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8) 티벳버터차, 뚝빠, 짬빠… 티벳 가정식 내는 명동 포탈라

맑고 건조한 공기, 시야가 탁 트이는 초원, 프리 티벳(Free Tibet), 차마고도, 고산증. 우리가 티벳에 대해 아는 건 얼마나 될까?

소수민족의 땅덩이답지 않게 한반도의 15배 크기라는 것, '반갑습니다' 또는 '존경합니다'의 의미로 혀를 내민다는 것, 중국이 총과 탱크를 들이밀었을 때 주문과 부적, 만다라로 대응했다는 사실까지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낯설고 생소한 티벳을 이제 입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명동성당 맞은 편 골목에 위치한 국내 유일의 티벳 식당 '포탈라'에서는 소박하고 간단한 티벳의 가정식을 맛볼 수 있다.

티벳인의 몸 속에는 버터차가 흐른다?

"유목 생활이 많았기 때문에 음식이 간단해요. 고산지라서 음식 문화도 한정적인 편이죠."

짬빠
사장인 텐진 텔렉씨는 네팔로 망명한 티베트인이자 박범신의 소설 <나마스테>의 주인공이다. 한국에 온지 10년째에 접어드는 그는 명함의 영문 이름 옆에 '민수'라는 한국 이름을 같이 표기하고 있다.

"요즘 티벳에 가면 티베탄 스파게티 같은 것도 많이 팔지만 그런 것은 포탈라에 없습니다. 진짜 티벳의 맛을 전하고 싶었거든요."

진짜 티벳의 맛은 무엇일까? 티벳의 초원에서는 초록색과 대비되는 새까만 야크 떼를 쉽게 볼 수 있는데 큰 덩치에 무시무시한 검은 털을 휘날리는 이 야크야말로 대부분의 티벳 음식 맛에 영향력을 끼치는 주요 식재료이자, 별다른 향신료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들이 티벳 음식을 힘들어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특히 야크를 뜯어 말린 육포는 티벳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춥고 건조한 기후는 장시간 방치된 고기를 썩게 만드는 대신 수분을 몽땅 앗아가 육포와 비슷한 맛과 질감을 만들어 낸다. 집집마다 불단을 모시고 사는 티벳인들인지라 육식을 즐기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 민족에 따라 천차만별로 좋아하는 이들은 거의 매 끼니마다 육포를 먹는다.

"티벳의 가장 특징적인 향은 이 육포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편평하게 말려서 각종 양념으로 조미한 한국의 육포와 달리 아무 첨가물 없이 내장만 빼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말리죠. 12월부터 2월까지가 시장에 육포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인데 이 때가 가장 춥기 때문이에요."

뚝빠
야크 특유의 누린내와 독특한 기후가 탄생시킨 이 야생의 맛은 불행히도 포탈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다. 제대로 된 맛을 내려면 현지에서 말려 가져와야 하는데 위생상의 문제로 수입이 힘든데다가 웬만해서는 적응하기 힘든 맛이라 모험을 감수하고 들여오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고.

대신 티벳인들이 하루에 40잔씩 들이킨다는 버터차를 맛볼 수 있다. 보이차와 소금에 야크 버터를 녹여 만드는 버터차는 현지인들에게는 피이자, 고기요, 생명으로 불리는 민족의 음료다. 버터가 들어가기 때문에 열량이 높아서 추위를 이기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채소류 섭취가 부족한 자국민들에게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해주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에너지 원이기도 하다.

마치 삼보의 호랑이 버터처럼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름이지만, 생각보다 맛은 점잖은 편. 나무 그릇에 담겨 나오는 차에는 버터 기름이 둥둥 떠 있지도, 버터맛이 그리 강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전반적으로 밋밋한 맛이지만 계속 마시다 보면 살짝 고소한 맛이 나기도 한다. 그들의 주식인 와 함께 먹으면 좋다.

