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쓰는 "사랑과 전쟁"

성(性)은 부부 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성에 적극적이나 여성은 소극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각 개인의 성격이 적극적이거나 소극적인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은 남녀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본능들 중의 하나이며, 그것이 적절히 충족되었을 때 대단히 강한 쾌감과 행복을 경험하게 되는 조건이라는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남성들은 흔히 특별한 성적 기교나 왕성한 정력으로 상대를 만족시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성의 최대의 성감대가 몸이 아닌 마음에 있다는 점을 모르는 남편은 부인의 성기만을 열심히 자극하여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고 오히려 불신만을 얻을 수 있다.

많은 남성들이 이런 잘못을 저지르곤 하지만, 남성들도 성 관계를 통해서 상대와의 깊은 일체감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것은 여성들 못지않다. 단지 자신의 숨은 욕구를 여성들만큼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반면에 성적으로 소극적인 부인들은 남편이 알아서 끝내고 만족할 때까지 '잠깐만 참고 있으면' 되는 것처럼 대한다. 부부 간의 성 생활이 이처럼 무의미한 반복행위가 되어서는 각자 쌓였던 불만이 괜한 다툼으로 이어지거나 뜻밖의 혼외 관계에 빠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남성은 상대를 충분히 만족시킬 만큼 자신의 성 능력이 강하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으로 성적 자존심을 느끼며, 여성은 자신이 경험한 극치감만큼의 성적 자신감을 갖는다. 성이 남녀 모두에게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부부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상대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고 상대의 성적 욕구도 역시 잘 알지 못한 채 서로를 오해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성적 만족을 얻거나 주려고 하는 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부부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성격과 버릇을 잘 알고 평소에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듯이, 성적 만족을 위해서는 '성적 대화'와 이해가 필수적이다.

일상의 다른 부분에서 갈등상태에 있는 부부가 성적 대화나 성 관계에서 서로 잘 협조할 리 없다. 일반적으로 남성은 성을 통해 상대와의 친밀감을 확인하기 때문에, 부부 사이의 문제도 성 행위를 통해서 해결하고자 한다. 부인이 이런 남성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부싸움 후에 곧바로 성교를 요구하는 남편의 요구를 불쾌하고 굴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여성은 성 관계 전에 친밀감의 확인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부부관계를 요구하기 전에 "당신과 불편한 마음으로 잠들고 싶지 않소. 그 문제야 어떻게 되건 오늘 밤 마음을 풀도록 합시다."라는 말을 한다면 부인의 오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부인으로서는 만약 남편의 제안이 정 싫다면 "이런 기분으로 잠자리를 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러나 당신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되네요." 정도로 말하고 거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성은 대개 여성보다 적극적으로 성적 공상을 즐긴다. 그래서 부인과의 판에 박힌 성 행위에 대해서는 싫증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부인이 호응해줄 것 같지 않아서 다른 파트너와의 성적 모험을 갖기를 꿈꾸기도 한다. 사회의 개방화에 따라서 여성도 다양한 성 경험을 상상하게 되었지만, 대부분은 그런 상상을 하는 것 자체만도 꺼려한다.

이런 점에서 부부가 서로의 성적 환상에 대해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협력할 수 있다면 휠씬 풍부한 성적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역시 평소 원만한 부부 관계가 유지되고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예를 들어 난데없는 성 체위를 요구한다면, 의심을 받게 되기 십상이다.

다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상대가 그대로 응해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상대가 싫어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그것이 더 다행일 수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려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자신도 상대가 바라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솔직하게 알려주어야 한다.

부부 관계는 혼인 서약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고, 이후의 긴 시간 동안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 관계를 원하는 부부는 항상 상대에게 감사하고 배려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성적 행복을 일치시키려는 노력도 꾸준히 계속해야 한다. 부부의 성 생활이야말로 다른 인간 관계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두 사람만의 고유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박수룡 편한마음 정신과의원 원장 sooryong@medimai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