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 불가리아식 스튜, 김치 등 다양한 정통음식 선보여

불가리아인들의 데일리 샐러드 '샴스카 샐러드'
2002년 한국에 처음 왔다. 그리고 외지 생활 벌써 8년째, 지금은 형과 함께 불가리아 레스토랑의 어엿한 주인이다. 국내 유일, 아니 아시아에 단 하나뿐인 불가리아 레스토랑 '젤렌'을 이끌고 있는 불가리안 형제의 이야기다.

두어 달 전 서울 한남동에 문을 연 젤렌(Zelen). 이태원 골목 안에 자리한 젤렌의 2번째 레스토랑이다. 식사시간 입구에서 손님을 맞고 있는 벽안의 낯익은 얼굴. TV에도 곧잘 나오던 키가 큰 그 외국인이다, 미할 아쉬미노프. 최근에는 MBC '찾아라 맛있는TV'에서 지방 음식을 소개하는 패널로도 출연했다.

우리에게 동구권으로 줄곧 소개되는 불가리아. 정작 유럽인들은 불가리아를 동구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정확히는 유럽의 남동부입니다. 발칸반도를 끼고 있어 발틱 컨트리라고도 하죠." 불가리아는 이탈리아와 그리스 우측으로 붙어 있다.

이탈리아 하면 피자나 파스타, 독일이 소시지라면, 불가리아는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위로는 예전의 유고슬라비아, 왼쪽은 그리스, 아래 바다 건너서는 터키, 오른쪽에는 루마니아가 있습니다. 또 흑해바다를 접하고 있고 산과 호수도 많습니다."

때문에 불가리아 음식 재료는 육해공에 걸쳐 다양하다. 양, 돼지, 오리 고기나 생선은 기본, 곰이나 토끼, 사슴고기도 식탁에 기꺼이 오른다. 그리고 항상 식탁을 가득 채우는 신선한 채소까지. 불가리아 요리학교를 나와 쉐라톤 호텔과 서울 시내 호텔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미할은 "일본에도 가봤지만 두세 개 메뉴를 내놓는 불가리아 이름의 카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불가리아식 스튜인 '스빈스카 카바르마'
"한국의 김치처럼 담가 먹는 불가리아식 김치 '투르시아'도 유명합니다. 양배추나 토마토, 오이, 브로콜리 등을 소금에 절여 만드는데 피클하고도 비슷하죠. 신선한 채소가 귀한 겨울철을 위해 여름에 담갔다가 추울 때 먹는 전통 메뉴입니다." 불가리안 푸드는 오히려 그리스처럼 웰빙과 건강을 중시하는 지중해식 식단에 가깝다.

어쨌든 메뉴판에 적힌 음식 이름들도 당장은 낯설다. 샴스카 샐러드, 스빈스코 브래티노, 스빈스카 카바르마, 큐프테 등 모두 불가리아어로 적혀 있다.

가장 잘 나가는 메뉴 중 하나는 스빈스카 카바르마. 돼지고기 안심 스튜쯤 된다. 돼지나 소 등 여러가지 고기를 조각으로 썰어 볶은 뒤 양파, 양송이, 그린 피망 등 야채와 함께 오븐에 구운 불가리아식 스튜다.

색깔부터 불그스름한 이 스튜는 특히 한국 사람 입맛을 자극한다. 얼핏 매울 것 같기도 한데 실은 전혀 안 맵다. 붉은 색이 나는 이유는 토마토와 와인 등의 소스가 듬뿍 들어가기 때문. 터키산 오레가노 소스와 후추, 소금 등이 들어가 걸쭉하다면 걸쭉하다.

맨 위에 얹혀진 것은 청양 고추. 한국인들을 위해 그나마 매운 맛을 보태준다. 위에서 겉으로는 안 보이지만 보울 아래 쪽으로는 국물이 차 있다. 일반 서양식 스튜와 달리 국물이 그릇의 반절 정도만 채우는 것은 불가리아식 스튜의 특징이라고 한다.

불가리아 요구르트로 만드는 타라토르 수프
샴스카 샐러드는 불가리아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웰빙 식단에 속한다. 토마토와 오이, 구운 양파와 피망 위에 화이트 치즈를 듬뿍 얹은 데일리 샐러드로 불린다. 야채를 가릴 정도로 흩뿌려진 것은 페타 치즈. 샐러드의 풍미를 돋워준다.

불가리아 식단에는 우리처럼 쌀도 올라 간다. 팥내니 추시키는 고기와 야채를 쌀과 섞어 오븐에 구워낸 뒤 요구르트 소스와 허브토핑을 올려 먹는 대표적 쌀 요리. 또 돼지 내장에 생고기를 넣고 바로 그릴에서 구운 홈소시지 '수죽'은 일반 소시지처럼 삶은 요리가 아니란 점에서 특이하다.

무엇보다 젤렌에서는 그 이름도 유명한 불가리아 요구르트를 맛 볼 수 있다. 우유를 50도 정도까지 데워 종균을 넣은 뒤 발효시켜 만드는 방식은 일반 요구르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불가리아에서 직접 공수해 온 종균을 사용하기 때문에 진짜 불가리아 요구르트라는 것.

후레시한 요구르트 맛 자체는 그냥 시큼하다. 시중의 요구르트처럼 설탕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단 맛은 전혀 없다. 불가리아 요구르트는 그냥 맛 볼 수도 있지만 디저트나 수프 등 여러가지 불가리아 메뉴에도 사용된다.

타라토르 수프는 불가리안 요구르트로 만드는 대표적인 수프. 요구르트 원액에 오이조각, 허브, 마늘을 넣고 얼음과 함께 시원하게 먹는데 우리네 오이냉국과 향은 비슷하다. 요구르트 성분이 들어가 국물이 진국처럼 느껴지는 것이 가장 큰 차이.

젤렌의 불가리안 형제 미할(왼쪽)과 형 필립
자연식 웰빙식에 가까운 불가리안 푸드는 조리법에서도 드러난다. 튀김 음식은 없고 조리하는 방식도 그릴이나 오븐에 굽는 2가지가 거의 대부분이다. 스튜마저 뜨겁게 끓이지 않고 오븐에서 연한 불로 긴 시간 구워낸다.

겨울에는 무척 춥고 한 여름에는 섭씨 40도까지 온도가 올라가는 불가리아에서는 사람들은 뜨거운 태양을 피해 포도나무 아래에 모여 하루 세끼를 해결한다. 한국처럼 습도가 높지 않아 나무 밑 그늘에만 들어서면 시원하기 때문에 집이건 식당이건 사람들이 나무 아래로 몰려든다고. 젤렌의 실내 천장에 포도나무 덩굴로 채워진 것은 미할의 그런 기억 때문이다. 드물게 불가리아와 헝가리, 루마니아, 그루지아 와인을 맛 볼 수 있다는 것도 젤렌만의 특권이다.



글·사진=박원식 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