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항 전세기로 시간·거리 절약하고, 리조트 고급화로 더욱 편리하게

보라카이 화이트 비치의 한가로운 풍경
그 섬은 지도에서 찾아 볼 수 없다. 너무 작아서 일반 지도에 그려 넣을 수 없어서다. 가로, 세로 길이가 각각 7km와 1~2km에 불과하다. 하지만 명성만큼은 가히 세계적이다.

필리핀 보라카이가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인천에서 보라카이로 직항하는 전세기가 최근 다시 뜨기 시작하면서 거리를 더욱 가깝게 해주고 있는 것.

덕분에 보라카이행 비행기 좌석을 구하는 것도 날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필리핀관광청은 치솟는 보라카이 인기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보라카이 가신다고요? 마닐라에서 조그만 경비행기로 갈아타야 되고 힘드시겠어요." 보라카이를 언급할 때 항상 따라붙는 수식어가 하나 있다. 바로 경비행기. 마닐라에서 조그만 비행기로 갈아타고 가야한다는 고정관념이다. 물론 지금도 마닐라에서 보라카이행 경비행기는 계속 운행 중이다.

하지만 올 초 필리핀 제스트항공이 인천-칼리보 간 직항 노선 전세기 운항에 나서면서 가는 길이 더욱 짧아지고 편리해졌다. 굳이 마닐라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드는데다 작은 탓에 '흔들린다'는 경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된다.

관광객이 박쥐 날개를 펼쳐보이고 있다
롯데관광 등 몇몇 여행사들이 앞장서 띄우고 있는 전세기 운항으로 대략 절약되는 시간만 넉넉잡아 3시간. 시간표상 인천에서 새벽에 출발, 오후 3시 넘어쯤 도착하는데 마닐라 경유 시에는 저녁 5~6시는 됐었다.

현지 도착 공항은 옆에 자리한 파나이섬의 칼리보 공항. 예전 경비행기가 주로 내리던 공항은 까띠끌란 공항이다. 칼리보 역시 활주로가 짧아 168석 이상 크기의 비행기는 운항을 못한다. 보라카이행 비행기가 한편으로 작으면서도 꽉 차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명세 덕분에라도 보라카이는 여전히 변화의 몸살을 앓고 있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도로를 달리는 차량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을 정도. 태어난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 있는 세계 3대 비치라는 얘기를 듣기에도 충분하다.

하지만 지금은 차가 제법 많다. 대부분 리조트와 대표 해변인 화이트비치를 오가는 리조트의 셔틀버스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트라이시클들. 차량이 늘어난 것은 리조트 등 관광시설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5년 전 통계만 보아도 보라카이의 숙소는 민박과 조그만 리조트 200여 개. 숫자는 많아도 규모가 작고 대부분 화이트 비치에 자리해 교통편이 따로 필요 없었다. 이후 외곽에 고급시설로 무장한 100여개의 대형 리조트들이 생겨나면서 덩달아 차량과 이동 수요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보라카이 해변 모래 사장에는 매일 밤 화려한 비치 테이블이 펼쳐진다
지금은 외곽의 선착장에 배를 대지만 수년 전만 해도 사람들은 화이트비치에 다다른 보트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이 때 승객들이 바닷물에 적시지 않도록 대신 업어 주며 육지까지 날아주던 속칭 '업어맨'들을 아직도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불과 얼마 전이지만 이미 추억 속 얘기가 돼버린 것.

보라카이 해변의 모래를 대낮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걸어도 생각보다 뜨겁지 않다고 한다. 사실 하나도 안 뜨거울 리야 없겠지만 실제 디뎌 보면 덜 뜨거운 듯하다. 이는 모래가 산호로부터 탄생한 때문이라고. 손으로 한 줌 집어 보면 흙이라기보다는 새하얀 산호 가루처럼 부드럽기 그지 없다.

보라카이의 한낮 프로그램은 선탠과 휴식, 그리고 섬 둘레를 돌아 보는 호핑 투어, 패러세일링, 바나나보트, 제트스키, 스킨스쿠버 등 각종 해양 스포츠. 해수면의 층층마다 물의 색깔이 달라 신비로운 색의 마법이 펼쳐진다. 에메랄드 빛 바다는 시시각각 그 빛을 달리하고 끝없이 펼쳐진 순백색 해변은 하늘 위 뭉게구름, 녹색의 수목들과 합쳐 하나의 풍경화를 완성한다. 그리고 해변가를 따라 우거진 야자수와 새파란 돛을 달고 바다 위를 떠다니는 배, 끊임없이 밀려드는 맑은 파도까지.

하지만 정작 보라카이의 밤은 더 화려하다. 매일 밤이면 해변가 모래 사장 위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지고 때론 모래밭 레스토랑으로, 때론 해변 카페로 탈바꿈한다. 맥주 한 병, 혹은 커피 한 잔을 들이키며 사람들은 남국의 낭만에 빠져 든다. 해변가 D몰을 중심으로 형성된 쇼핑 타운에는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프랑스 중국 미국식 등 세계 각국의 레스토랑들이 즐비해 선택의 폭이 무척 넓다. 그러나 거기까지.

보라카이의 밤은 결코 자극적이거나 퇴폐적(?)이진 않다. 현지 여행가에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일화 하나. 조직폭력배 일원들이 여행사에 여행지 안내 문의를 했다. 세계에서 가장 '물 좋은' 관광지로 예약을 해달라고. 직원이 추천해 준 곳은 보라카이. 물 맑고 깨끗한 관광지임에는 분명했기 때문. 대신 현지를 찾아 온 조폭 고객들은 대노했다고 한다.

페어웨이즈&블루워터 리조트의 수영장 & 클럽하우스 전경
믿거나 말거나 보라카이의 밤을 표현하는 얘기이다. 일부 관광객들이 '당연히 있겠거니' 생각하고 찾아 왔다가 실망하는 곳이 바로 보라카이다. 보라카이가 태국의 파타야나 푸켓 등 다른 관광지와 크게 차별화되는 항목이다. 어딘가 숨어 있을 수도 있지만 소위 드러내놓은 유흥가를 찾아 보기가 무척 어렵다. 대신 치안은 매우 안전한 편. 밤에도 사람들이 맘 편히 다닌다.

필리핀 사람들도 휴가 때면 가장 먼저 찾는다는 대표 휴양지인 보라카이는 전에 비해 훨씬 리조트의 고급화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골프장 시설을 갖춘 페이웨이즈&블루워터, 보라카이 최고의 5성급 등급을 받은 샹그릴라보라카이리조트&스파 등 신규 리조트들이 최근 수년 새 새로이 문을 열었다. 골프나 스파 프로그램을 갖춘 럭셔리 대형 리조트란 점이 공통점이다.

원래 보라카이는 한국인의 '제 3여행지'. 보통 태국을 찍고 방콕이나 푸켓, 마닐라 등을 거친 이들이나 주로 찾던 여행지에 속했다. 하지만 전세기 투어 바람은 보라카이를 '여행 1번지'로도 바꿔나가고 있다. 국가나 지역에 관계 없이 우선적으로 먼저 찾는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는 얘기.

보라카이가 한국인의 대표 신혼여행지로 크게 부상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보라카이가 흔히 '299(29만 9000원), 399(39만 9000원)'로 호칭되는 싸구려 저가 여행상품이 전혀 등장하지 못하는 '특1급 관광지' 자리를 굳혀 나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사진 보라카이(필리핀)=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