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스 코리안 퀴진'으로 한식 세계화 도전장 '비스트로 서울'

비스트로 서울
한 민족의 음식이 전 세계인에게 받아들여지기까지 필요한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파게티를 보고 있자면 역시 자국민들의 음식에 대한 관심이 대단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햄버거를 보면 뭐니뭐니 해도 국가의 힘에서 비롯된 문화적 파급력이 제일인 것 같기도 하고, 또 스시를 보면 역시 이미지,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그 무엇이 빠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해 한식 세계화를 둘러 싼 논쟁은 다소 소모적인 면이 있었다. 냄새 나는 청국장은 빼고 코스 식으로 서브하자는 주장에는 그게 무슨 한식이냐는 핀잔이 따르고, 전통 음식 그대로 내자는 의견에는 서양인들이 도망가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딴죽이 걸리는 바람에 이도 저도 못하고 삽질의 시간은 흘러만 갔다.

올해에 접어들면서 탁상공론은 끝났다. 강남의 스타 셰프들과 유명한 몇몇 맛집들은 구체적인 진출 계획을 세웠고, 일부 요식 업체와 식품 회사에서도 해외 진출의 청사진을 완성했다. 이 가운데 썬앳푸드가 ''을 통해 던진 세계화를 향한 도전장은 한번 시간을 두고 찬찬히 훑어볼 만하다.

한치 카르파치오
전문 외식기업에서 한식 세계화라는 주제를 놓고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한 가운데 내린 몇 가지 원칙에는 한식에 대한 정의와 현지화의 진정한 의미, 그리고 한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가장 맛있게 먹는 음식

이 세계화에 적합한 음식으로 택한 정답은 '투데이스 코리안 퀴진(Today's Korean cuisine)'이다. '오늘 우리가 서울에서 즐기는 음식과 술'이라는 말인데 이는 전통과 퓨전, 어느 하나로 규정지을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이다. 전통이라는 기반 위에 근래 한국 다이닝 씬의 변화가 고스란히 기록된 살아 있는 한식인 셈이다.

기본적으로 마늘과 묵은지, 된장 등 한식의 DNA라 할 수 있는 것들을 당당히 포함시키되, 신선로나 구절판처럼 우리의 식탁에 자주 오르지 않는 것들은 과감하게 빼버렸다. 냉채에 타이 누들을 사용하고 에 일본식 깨 소스를 사용한 것은 여러 나라 음식의 영향을 받고 있는 현재 서울의 음식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한국의 맛을 드러내는 데 있어서 서양인들의 눈치를 보지 않는 대신 은 좋은 재료와 건강이라는 음식의 기본기로 승부수를 던진다. 숯불 맥적구이는 된장에 돼지 고기를 재워 숙성시킨 후 구워 낸 맥적이다. 된장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담그고 돼지 목살은 담양으로부터 공수해온 최고급을 썼다. 맥적 구이는 고려 시대부터 먹어온 불고기의 시조격으로, '야키니쿠'라는 이름으로 불고기를 세계화하려는 일본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음식이다.

삼겹 편채
채끝 등심구이에는 국내산 1++등급의 최상급 한우를 쓰고 오색 돌솥 비빔밥에는 꿀, 소고기, 배즙으로 맛을 낸 자연 숙성 약 고추장을 곁들인다. 은 설탕을 넣는 대신 천연 과즙으로 단 맛을 냈다. 과일 성분으로 인해 한층 부드러워진 육질에 인삼과 밤, 대추, 은행을 곁들여 한국 색을 물씬 풍겼다.

물론 한국의 맛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만은 않는다. 비빔밥 메뉴 중에는 고추장으로 비비는 돌솥 비빔밥 외에 간장을 넣어 먹는 버섯 비빔밥도 있다. 세 가지 버섯과 소고기, 무 장아찌를 올리고 특제 흑임자 간장 소스로 비벼 먹는 이 비빔밥은 매운 맛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한식의 건강함과 가벼움에 열광하는 외국인들을 겨냥한 메뉴다.

는 한치 요리를 웨스턴 스타일로 변형시킨 것으로 싱싱한 한치를 얇게 저미고 여기에 간장과 레몬으로 양념을 했다. 색색깔의 식용꽃으로 장식해 애피타이저가 따로 없는 한식의 리스트를 보완해 준다. 기본적으로 나오는 된장찌개도 우리가 평소 먹는 맛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농도를 살짝 묽게 해 거부감을 줄였다. 마지막으로 모든 음식에는 인공 조미료를 뺐다. 웰빙 식이라는 한식의 마케팅 포인트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다.

담는 방식에 세계화의 비밀이 있다?

"지금 현지에 나가 있는 한식당을 보면 사실 맛보다는 분위기의 문제가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와규 갈비찜
썬앳푸드 신서호 총괄이사의 말처럼 외국인들이 요구하는 요소는 맛에서만 찾을 것이 아니다. 식당이야말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입으로 즐기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토털 엔터테인먼트 사업이기 때문이다. 음식을 서브하는 방식에서부터 식당 인테리어까지 작은 것에 변화를 줌으로써 효과적인 현지화를 꾀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식탁 가득 밑반찬을 까는 한정식 문화는 세계화에 있어서 큰 걸림돌이다. 식재료나 인건비 문제에 있어서 도저히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데다가, 외국인들의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신기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나 접시 하나를 놓고 먹는 습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에서는 한 접시에 주 요리와 함께 반찬을 살짝 곁들이는 식으로 변형을 시도했다. 갈비찜도 마찬가지. 젓가락만으로는 뼈에 붙은 살까지 다 발라 먹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포크와 나이프를 한 켠에 함께 서브하는 방식을 택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야 갈비를 뼈째 들고 맛깔스럽게 뜯어 먹는 것이 익숙하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선뜻 시도하기가 꺼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제공하는 나이프와 포크는 수저와 동일한 금동 재질로 통일해 전통의 느낌을 살렸다.

인테리어에서는 특히 모던한 느낌을 강조했다. 천정을 높이고 어두운 색깔의 목재로 실내를 장식해 고급스럽고 세련된 레스토랑의 이미지를 표현했다. 실제로 가격대도 어퍼 다이닝(캐주얼 다이닝과 파인 다이닝의 중간) 수준으로 잡았다. 가 1만9000원, 이 4만7900원, 오색 돌솥 비빔밥이 1만2000원으로, 두 사람이 한끼를 먹는 데 5만~6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본토보다 비싼 가격으로 진출하는 이유에 대해 신서호 총괄이사는 한식의 위상을 이야기했다.

"지금 해외에 나가 있는 한식은 너무 저가로 포지셔닝된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세계인들이 한식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이왕이면 싸구려 음식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가치를 인정받는 음식이 되었으면 합니다. 일본의 스시가 그런 것처럼요."

은대구 조림
은 올해 하반기 중으로 1개점 오픈, 5년 안에 5개 국가로의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도시는 도쿄, 뉴욕, 상해, 유럽의 도시 등으로 한인 타운이 조성되지 않은 각국의 미식 중심지로 들어가 정면 승부를 펼칠 계획이다. 외에도 CJ푸드빌에서 비빔밥을 패스트 푸드화한 '비비고'를, 불고기 브라더스가 프랜차이즈 방식으로 캐나다에 진출하는 등 한식 세계화는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이 중 누가 마지막에 웃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갈수록 똑똑해지고 있는 현지 공략법을 보면 한식 세계화라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무너지는 것도 아주 요원한 일은 아닌 듯하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