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능에서 패션으로, 다시 표현 도구로 진화

안경이라는 '최전방' 액세서리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너무나 부족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패션의 완성이라는 신발보다, 수트의 화룡정점이라는 불리는 넥타이보다 더 중요하고 신경 써야 할 것은 늘 마주하는 얼굴 가운데를 과감히 가로지는 이 안경일진대.

"어떤 사물에 그려진 명확한 선은 항상 그것을 그 선의 방향을 따라 길게 보이게 한다. 그런 까닭에 귀에 다리를 거는 식의, 낮은 코 덮개가 붙은 안경을 끼면 얼굴이 실물보다 넓게 보인다….(같은 맥락에서) 예술적 감각으로 선택된 안경이 더 돋보이게 할 수 없을 만큼 잘생긴 얼굴은 거의 없다."

프랑크 M.머피 박사가 장신구로서의 안경의 역할에 대해 열변을 토한 것은 1920년대였다. 그는 나이 들고 얼굴이 하얀 사람은 금색 또는 와인색의 프레임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며 얼굴이 큰 사람에게는 어두운 색의 테를, 얼굴이 작은 사람에게는 옅은 색의 테를 추천했다.

지금으로서는 귀에 박힐 정도로 흔해진 '얼굴형에 맞게 안경테 고르는 법'은 당시로서는 안경에 대한 꽤나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전까지 안경은 잘해야 기능 제품, 최악의 경우 진실된 소통을 방해하는 흉물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의 축복에서 젊음의 욕구로

레드닷 디자인상 수상작인 '하나'
물론 안경의 시작은 순전히 더 잘 보고 싶다는 순전한(?) 욕구에서 출발했다. 1629년 영국에 최초의 안경제조회사가 생겼을 때 그들이 내건 표어는 '노인에게 축복을'이었다.

기원전 4세기, 학구열에 불타는 가엾은 노인 세네카는 물을 채운 유리 장갑을 통해 보면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고, 그 후로 한참 뒤 글자를 확대하기 위해 이탈리아인들이 개발한 문서 위에 놓는 독서용 구슬은 안경의 시초쯤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렌즈에 프레임이 붙으면서 안경에는 불가피하게 장신구의 책임도 따라 붙었다.

"대학 재학 시절 남성 액세서리를 만드는 과제가 있었어요. 뭘 할까 한참 고민했죠. 버클, 귀걸이, 반지. 한국 사회에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장신구는 정말 한정돼 있어요. 전 넥타이를 안 하니 넥타이 핀도 필요 없었고. 그러다 생각한 게 안경이에요."

금속공예가 황순찬 씨의 말이다. 그는 도산공원 앞에서 수제 안경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가게 이름은 '얼굴에 선을 긋다'.

"안경의 성형 효과는 정말이지 자명해요. 어떻게 보면 성형 이상이죠. 얼굴이 크고 통통한 사람이 각진 사각형 테를 썼을 때와 작고 동그란 안경 테를 썼을 때만 비교해 봐도 금방 알 수 있어요."

보잉 선글라스 '나는 해지우다"
장신구의 '페이크 효과'에 있어 안경을 따라 잡을 수 있는 것이 있을까? 그것은 손바닥만한 귀걸이를 귀에 걸어 얼굴을 작아 보이게 하는 것이나 뒷주머니가 살짝 처진 데님을 입어 엉덩이 위치를 수정하는 것 따위와는 비교할 수 없다.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놓여져 적극적으로 얼굴의 크기와 형태를 바꿔 놓고, 색과 모양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으며, 별달리 신경 썼다는 느낌도 풍기지 않는 (특히 남성들에게 있어) 이 최고의 액세서리는, 그러나 역사 속에서는 많은 경우 흉물 취급을 당했다. 이는 특히 안경을 싫어한 것으로 알려진 괴테의 말에서 추측이 가능하다.