는 볶은 보리 가루로, 이 가루로 만든 빵을 빡이라고 부른다. 유목 생활을 주로 하는 북쪽 음식답게 아무리 간단하다고 자부하는 패스트 푸드도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초간단식'이다. 보리 가루와 버터차만 있으면 끝. 둘을 섞은 반죽을 손으로 꾹 눌러서 먹으면 된다.

의 놀라운 기동성 때문에 중국 당나라 때 토번(당시 티벳인들을 부르는 명칭)들이 기세등등하게 세력을 넓힐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당나라 군인들이 온갖 식재료를 이고 지고 다니는 동안 토번의 군인들은 가루와 차만 달랑 지니고 다니며 그 자리에서 를 만들어 먹었기 때문이라고. 포탈라의 에도 쥐어 만든 손자국이 선명하다. 티벳산 보리가루로 만든 회색빛의 반죽에 멈칫거리는 이들이 많지만 맛은 미숫가루와 비슷해 친근하며 약간 단 맛도 난다.

요상박뤠
가공하지 않은 소박한 매력

소박하기만 한 가정식에 조금 실망했다면 갸꼬나 팅모 알루핑샤를 시켜보는 것도 좋다. 팅모 알루핑샤는 양고기와 감자, 티벳 당면으로 만든 티벳식 커리인데 꽃빵과 비슷한 팅모와 함께 나온다. 다른 음식들에 비하면 상당히 모양새와 격식을 갖춘 정식으로, 15분이 소요된다고 특별히 표기돼 있다. 물론 다른 음식들은 다 그 전에 나온다는 소리다.

자극적이지 않은 커리 속에는 부드러운 양고기와 함께 티벳 당면인 핑이 들어가는데 우리나라의 잡채와 거의 차이가 없다. 팅모의 개수에 비해 커리의 양이 좀 적은 편이긴 하지만 걸쭉하고 따끈한 국물이 우리 입맛에 딱 맞는다.

두툼한 빵을 의미하는 박뤠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는데 손님들로부터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튀긴 빵인 다. 성인 얼굴 만한 크기의 거대한 빵은 함께 나오는 네팔 꿀을 찍어 먹으면 고소하고 달콤한 맛이 배가된다. 이 밖에도 한국의 칼국수와 비슷한 와 만두의 일종인 모모도 있다.

"티벳 음식의 매력은 최소한의 음식이라는 점이죠. 자연에서 온 재료를 그대로 먹고 별다르게 양념하거나 가공하지 않습니다. 가족이 둘러 앉아 수제비를 한 솥 가득 끓여 나눠 먹고 남으면 다음날 다시 끓여서 먹는, 이것이 티벳 식문화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이에요."

주방은 두 명의 네팔 출신 셰프가 맡고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티벳 식당에서 10년 간 근무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국내 유일의 티벳 식당인 만큼 음식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매주 토요일 7시에는 티벳 가수인 까락 뺀빠의 공연이 열린다.

현재 한예종에서 공부 중이지만 아마추어 가수가 아닌 이미 대여섯 장의 앨범을 낸 프로 가수로, 티벳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부르는 노래를 들 수 있다. 공연 중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모금은 티벳 난민촌의 아이들을 돕는 데 쓰인다. 인도, 네팔 등지에서 거주하는 망명 티벳인들이 직접 만든 수제 액세서리도 판매한다. 손님은 거의 대다수가 한국인. 국내에 거주하는 티벳인이 서른 명도 채 안 되는 점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한국 사람들이 와서 티벳 음식을 먹어보고 동질감을 느꼈으면 했어요. 더불어 티벳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 높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막걸리나 순대, 칼국수, 백김치처럼 티벳 음식에는 한식과 비슷한 것들이 많거든요. 십이지 사상과 명절 시기 같은 부분들에 있어서도 공통점이 많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자국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포탈라. "아주 황홀할 정도로 맛있는 음식들은 아니에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것까지 우리네 모습과 흡사하다. 영업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밤 11시까지. 토요일에만 오후 2시에 연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