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소믈리에 월드컵 대회'16개국서 진행중… 이승훈 등 한국 최고의 와인 전문가 3명 선발

왼쪽부터 남아공대사관 폴 피터스 경제참사관, 3등 입상자 최용덕, 우승 이승훈, 2등 오형우 소믈리에, 미카엘라 스탠더 남아공와인협회 마케팅 매니저
"프랑스를 겨냥한 '질투 마케팅(?)'이다."

2010년 월드컵 개최국 남아공이 와인 소믈리에 사냥(?)에도 나섰다. 축구와 함께 전례 없이 '남아공 소믈리에 월드컵 대회'도 개최해서다.

국내에서 외국 정부나 기관 주최로 열리는 소믈리에 대회는 단 하나. 프랑스 농수산부가 주최하고 소펙사(프랑스농식품진흥공사) 주관으로 열리는 '한국 소믈리에 대회'가 유일하다.

벌써 9년째.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다른 나라들 중 유일하게 남아공이 또 하나의 소믈리에 경연 잔치를 마련하며 프랑스에 도전장을 던졌다.

역시 한국 최고의 와인 전문가를 뽑는 이번 대회 참가자는 50여 명. 치열한 예선과 결선을 거쳐 최종 수상자 3명이 가려졌다. 영예의 우승자는 이승훈(부산 비나포)씨, 2등과 3등 상은 오형우(서울 카페 에스파소), 최용덕 소믈리에(부산 벨라치타)에게 각각 돌아갔다. 이승훈 소믈리에는 지난해 소펙사 대회에서 장려상, 오형우 소믈리에는 파커와인배 1등 수상자이기도 하다.

결선에서의 와인 디캔팅 & 서빙 실기테스트
수상 결과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지방에서 참여한 소믈리에들의 선전이 돋보였다는 점. 부산 출신 소믈리에 2명이 각각 우승컵과 3등상을 안았다. 대회를 주관한 남아공대사관과 남아공와인협회가 부산을 비롯한 지방에서의 참가를 독려한 덕분이다.

"프랑스 주최 소믈리에 대회는 10년 가까운 역사와 경험이 쌓여 소믈리에들이 많은 노하우를 가지고 준비합니다. 반면 남아공 와인에 대한 자료나 경험은 국내에서 아직 일천해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 대회에 임했죠." 이승훈 씨는 "대회를 통해 남아공 와인에 대해 배워나갈 수 있었다는 데 의미를 둔다"고 말했다.

남아공 소믈리에 월드컵 대회는 50명 정원의 소믈리에들이 1차 필기와 2차 시음 시험으로 진행됐다. 여기서 선정된 성적우수자 3명이 최종 결선에 진출하는 방식. 결선에 진출한 소믈리에들은 더욱 세심하고 까다로운 실습 과정을 통해 평가를 받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와인의 특징은 무엇이죠?" 영어로 던져진 질문에 소믈리에가 약간 당황한 기색을 보이자 심사위원이 한 번 더 추가 질문을 건넨다. "예를 들면 과일향이 많이 나나요? 아니면 자극적인 맛인지요?" 소믈리에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질문에 답하고 디캔팅과 서빙 등 손님 앞에서 행하는 최고의 서비스를 보여줘야만 한다.

심사위원으로는 국내외 저명한 와인 전문가들이 총출동했다. 남아공 와인협회 미카엘라 스탠더 아시아지역 담당 마케팅 이사, 한국소믈리에협회 김성중 회장, 한국와인협회 서한정 회장, 와인리뷰 김지수 교육팀장, 가든 플레이스 김용희 소믈리에 등 5명. 3명의 진출자가 순서를 정한 뒤 각각 1명씩 와인에 대한 지식과 손님응대 서비스, 디켄팅 등의 결선 평가 점수를 매겼다.

남아공 와인 월드컵 참가자들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벌이고 있다.
남아공이 전세계를 대상으로 소믈리에 대회를 개최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월드컵 개최 시기에 맞춰 남아공 와인을 수입하는 국가들을 대상으로 소믈리에 월드컵도 함께 벌이기로 한 것. 모두 16개 국가, 도시에서 한창 진행 중이다.

