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7)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현지 재료와 조리법으로 정체성 지키는 '마카로니 마켓'

오리콩피와 으깬 감자
오늘날 이탈리아 음식은 중식, 일식과 함께 한국인의 식탁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음식 중 하나다. 스파게티와 피자가 더 이상 남의 나라 음식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즈음 올해 초 드라마 <파스타>가 방영됐다.

극중 갈등의 원인이 된 파스타 소스의 양을 두고 시청자들도 말이 많았다. 현지 식 그대로 파스타 소스의 양을 줄이려는 주방과 흥건한 '국물'을 원하는 손님들과의 대결은, 그런데 이미 어디서 본 듯한 장면이었다.

"파스타는 소스 맛이 아니라 면 맛으로 먹는 음식입니다. 음식이 끝날 때 소스도 같이 끝나야 하죠. 펜네, 푸실리 등 파스타 면의 종류가 괜히 다양한 게 아닙니다. 소스를 최대한으로 빨아 들여서 면과 소스를 같이 먹을 수 있도록 고안된 것들이에요."

이태원 마카로니 마켓에 가면 친근한 줄만 알았던 이탈리아 음식이 다시 훌쩍 멀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허브 향, 발 냄새와 견줄 만한 치즈 냄새, 짜디 짠 소금간. 입 안에 와서 착착 감기던 파스타는 어디로 갔나? 그러나 여기에 진짜 이탈리안이 있다.

아니, 주방에서 발 냄새가?

마카로니 마켓 델리에서 판매하는 치즈
마카로니 마켓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의 음식을 현지 그대로 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타국의 맛을 머나먼 한국 땅에서 충실히 재현하는 비결은 재료에 대한 고집이다.

피아디나를 예로 들어보자. 파스타를 알면 이탈리아 음식의 절반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피아디나는 반드시 알아 두어야 할 요리다. 납작한 밀가루 빵 안에 치즈와 프로슈토, 루꼴라를 넣어 만든 피아디나는 로마냐 지방의 전통 음식이자 가정식으로, 우리가 김밥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듯이 이탈리아인들이 점심 대용으로 흔히 먹는 음식이다.

피아디나에서 중요한 것은 밀가루 반죽인데 '라르도'라고 부르는 돼지 비계가 들어간다. 압착해서 허브에 재운 라르도야말로 피아디나 맛의 핵심이자 지역민이 아니고는 도저히 적응하기 힘든 생소한 향의 원인이다. 국내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라르도의 수급을 위해 마카로니 마켓은 프로슈토의 비계를 하나하나 손으로 벗겨냈다.

피아디나 안에 들어가는 딸레지오 치즈 역시 마니아들의 전유물로, 진하게 풍겨 나오는 발 냄새는 청국장에 절대로 뒤지지 않는 역함을 자랑한다. 현지에서도 모짜렐라 치즈를 넣어 만드는 경우가 있지만 굳이 이 지독한 치즈를 고집하는 이유는 이게 '제 맛'이라는 고집 때문이다.

또 다른 비결은 레시피의 충실한 재현이다. 파스타 삶는 시간처럼 과학적 근거가 있는 레시피는 물론이고, 뚜렷한 근거도 없이 종주국의 프라이드만으로 우겨대는 요리법이라도 우직하게 이행한다. 이탈리아 음식에 들어가는 소스 중에 허브류를 가열하지 않고 짓이겨 만드는 페스토가 있는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만큼 레시피에 사족이 많이 붙었다.

하몽 이베리코 슬라이스와 토마토 아스픽
바질 페스토의 경우 바질, 잣, 소금, 파마산 치즈, 올리브 오일, 그리고 염소 젖으로 만든 아주 짠 맛의 뻬꼬리노 치즈가 들어가는데 이 재료들을 넣는 순서까지 정해 놓은 것이다. 물론 마카로니 마켓 측은 이를 그대로 따른다. 구하기도 어렵고 맛도 별나 페스토에서 자주 제외되는 뻬꼬리노 치즈도 꼭꼭 넣는다. 그럼 넣는 순서가 바뀐다고 해서 맛이 바뀔까?

