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4) 인도·네팔신선한 향신료의 중독성, 정통 인도ㆍ네팔식 삼청동 옴 레스토랑

난, 사모사, 탄두리 치킨 등이 나오는 B세트
인도 음식이 국내에 상륙한지 10여 년이 흘렀지만 본격적으로 활성화 된 것은 최근 2~3년 간의 일이다.

동남아, 남미 등지의 음식이 붐을 이루면서 인도 식당은 가로수길, 명동, 신촌 등 번화가는 물론이고 동네 먹자골목에서도 볼 수 있을 만큼 대중화 되었다.

커리는 카레만큼 익숙해졌고 인도에서 밥처럼 먹는 난은 베이글처럼 친숙해졌지만 이런 과정 속에서 오히려 진짜 인도 음식은 실종되고 말았다. 강남의 인도 식당들은 1인당 3만원 선으로 가격을 책정하고 거슬리는 향료는 빼버린 뒤 달달한 맛으로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 잡았다.

거기에다 국적을 알 수 없는 막무가내 오리엔탈 인테리어까지. 결과적으로 '페이크 인디안(fake Indian) 레스토랑'이 판치게 된 것이다.

진짜 인도 음식 맛을 보려고 한다면야 안산의 '국경 없는 마을'만한 곳이 없겠지만 한국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의아한 눈초리를 받아가면서까지 치열하게 미식 탐험을 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마살라의 원료가 되는 열매들
이런 와중에 지난 해 삼청동에 정통 인도ㆍ네팔 식을 표방하는 옴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네팔관광청 한국사무소 소장인 시토울라 씨는 인도에서 화덕을 제조해 들여오고 보름에 한번씩 향신료를 사러 출국하는 등 극성을 부리고 있다.

히말라야가 축복한 향신료의 천국

인도와 네팔 음식은 크게 차이가 없다. 특히 인도 북부로 올라가면 국경을 건너고 안 건너고의 차이일 뿐이다. 물론 인도 내에서도 남부와 북부 음식은 다르다. 아열대 지방으로 내려가면 음식은 기름져지고 추운 산지로 올라갈수록 후끈하게 열을 낼 수 있도록 매운 맛이 강해진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도 천차만별로 이를 이용한 음식이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인도ㆍ네팔 음식이란?" 질문에 선뜻 답하기가 곤란한 것은 아니다. 향신료라는 독특한 공통 분모, 80% 이상의 요리가 화덕을 거쳐 나온다는 점, 그리고 강력한 종교적 색채가 인도ㆍ네팔 음식의 뿌리를 이루고 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인도만큼 향신료를 많이 쓰는 나라는 없다. 해발 70미터부터 4000미터에 이르는 다양한 지형은 고수, 커민, 정향, 강황, 월계수 잎 등 온갖 종류의 열매와 나물을 생산해냈고 이들을 채취해 몽땅 갈아 만든 혼합 향신료가 바로 인도 음식의 혼인 마살라다. 커리뿐 아니라 거의 모든 음식에 이 마살라가 들어가는데 이는 사장인 시토울라 씨가 향신료를 사러 현지까지 발걸음을 하는 이유다.

베지터블 브리야니
"보통은 제품으로 가공된 마살라를 사용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기성품에는 고수 같은 비싼 향신료는 좀 덜 넣겠죠. 질이나 신선도 면에서도 확연하게 차이가 나고요. 옴에서는 열매 형태의 원재료를 직접 사와서 일주일에 두 번씩 갈아서 씁니다. 총 30여 가지의 향신료가 마살라에 들어가요."

마살라의 향은 인도 음식이 얼마나 현지의 것에 가까운지를 가늠할 수 있는 표식이자 팬과 안티팬을 가르는 기준이다. 옴 레스토랑에서는 퓨전을 지양하되 너무 강한 맛에 고객들이 경악할 것을 대비해 주문 시 강한 향을 원하는지를 미리 물어본다. 이때 이국의 향을 즐기는 것에 자신이 없으면 'No'를, 오리지널을 만끽하고 싶다면 'Yes'를 하면 된다. 강한 맛을 택할 경우 커리 위에 고수를 뿌려서 나오는 것도 있다.

두 번째 체크해야 할 것은 화덕. 난부터 시작해서 모든 고기 요리까지, 디저트를 비롯한 일부 음식을 제외하고 인도 음식은 모두 이 화덕, 즉 탄두르에서부터 시작된다. 화덕을 이루는 재료와 온도, 크기에 따라 맛이 민감하게 변하는데 안의 숯불을 꺼뜨려 온도가 오르락 내리락 할 경우 내부에 붙여 놓은 난이 뚝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그러니 화덕이 아닌 팬에 굽거나 전기를 쓸 경우 현지의 맛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시토울라 씨는 아예 현지에서 화덕을 제조해서 공수하는 방법을 택했다. 화덕을 만들 때 쓰는 흙과 야자 껍질이 한국에 없기 때문이다.

