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위스키 등 한국인 입맛 맞춘 제품 속속 선보여

한국인만을 위한 주류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주류업계가 각 나라마다 입맛이 다르고, 술과 곁들여 먹는 음식도 다르다는 점에 착안해 '신주류 창조'에 열을 올리는 것이다.

한국인 입맛에 맞게 개발된 주류제품은 서서히 마니아층을 생성해가고 있다.

레드 진하며 떫고, 부드럽게, 화이트 과일향과 단맛 풍부하게

한국남성들은 유독 칠레와인을 좋아한다. 까베르네 소비뇽 품종에다 뜨거운 햇빛을 받고 자라 알코올 도수가 높고, 진하며 떫은 맛을 내는 칠레와인은 소주에 길들여진 우리나라 남성들의 입맛에 잘 맞기 때문이다.

술처럼 입맛과 취향을 파악하기 좋은 품목도 드물다. 주류업계는 이를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즘엔 칠레 와인이라도 한국인 입맛과 취향에 한층 더 다가간 '한국형 와인'이 출시되고 있다.

골든블루 17년산
롯데주류가 출시한 칠레 와인 '카르멘'은 진하고 부드러운 타닌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취향에 맞게 다양한 품종을 배합했다. 까베르네 소비뇽 외에 카르메네르, 멜로, 소비뇽 블랑, 샤도네이 등을 섞어 기존의 진하고 부드러운 맛 외에 생생한 과일 향과 신선한 산도를 더했다.

'콘차이토로 그란 레세르바' 역시 칠레 와인이지만 철저히 한국시장을 목표로 제조됐다. 와인 블렌딩 과정에 수입사인 금양인터내셔널이 직접 참여했다. 이 와인은 원래 까베르네 소비뇽과 카르미네를 7대3으로 배합한다. 그러나 수입사 측의 제안으로 진하고 떫은 맛을 내는 까베르네 소비뇽의 비중을 90%까지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형 와인이라고 무조건 묵직하고 떫은 맛만 내는 것은 아니다. 남성들과 달리, 아직까지 우리나라 여성들은 달콤하면서 알코올 도수가 낮은 화이트와인을 선호하고 있다.

롯데주류가 지난해 11월 선보인 이탈리아 와인 '티아라'는 발매 3개월만에 월 평균 2만병 이상 팔리며 롯데주류의 전체 수입와인 중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롯데주류는 모스카토 와인을 즐기는 20~30대 여성 고객들을 위해 달콤하고 복합적인 과일향을 함유하면서도 알코올도수는 7.2도로 낮췄다.

이종기 교수
처음부터 아예 한국인 입맛에 맞도록 제조하는 토종 와인도 늘고 있다. '포리버'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업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이 재배되는 포도품종인 캠벨얼리만을 사용해 만들어 신맛과 과일향이 풍부한 것이 특징이다.

포리버는 산도와 타닌, 알코올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며, 첫 맛은 부드럽고 달콤함으로 마무리된다. 포리버 외에 머루로 만든 '엠퍼리'와 '그랑꼬또' 등이 대표적인 국산 와인이다.

엠퍼리는 16년 전 귀농한 노종구 대표가 생산하는 머무로 만들어 텁텁한 맛과 향이 나며, 뒷맛이 깔끔해 국내에서 많은 애호가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랑꼬또는 포도 산지로 이름난 대부도 포도 농가들로 구성된 그린영농조합이 생산하는 와인이다. 바닷가의 뜨거운 열기와 습도, 큰 일교차, 미네랄이 풍부한 토양 등에서 자라난 포도를 사용해 한국인이 좋아하는 맛과 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 받는다.

라벨·제품명도 한국형이 대세

한국형 술의 조건은 알코올 도수나 타닌만이 아니다. 제품명과 라벨을 한국 소비자들 취향에 맞게 변형하는 작업도 한창이다.

LG상사 트윈와인은 올해 초 2010년 경인년 호랑이 해를 맞아 호랑이를 라벨링 한 '호랑이 와인'을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한정판으로 선보인 호랑이 와인 2종은 허영만 화백이 와인 레이블을 직접 디자인했다. 이 와인은 한정판으로 출시 즉시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했다.

트윈와인 김수한 대표는 "호랑이 와인이 성공한 것은 제품 기획단계부터 디자인, 컨셉을 모두 한국형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와인도 이제는 한국인들의 입맛과 기호에 맞게 전략적으로 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트윈와인이 수입한 호주산 '그린애플 모스카토'은 작년 한해 20만 병 이상 팔리는 등 대중적인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처음부터 우리나라 20~30대 여성들의 취향에 맞춰 라벨을 변경했다. 이를 위해 기존 라벨을 상큼한 초록빛 사과와 사과나무 이미지로 바꿨다. 제품명도 고객들이 쉽게 인지할 수 있게 '그린애플'로 정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일명 천지인(天地人) 와인으로 통하는 '루 뒤몽-모르소'는 얼핏 보면 국내에서 생산한 와인으로 착각하기 쉽다. 라벨 디자인에서 동양적인 냄새가 물씬 묻어나기 때문이다. 이 와인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에서 제조되지만 만든 사람이 한국인이다.

한국인 박재화 씨는 일본인 남편과 함께 부르고뉴 지역에 '루 뒤몽'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2002년부터 자신들이 재배한 포도로 와인을 만들고 있다. 박 씨가 만든 와인의 라벨에는 프랑스 와인 답지 않게 '天地人'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다. 동양적인 숨결이 녹아 든 이 와인은 국내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위스키도 도수 낮춘 한국형으로

스카치 위스키는 40도이어야 한다? 이 같은 관념을 깨고, 도수가 낮고 부드러운 맛을 선호하는 한국인 입맛에 맞는 위스키가 나왔다. 최근에는 특히 위스키에 탄산수를 섞어 마시는 새로운 폭탄주가 유행하는 등 저도수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수석 밀레니엄은 국내 최초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36.5도' 위스키 '골든블루'를 출시했다. 골든 블루는 100% 영국산 원액을 사용한 프리미엄 위스키로 부드러움을 중시하는 우리나라 위스키 소비자의 취향을 고려해 기존 40도에서 3.5도 정도 알코올을 덜어냈다.

이번 위스키는 한국 최초로 위스키 블랜딩을 시작한 마스터 블랜더 (영남대학교 식품공학과 양조학)가 직접 참여해 개발했다.

그는 국내 소비자 관능 검사를 통해 스트레이트로 마셔도 부드럽게 목을 넘길 수 있는 최적의 알코올 도수 36.5도를 찾아냈다. 이 교수는 "골든블루는 위스키 본연의 풍부한 맛과 향을 내는 블렌딩 레시피를 찾아낸 제품으로 한국인에게 맞는 최적으로 위스키"라고 설명했다.

또, 수년째 위스키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디아지오사의 '윈저17' 역시 처음부터 철저히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만든 제품이다. 일반적으로 유럽과 미국인들이 훈연(燻煙)향이 짙은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하는데 비해 아시아 사람들은 목 넘김이 편한 위스키들을 선호한다.

디아지오는 이를 감안해 마스터 블랜드에게 한국인과 아시아인 입맛에 맞는 위스키 개발을 주문했던 것. 본래 조니워커, 발렌타인 17년 등의 위스키는 알코올 도수가 43도다. 그런데 유독 국내에서 판매되는 윈저17년은 도수가 40도로 상대적으로 낮은 편에 속한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