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지난주에 이어 가족 내에서의 아버지 얘기를 해본다.

많은 남성들이 가정생활을 어려워하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아버지들의 경우 그 정도가 심각한 단계에 있다.

이는 치열한 생존경쟁을 뚫고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가족을 일일이 돌볼 겨를이 없었던 탓이 물론 크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의 남성들이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어려서부터 잘 배우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대표적인 특성은 가족과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이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적기도 하지만, 간혹 집에 있을 때에도 어떻게 해야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냉장고를 들여다보고 지저분하다는 핀잔을 아내에게 하거나, 자녀를 불러 성적을 캐어물으며 한심하다는 지적을 한다. 오랜만에 가족끼리 외식을 나가서도 자녀의 옷차림이나 자녀가 듣는 음악을 못마땅해하고 꾸짖어서 가족들 모두의 기분을 망쳐놓기가 십상이다.

아버지로서는 그런 기회를 빌어 자녀교육을 시키는 것이겠지만, 가족들의 입장에서는 모처럼 함께 하는 아버지와의 자리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가족과의 대화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다른 사회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정생활에서도 상대에게 친절해야 서로 가까워질 수 있는 법이다.

어떤 아버지들은 나름대로 가족과 재미있게 지내려고 건네는 농담이 문제가 된다. 농담이 재미가 있으려면 서로 주고받으며 상대도 웃을 수 있어야 하는데, 아내나 자녀의 약점에 관련되는 농담을 해서는 같이 즐거워질 수 없다.

심지어 이렇게 상대를 불쾌하게 해놓고서 '웃자고 한 말이었는데 뭐 그러느냐'고 화를 낸다면 오히려 역효과만 키울 뿐이다. 만약 이처럼 본인의 의도와 달리 상대가 불쾌해할 때에는 즉시 사과를 해서 상대의 마음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가족에게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아버지들이 아직도 상당히 많다.

이는 가족들이 자신에게 같은 식의 농담을 해오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은지를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아버지들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곤 한다.

평소에는 가족과 편하게 대화를 하지 못하다가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서는 대화를 하자고 가족들을 불러모아 밤잠을 방해하는 아버지들도 있다. 그나마도 좋게 끝나면 다행인데, 대개는 본인의 신세한탄과 그런 고충을 몰라주는 가족들에 대한 원망으로 언제 끝날 줄 모를 넋두리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해서 본인은 쌓였던 감정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를 견뎌야 하는 가족들은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아버지들은 가족에 대한 칭찬을 하려고 해도, 이마저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처럼의 외출에 곱게 차린 아내에게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그렇게 차리고 나서느냐?'는 말을 칭찬으로 듣고 좋아할 부인은 없다.

공부를 하고 있는 자녀에게도 '어이구, 웬일이냐?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라고 하는 말도 칭찬이라기 보다는 비꼬는 말로 들리기 쉽다. 아내가 예뻐 보이면 그냥 '당신 참 예쁘다'고 하거나 '당신이 예뻐서 다른 남자가 눈독들일까 겁난다' 정도로 말하면 충분하다.

또 자녀에게는 '그래, 열심히 해라. 아빠는 네가 언제건 꼭 성공할 것을 믿는다'는 말로 격려하는 것이 좋다. 가족에게 환영받는 존재가 되는 것은 자기가 하기 나름인 것이다.

많은 아버지들이 이런 잘못을 하게 되는 이유는 '여자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처럼 한국의 남성도 그렇게 사는 것이 '남자다운 것'으로 지금까지 잘못 학습되어온 탓이 크다. 다행히 현대의 젊은 세대들은 소위 전통적인 남성의 잘못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

아직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아버지들도 가족 친화적인 생활방식을 익히다 보면 그것이 가족에게만 아니라 본인의 행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



박수룡 편한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