우승컵을 안은 이승훈 소믈리에는 남아공에서 올해 10월에 실시되는 전세계 남아공 와인 월드컵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다. 약 열흘 가까이 남아공의 유명 산지와 와이너리들을 둘러본 뒤 여기서 얻은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전세계에서 온 소믈리에들과 실력을 견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프랑스와 경쟁까지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단지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월드컵은 알아도 남아공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국가 홍보 차원에서도 마련한 대회입니다." 폴 피터스 경제참사관은 "한국에서 소믈리에 월드컵을 계기로 남아공과 남아공 와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사커 블라인드 테이스팅'
남아공 월드컵 참가국 와인을 찾아라

전세계 각국 와인들을 모아 놓고 한 자리에서 맛대결을 벌였다. 이름하여 '와인 월드컵'. 다만 맛의 우위를 가린다기보다는 '맛을 정확히 판별하는' 자리다.

남아공월드컵 응원 모자인 마카리바 응원나팔 부브렐라를 받은 우승자 김정목씨(맨 왼쪽).
주한 남아공대사관이 최근 코엑스에서 개최한 '사커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 부제로 '남아공 월드컵 참가국 와인을 찾아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남아공 월드컵 참가 32개국 중 와인을 생산하는 18개 국가의 와인들을 각자 눈을 가린 채 마셔보곤 어느 나라 와인인지를 알아맞히는 게임. 올 여름 열리는 2010 남아공 월드컵 개최를 축하하고 남아공 와인의 우수성을 한국에 알리고자 마련됐다.

남아공 와인협회와 한국소믈리에 협회 공동주관으로 열린 와인 월드컵에는 100여 명의 일반인들이 참여했다.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남아공 미국 중국 등 전세계 18개국 와인. 참가자들은 라벨 없이 번호로만 표시된 병 18개에 담긴 와인들을 각각 맛보았다.

결과는 예상 밖. 18점 만점에 11점이 최고 점수로 나타났다. 전체 18개 와인을 마셔 보곤 무려 11개 와인이 어느 나라 와인인지를 알아맞혔다는 얘기. 그것도 5명이 공동 1위를 기록했다. 남아공대사관 진광수 상무관은 "와인 전문가도 아닌 일반인들이 이 정도의 적중률을 보였다는 점이 충격적이다"며 "하지만 역으로 와인 안목에 대한 일반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했다.

영예의 최종 우승자는 김정목씨(한국관광호텔전문학교 1학년). 동점자 5명 중 남아공 와인을 판별한 이가 3명이고 이들 중에서도 테이스팅을 가장 빠른 시간에 마친 김씨가 결국 우승컵을 안았다. 김씨는 부상으로 남아공 월드컵 기념 축구공과 유니폼, 모자 '마카리바', 부브렐라로 불리는 나팔 등 응원도구, 와인 등 푸짐한 상품을 듬뿍 가져갔다.

"솔직히 11개 중 몇 개만 정확히 품종과 나라를 알고 나머지는 짐작으로 찍었는데 운이 좋게 적중했습니다. 특히 남아공과 뉴질랜드에서 똑같이 쇼비뇽 블랑 와인이 나왔는데 평소 관심 있게 보아온 품종이라 알아맞히기 쉬웠어요."

대회 당일 국제주류박람회에 갔다가 현장에서 우연히 대회에 참가하게 돼 행운을 거머쥔 김씨는 "어쨌든 평소 와인 동아리 등을 통해 조금씩 맛보아 온 와인 맛과 향을 기억해 두고 있었던 것이 도움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이하게도 참가자들 중 가장 많은 점수 분포대는 7점 내외. 각 나라를 대표하는 와인들이 선정돼 출품됐는데 한국은 복분자, 일본은 사케, 프랑스는 샴페인이 나왔다. 이들 3가지만 보아도 기본 점수는 3점이 나와야 된다는 것이 주최측의 판단. 그럼에도 0점은 한 명도 없었지만 1점은 몇 명 있었다고 한다. 남아공대사관측은 "1점을 받은 이 모두가 공교롭게도 남아공 와인은 맞혔다"고 기뻐했다.

사실 전문가들조차 '상당히 힘들 것'으로 예상한 이번 이벤트는 경연이라기보다는 남아공 축구 축제를 더욱 재미있게 즐기도록 마련된 행사. 절반이 넘는 50여명의 참가자들에게 상장과 부상이 가득 주어졌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