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까지 차단 가능 여성들 필수품으로… 남성들 우양산 선호

메트로시티 초슬림 양산
양산은 인간과 오랫동안 긴 역사를 함께 해왔다. 역사학자들은 우산과 양산의 '산(傘)'자가 비나 햇빛을 가리는 우산을 벌려 놓은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로 보고 있다. 동양과 서양에서는 모두 양산을 '하늘을 받치는 신성한 물건'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양산은 왕의 권력을 상징하며 종교행사나 의례 등에 주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권력의 상징인 양산은 이제 현대에 와서는 현실적인 기능으로 생활 깊숙이 자리한다. 단순한 햇빛가리개를 넘어 인체에 유해한 자외선을 차단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 것이다.

양산, 여성들의 필수품으로 부상

썬크림과 선글라스만으로 자외선을 모두 차단할 수 있을까? 대답은 'NO'다. 자외선 차단 100%는 아니지만 99%까지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양산을 쓰고 다니는 것이다. 최근 낮 기온이 30도를 넘어서면서 따가운 햇살 때문에 양산을 쓰는 여성들을 자주 볼 수 있다. 20대 젊은 여성들도 양산을 들고 다니며 뜨거운 햇볕을 피하면서 자외선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온라인쇼핑몰 롯데닷컴 측은 "지난 5월 한 달간 우산 관련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했다. 양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증가하는 차이를 보였다. 최근에는 우산과 양산을 겸용하는 '우양산'을 중심으로 매출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양산의 소비 경향이 높아지고 있어 우산과 마찬가지로 양산 또한 생활필수품이 되어가는 추세다. 롯데닷컴 패션잡화팀의 신혜진 MD는 "양산의 경우 보통 햇빛이 강해지기 시작하는 4월 말부터 매출이 나오는데, 올해는 이상기온으로 싸늘했던 4월 대신 5월부터 급격하게 매출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양산이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본격화한 것은 1800년대 말 개화기 때다. 양장을 선호했던 신여성들은 대부분 양산을 들고 다녔으며, 신교육을 받은 여학생들에게도 양산은 필수품이었다. 양산이 지금처럼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보다는 신문물을 받아들인 '깨인 여성'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도구였다는 측면이 컸다.

양산의 쓰임새가 이렇듯 소품(액세서리)으로 이용되기 시작한 건 17~18세기 유럽에서다. 방수용 천으로 만들어진 우산과는 달리 마직 등을 이용해 색깔, 무늬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양산들이 많았다. 당시 여성들에게 양산은 부의 상징이자 아름다움의 미덕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양산은 여성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수품으로 자리잡으며, 미적 기능을 갖춘 동시에 실용적인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패션 브랜드 미치코런던, 루이까또즈, 피에르가르뎅 등의 양산 제조업체인 (주)동광양산 측은 "1970년 대 양산은 공단(새틴)으로 만들어져 햇빛만 가릴 수 있는 용도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면 100%의 기능성을 추가해 실용적인 면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양산의 시장규모가 큰 일본에선 99.9%까지 자외선 차단 기능이 가능한 양산이 제조되고 있다. 양산 하나가 피부는 물론 여름철 건강을 지키는 아이템으로 각광받을 날도 멀지 않았다.

MBC 이산 - 의례용 양산
그랜드성형외과 유상욱 원장은 "여성들은 자외선에 주의하며 피부가 건조해지지 않도록 꾸준히 신경을 쓰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바깥출입을 아예 하지 않을 수 없다면 양산으로 자외선을 차단하는 방법이 좋다"고 말했다.

자외선, 남자들도 피하라!

회사원 김모씨(35)씨는 요즘 여자친구가 선물한 양산 겸용 우산을 자주 들고 다닌다. 지난해 선물로 받은 이후 요즘처럼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자동적으로 손에 쥐고 외출한다.

김 씨는 "양산은 어머니들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서 들고 다니는 것 자체를 꺼려했다. 하지만 점점 뜨거워지는 햇볕과 자외선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어 양산 겸용 우산을 선호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나 로마인들이 김 씨의 모습을 보았다면 나약한 남자로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를 살았던 남성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우산을 쓰지 않았고, 마차를 타며 그대로 비를 맞았다. 우산을 '나약한 물건'으로 취급했다. 18세기 영국 신사들도 우산이나 양산은 남자답지 못한 물건으로 비하하며 여성들의 전유물로만 여겼다.

그러나 영국에서 우산의 대중화를 이끈 사람은 다름 아닌 영국신사였다. 러시아와 극동을 오가며 무역업을 하던 조나스 한웨이는 18세기 후반부터 무려 30년 동안 우산을 갖고 다니며 우산의 대중화에 힘썼다. 결국 우산은 나약함의 상징이라며 손가락질하던 신사들에 의해 대중화의 바람을 타고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양산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남자들과 함께 했던 것으로 보인다. 커튼을 드리우고 장식된 직물 양산으로 자연을 방어하면서 의식용 전차에 탄 메소포타미아 아슈르비나팔 왕의 모습이 기원전 625년 부조물에 나타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궁중에서 왕이 주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과 같은 우산의 기능이 아니라 왕과 귀족층의 양산을 겸한 의례용으로 사용되었다.

왕의 의례에서 쓰인 양산은 헝겊을 겹겹이 붙여 3층으로 구성돼 있어 긴 자루로 받치도록 되어 있다. 사극에서 종종 보여지는 양산은 햇빛을 가리기 위한 용도로서 사용됐으며, 의례 속 양산은 어마어마한 크기로 한 사람이 들기에도 힘들어 보인다. 크고 위협적인 모양 때문인지 왕의 양산 밑에 서 있는 것만으로 명예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양산은 왕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기상청은 올해도 이상 고온현상으로 자외선지수가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과다 노출로 예상되는 위험에 대한 예보를 제공하고 있다. 양산은 이제 남성들에게도 '민망한 그 무엇'이 아닌 변화된 계절에 대응하는 선택적 물품이 되어버렸다. 화장하는 남자를 상상할 수 없었지만 이미 화장품업계에선 남성용 자외선 차단 기능이 첨가된 제품의 판매율이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 양산업계도 남자 소비자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동광양산의 이혜영 디자이너는 "일본에서는 90% 이상 '우양산' 제품이 출시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도 '우양산' 제품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며 그 생산량이 급증하고 있다"며 "'우양산'의 증가율은 남성들의 구입 상승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참고서적 : <패션 액세서리>, 셀리아 스톨 매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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