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in the City] (2) 미국 뉴올리언스

뉴올리언스 거리의 재즈
재즈 선율에 이끌려 예정에도 없던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자연스레 거리 악사의 재즈연주에 걸음을 멈추고, 급기야는 흥겨운 재즈 밴드의 행진까지 동참하게 되는 곳, 그렇게 온몸으로 재즈를 체험하게 되는 곳이 바로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의 뉴올리언스다.

재즈란 아프리카의 비트, 유럽의 기교, 캐러비안 리듬이 교묘하게 혼합되고 반죽돼 만들어진 음악이다. 음식으로 말하자면 퓨전 푸드(fusion food, 여러 나라의 음식 스타일을 혼합하여 만든 새로운 음식)랄까.

최근의 재즈는 자유정신, 진보정신을 담아 더욱 진일보했지만 본디 흑인 노예들의 절망과 애환이 담긴 노래다. 뉴올리언스 재즈는 그런 영혼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뉴욕이나 시카고에서 발달한 재즈와는 또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뉴올리언스에서는 모든 것이 재즈와 통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수준급 재즈 연주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이 주로 먹는 케이준(cajun)에서도 프랑스와 스페인의 식민지를 차례로 겪은 질곡의 역사, 강제 이주민들의 절절한 정서가 교묘하게 교차되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먹는 얘기, 그러니까 재즈 같은 뉴올리언스식 케이준으로 돌아가 보자. 케이준이란 캐나다에 거주하던 프랑스인을 '아카디안' 혹은 '케이준'이라 부르는 데서 시작했으며 이들이 먹던 음식을 역시 케이준이라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프랑스식과 비슷한 스타일의 식문화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실제로는 서바이벌 푸드(survival food)라고 불릴 정도로 거칠고 보잘 것 없는 음식이었다.

검보
남의 땅에 살던 빈한한 케이준들은 버터 대신 돼지기름을 사용하고, 사냥한 날짐승이나 물고기로 육류를 대신해 이것을 한 데 넣고 끓인 다음 거친 맛을 없애기 위해 향신료를 가미했다. 맛으로 먹기보다는 양으로 먹는 음식인 셈이다.

아마 국내에서 케이준 음식을 접해본 이라면 스파이시하고 강한 맛으로 '케이준 스타일'을 정의 내릴 것이다. 일견 맞는 소리다.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쨍'한 매운 맛을 살리고 단맛을 가미하는 등 패스트푸드화된 케이준이 국내로 건너와 케이준의 공식이 되었으니 말이다.

태생적으로 케이준은 캐나다 아카디아 지역, 오늘날의 노바스코티아가 원조라고 해도 무방하겠지만 오늘날 케이준의 대명사는 '뉴올리언스'다. 대부분의 케이준이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강제 이주돼 정착했고 그곳에서 케이준 음식 또한 발달했기 때문이다. 따스한 미국 남부에서 나는 각종 야생 허브와 채소, 풍요로운 미시시피강이 선물한 온갖 물고기를 이용해 케이준의 맛은 풍부해졌고 그곳에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던 아프리카 노예들의 문화, 당시 점령했던 스페인의 문화까지 결합하여 스파이시한 맛은 더욱 독특해지고 깊어졌다.

케이준의 대표 음식은 스페인식 '빠에야(철판볶음밥요리)'를 닮은 케이준식 볶음밥 ''와 프랑스 '부야베스(해산물스프)'를 대신한 케이준식 스프 ''가 있다. (gumbo)는 매콤하고 걸죽한 스프다. 각종 재료에 향신료를 더해 한 데 넣고 끓여 만든 스프로 새우나 가재를 넣어 만든 해산물 도 있고,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이용한 도 있다.

이것저것 대충 넣어 만든 것 같지만 완성된 는 적당한 매콤함과 향기로 식욕을 자극하기 충분하고 그 맛은 진하고 깊이가 있다. 채소와 닭고기 소시지와 야채를 넣고 만든 볶음밥 (jambalaya)도 독특한 케이준 스파이스가 더해져 그 맛이 한층 깊어진다. 한번만 먹어도 금세 익숙해지고 그렇게 먹다 보면 계속 생각나는 맛이랄까.

잠발라야
절망적인 흑인 노예들의 노래에서 시작한 재즈처럼 빈곤한 이주민들의 음식 역시 강렬한 생명력으로 전 미국으로 확산됐고 이제 서울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맛도 맛이지만 재즈처럼 그 영혼마저 공감하는 문화로 받아들인다면 더 새롭지 않을까 싶다.



이유진 푸드칼럼니스트 euzin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