다. 세상에, 마요네즈와 데리야키 소스로 범벅된 햄버거라니, 김치찌개에 타바스코 소스를 넣으면 기분이 좋겠느냐 말이다.

"더 기름지고 더 짜요"

전세계에 체인망을 가지고 있는 패스트 푸드점과 패밀리 레스토랑이 모든 나라에서 같은 맛을 낼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한국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 미국 음식에서는 기름기가 빠져 나가고 소금이 줄어든다. 그리고 대신 우리가 좋아하는 짭조릅함을 위해 간장이 투입된다.

생각보다 많은 다국적 기업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간장을 사용하고 있다. 타임, 오레가노, 세이지 등 허브류 향신료에 대한 거부감도 아직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빠진다. 고기에 달달한 맛을 첨가하는 것도 동양만의 요리법이다.

이런 여러 과정을 거쳐 어떤 것들은 변형되고 어떤 것들은 아예 퇴출되기도 하는데 퇴출된 비운의 메뉴 중 하나가 컨츄리 프라이드 스테이크다. 고깃덩이를 굽는 일반적인 스테이크와 달리 다진 쇠고기에 빵가루를 입혀 튀긴 것으로, 생긴 것은 돈까스 같고 맛은 햄버거 패티 같은 미국의 전통 가정식이다.

초기 여러 패밀리 레스토랑에 티본 스테이크 등과 함께 당당히 이름을 올렸지만 아무도 찾는 이가 없어 사라진 이 음식의 죄목은 느끼함. 대단히 기름진데다가 화이트 그레이비 소스까지 듬뿍 올리고 나면 끝까지 1인분을 다 해치우는 한국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올 아메리칸 다이너에서 부활해 식당 내 최고 인기 메뉴로 자리 잡았다.

레슬링 선수 손바닥만한 현지의 크기를 그대로 재현했고, 다진 고기를 사용하는 레시피 상 자칫 질 낮은 고기를 사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좋은 쇠고기를 사용해 씹는 맛과 감칠맛이 모두 살아 있다. 해시 브라운, 빵, 구운 야채가 곁들여지기 때문에 여자 2명이 먹기에도 무리가 없다.

컨츄리 프라이드 스테이크와 함께 주인이 먹어보길 추천하는 것은 햄버거다. 햄버거야말로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는 음식이다. 최근 국내에도 웰빙을 내세우면서 프리미엄 버거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원조들의 눈에는 건강함이 문제가 아니다.

"햄버거는 고기 맛이 생명인데 정작 고기에는 신경을 안 쓰고 작고 예쁘게 쌓는 것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햄버거는 나이프로 썰어 먹는 게 아니라 들고 먹어야 제 맛이죠."

이 곳의 햄버거 하나에 들어가는 고기 양은 1/2 파운드. 팬을 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릴에 구워 스모크 향이 듬뿍 배인 쇠고기 패티에 진한 체다 치즈가 찐득하게 녹아 붙어 있고 여기에 방금 썬 토마토 슬라이스와 양파, 바삭한 베이컨이 들어가 있다. 한 입 물면 과연 고기가 주인공인 햄버거를 맛볼 수 있다.

먹다 보면 없어지는 기존의 햄버거들과 달리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데, 식당 측에서는 햄버거를 꾹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어 들고 먹기를 권장한다. 바삭하게 구운 빵은 따로 뜯어 먹어도 맛있다. 버거에는 프렌치 프라이가 곁들여진다.

올 아메리칸 다이너에서 재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메뉴는 버팔로 윙이다. 미국 고유의 음식 중 탄생 장소와 시기가 분명한 몇 안 되는 음식 중 하나로, 국내에서도 이미 대중화 되었지만 우리 입맛에 맞게 상당히 변형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햄버거 집에서 사이드 메뉴로 나오는 버팔로 윙에서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달달한 바비큐 소스맛이나 매콤달콤한 양념치킨 식 소스맛. 그러나 미국인들은 도통 고기와 단 맛을 매치시키는 법이 없다. 아주 시큼하고 짠 맛이 그들이 생각하는 버팔로 윙의 전형적인 맛이다.

미국의 유명한 버팔로 윙 프랜차이즈 BW3에서 나오는 15가지 윙소스를 전부 구비하고 있는데 이중 그나마 달콤한 편인 허니 데리야키 소스도 먹는 순간 단 맛보다는 신 맛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음료에서는 조금 힘을 뺐다. 4가지 수입 생맥주와 콜라가 전부로, 저녁에는 술을 마시러 오는 손님도 꽤 있다. 손님 중 80%가 외국인 또는 교포다.

"원초적인 매력이 있어요"

기껏 알아낸 오리지널 미국 음식의 정체가 더 기름지고 더 짠 것들이라면 (우리의 고추장, 간장 때문에 정작 음식에 들어가는 소금의 총량을 따지면 크게 차이는 없다) 이 '스키니'한 시대에 미국 음식이 가진 가치는 뭘까?

"원초적인 매력이 있어요. 아이들도 금방 반하는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맛이죠"

한국의 식탁에 오르는 흰 쌀밥이나 온갖 종류의 나물이 은은한 맛으로 그 진가를 알고 향수를 느끼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반면, 미국 음식은 적응 기간이 짧다. 미식 경험이 없는 어린 아이라도 단박에 그 맛에 반응하고 빠져들 수 있는 것이다. 깊이나 중독성 면에서는 약할지 몰라도 당장에 혀를 매혹시키는 음식들은 미국인들의 가치관과도 닮은 면이 있다.

정신적인 것보다 육적인 것을 중시하고 노인의 지혜보다 젊음의 싱그러운 육체를 숭배하며 감정 표출에 있어 도무지 우회하는 법이 없는 그들의 삶은 이가 빠질 정도로 달콤한 브라우니와 목구멍으로 부드럽게 넘어가는 기름진 음식들과 한 세트를 이룬다.

올 아메리칸 다이너는 가볍고 솔직하고 자극적인, 마치 리얼리티 쇼 같은 미국 문화의 한 조각을 혀로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365일 연중 무휴로, 지금까지는 아침 7시에 열어 새벽 2시에 닫았지만 곧 24시간 영업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늦은 밤, 또는 이른 새벽 이태원을 헤매고 있다면 한번쯤 들러 진짜 미국의 맛을 즐겨볼 만하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