"나는 그것을 극복할 수가 없다. 코에 안경을 얹는 인간이 내게 가까이 오면 갑자기 나는 불쾌한 기분에 휩싸여 버린다. 예를 들면 미지의 인간들이 첫 대면에서 무언가 무례한 말을 했을 때와 같은 불쾌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내가 이야기하고 있을 때 그 눈으로 아무 것도 읽고 이해하지 못한 상대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일까? 내 눈을 부시게 하는 안경을 끼는 것으로 그 마음의 거울에 덮개를 씌워 버리는 상대에게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다는 걸까?"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숭배의 대상이나 지성의 상징으로 떠받들여진 적도 있지만 어느 쪽이든 안경의 비주얼 효과에는 여전히 조명이 비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본격적으로 안경이 패션에 영입된 해는 20세기에 들어서다. <안경의 문화사>를 쓴 리차드 코손에 의하면 그때부터 안경은 '보는 것'이 아닌 '보여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1964년 11월에 결성된 '미국유행안경그룹'의 목적은 미국에서 디자인된 안경 프레임을 패션 액세서리로 발전시키려고 하는 것이었다. 더불어 안경을 활용한 스타일링 팁도 쏟아져 나왔다.

'작은 얼굴은 대형 프레임을 피해야 하며, 위로 기울어진 프레임은 긴 얼굴을 보완해주는 효과가 있고, 얼굴이 계란형인 사람은 어떤 프레임도 다 잘 어울린다'는 류의 조언은 아직까지도 여러 잡지에서 매년 되풀이 되고 있는 레퍼토리다.

350개의 크리스탈을 박아 만든 '뾰두라지"
안경으로 바보 되기

국내 유일의 수제 안경 제작자 황순찬 씨는 안경의 명확한 보정 효과를 보고도 모른 척 했다. 다른 더 멋진 기능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2007년은 모든 일이 안 풀렸던 때입니다. 안으로나 밖으로나 상황이 어려워서 심하게 마음이 위축되던 때였죠. 당시 저는 아주 완벽하게 동그란 안경테를 찾고 있었어요. 상한 마음이 얼굴로 드러나는 걸 원치 않았고 누가 봐도 빙글빙글 웃고 있는 바보처럼 보이고 싶었거든요."

그러나 시중의 안경들은 소심하게도 '보완'에만 힘을 기울이느라 천편일률적이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안경을 만들었다. 얇고 가벼운 티타늄을 사용해 나사 하나 없이 접고 구부려 만든 안경의 이름은 '어리마리'. 그는 이 동그랗고 어리바리해 보이는 프레임 뒤에 숨어 얼굴뿐 아니라 감정까지 간단하게 보정할 수 있었다. 그것은 단순히 잘생겨 보이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완벽히 다른 사람으로의 변신으로, 안경 기능의 새로운 지평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이 밖에도 MT에 가서 친구 얼굴에 낙서를 하다가 영감을 얻은 '그리', 비행기 조종사들의 안경을 생각하며 만든 선글라스 '나는 해지우다', 350개의 크리스털을 박아 만든 '뾰두라지' 등 각각의 안경에는 그에 맞는 이름과 사연, 기능이 있다. 그 중 한 가닥의 티타늄만으로 만든 '하나'는 세계 3대 디자인 대회 중 하나인 레드닷어워드에서 안경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수제 안경 '어리마리'
"이제 안경은 확실히 패션 아이템으로 영입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남자들 중에는 4~5개씩 사서 분위기에 따라 바꿔 쓰는 사람도 많으니까요. 바라는 게 있다면 사람들이 좀 더 과감해졌으면 좋겠어요. '나는 이런 안경이 어울리니까 이것만 써야지' 하는 것보다는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해서 그 효과를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요? 옷이나 구두는 그렇게 하면서 왜 안경은 그렇게 하지 못하죠? 이래봬도 안경은 투자 대비 효율이 제일 높은 액세서리인데요."

* 참고서적: <패션 액세서리>, <안경의 문화사>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