"글쎄요, 평생 바질 페스토만 먹은 사람이라면 구분할 수 있을까요? (웃음) 사실 거의 차이가 안 납니다. 순서를 그대로 지키는 이유는 레스토랑의 정체성을 위한 거죠. 손님들이 낯선 맛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메뉴를 빼면 됩니다. 국적불명의 음식을 만드느니 그 편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추찬석 지배인의 말이다.

"음식이 너무 짜요~"

오리지널리티를 내세우는 마카로니 마켓에 대한 반응은 예상보다 호의적이었다. 외국인들뿐 아니라 내국인들도 현지의 주방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생소한 맛에 마음을 열고 음식에 배인 그 나라의 문화를 즐겼다.

그러나 그들의 고집이 늘 승승장구했던 것은 아니다. 딱 한번 마카로니 마켓으로 하여금 한 발 물러서게 한 음식이 있으니 바로 프랑스의 대표 음식인 오리 콩피다. 염장한 오리를 오리 기름에 넣어 튀기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익히는 콩피는, 소금에 대한 음식 선진국들의 광적인 집착과 유럽 저장 음식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는 산 증인이다. 처음 레스토랑에서 오리 콩피를 선보였을 때 매장을 방문한 프랑스인은 한 입 맛 본 후 바로 지배인을 불렀다.

"내 입 맛에 맞을 정도면 다른 손님들의 불평이 보통이 아닐 텐데, 괜찮은가요?"

예상대로 '너무 짜서 못 먹겠다'는 불평이 줄을 이었다. 그래도 거의 1년여를 그대로 유지해오다가 최근에야 타협을 시도했다. 소금 간을 살짝 조정한 것이다.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있지만 언젠가 프랑스 음식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그날 다시 한번 시도하려고 벼르고 있다.

마카로니 마켓의 맛은 시스템과 깊게 관련돼 있다. 5인의 공동 대표 중 2명이 10여 년간 유럽의 호텔과 식당에서 실무 경험을 쌓아 오너 마인드와 셰프 마인드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 그들은 대표단과 주방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며 재료 수급의 어려움으로 인해 맛이 정체성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다.

"지금 국내 유러피안 레스토랑들의 음식 맛이 다 똑같은 이유는 재료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포르치니 버섯을 먹어 봤다고 하는 이들은 모두 건조나 냉동 제품을 먹은 것입니다. 국내에선 구할 수가 없거든요. 바질이나 루꼴라도 최근에서야 국내 생산되기 시작했죠. 지금 오리지널 레스토랑이라고 하는 곳들은 적자를 감수하면서 운영되는 곳이 많습니다. 앞으로 재료 수급이 좀더 용이해진다면 전체적인 레스토랑의 퀄리티가 다같이 올라갈 겁니다."

마카로니 마켓에서는 프렌치와 이탈리안 외에도 양이 많고 기름기가 없는 그리스 음식과 스페인의 대표 음식인 질 좋은 하몽 등을 맛볼 수 있다. 레스토랑과 델리, 클럽이 함께 모여 있는 희한한 구조로, 입에 맞는 메뉴가 있으면 그 음식에 쓰인 재료를 델리에서 구입해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메뉴는 철이 바뀌는 것에 따라 3개월에 한번씩 업데이트 된다. 최근에는 '레이트 나이트 파스타(Late night pasta)' 시간을 만들어 밤 10시에 문을 닫고 다시 밤 10시 반에 문을 열어 새벽 2시까지 파스타만 판다. 10시 이후에 마땅히 식사할 곳이 없다는 데서 착안해 만든 서비스 타임으로, 늦은 밤 이태원 한 가운데서 출출해지면 들러볼 만하다. 개장 시간은 오전 11시. 연중 무휴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