화덕 온도에 따라 음식 맛도 들쭉날쭉

베지터블 짜우면
탄두르에서 구운 음식을 탄두리라고 하는데 탄두리 치킨은 난과 함께 한국인들이 인도 식당에서 가장 많이 찾는 음식이다. 그러나 정작 토박이들이 추천하고 싶은 것은 다른 탄두리들이다. 탄두리 치킨은 닭을 4등분한 것으로 다른 음식들에 비해 덩어리가 커 비교적 향신료가 구석구석 배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늘 먹는 탄두리 치킨보다는 크림에 절인 치킨 말라이 티카나 매운 소스와 요구르트에 재운 치킨 티카를 더 권하고 싶어요. 조각이 작아서 향신료가 듬뿍 배어 들어 간 데다가 크림이나 요구르트로 고기를 다루는 것도 인도와 네팔의 대표적인 요리법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인도와 네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종교가 빠질 수 없다. 비록 한국에서는 카스트 제도도 힌두교도 먼 나라 이야기지만, 이 종교들이 그들의 음식 곳곳에 영향을 끼쳤다면 그 음식을 다루는 식당에서도 응당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카스트 제도와 힌두교, 불교가 혼합된 인도ㆍ네팔에서는 육식에 대한 사회적 터부로 인해 채식주의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카스트 제도에서는 돼지를 만지기만 해도 돼지와 같은 급으로 내려간다고 생각하고 힌두교에서는 소를 부모 이상으로 떠받들며 자이나 교의 경우 모든 고기뿐 아니라 뿌리 채소까지 금하고, 심지어 공기 중의 생명이 있는 것들을 해칠까 봐 앞으로 손을 휘휘 내저으면서 걸을 정도이니 고기 타령은 애초에 포기해야 한다.

양고기와 닭고기가 그나마 발달했지만 고급 식당일수록 베지테리언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냉동 보관 시스템이 발달되지 않아 고기보다는 밭에서 갓 딴 채소가 더 얻기 쉽다는 것도 이 같은 문화에 한몫을 했다.

그러므로 커리를 택할 때 늘 먹던 고기 커리만 고집하기 보다 야채 커리를 고르는 것도 좀더 인도 음식을 깊이 있게 접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팔락 파니르는 대표적인 베지터블 커리로, 팔락은 시금치, 파니르는 두부 모양의 치즈다. 대부분의 음식이 입 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데 반해 팔락 파니르는 맛이 부드럽고 시금치와 우유의 조화도 의외로 껄끄럽지 않아 시도해 볼만 하다. 잘 구워진 난에 발라서 먹으면 맵게 양념된 고기와 좋은 궁합을 이룬다.

난과 커리, 탄두리 치킨을 앞세웠지만 매콤한 볶음면이나 야채 볶음밥 등 다른 메뉴들도 풍성하다. 코스는 2만원부터 5만원 사이로 애피타이저부터 후식까지 두루두루 맛보기에는 좋지만 아무래도 인기 메뉴 위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제대로 맛보려면 단품 쪽을 먼저 공략하는 편이 좋다.

네팔 여행사를 함께 운영하는 사장은 히말라야 투어를 앞두고 현지에서 먹게 될 음식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네팔 스페셜 코너도 마련해 놓았다. 히말라야 산 근처에서 실제로 먹고 있는 지역 색이 강한 가정식들로 인도 음식과는 전혀 다른 정통 네팔식이다. 이 메뉴는 사전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다. 점심 때는 탈리라고 부르는 인도식 백반도 판매한다.

한국에서 패션을 공부한 시토울라 씨는 와인 잔을 포함한 모든 식기를 주문 제작하고 벽지 색깔과 문지방의 형태까지 고려하는 등 식당 곳곳에서 인도와 네팔의 향취를 전달하는 데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제법 넓은 식당의 한 쪽에서는 빔 프로젝터를 통해 인도 영화를 상영하기도 한다.

"인도 음식은 전형적인 슬로 푸드입니다. 탄두리를 숙성시키는 데 20시간, 난 반죽이 숙성되는 데는 8시간이 걸리죠. 한국 식으로 빨리빨리를 외치기 보다 마음을 느긋하게 가지고 현지의 음식과 여유를 즐겼으면 합니다."

연중 무휴로, 일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오전 11시부터 10시, 금요일과 토요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문을 연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