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가족여행] 낙영산 공림사

수령 1000년이 넘은 공림사 느티나무
신라 진평왕(재위 579~632년) 때 일이라고 한다. 당나라 고조(재위 618~626년)가 세수하려는데 대야 속에 아름다운 산이 비쳤다.

기이하게 여긴 고조는 신하를 불러 그림을 그리게 하고는 전국에 이 산을 찾으라는 명을 내렸으나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자승이 당나라가 아니라 동방 신라에 있는 산이라고 알려주어 신라에 사신을 보냈더니 어느 도승이 나타나 이 산의 위치를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 이름을 '그림자가 떨어지다' 또는 '그림자가 비치다'라는 뜻의 낙영산(落影山)으로 일컫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충북 괴산군 청천면 사담리에 위치한 낙영산은 해발 746미터로 그다지 높지는 않다. 그러나 암석미가 빼어난 바위산으로 당당하고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코끼리바위, 두꺼비바위, 거북바위, 토끼바위 등 기암도 즐비하다. 속리산 국립공원 구역에 속해 있을 자격이 충분한 명산이다. 또한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인기 있는 산행지이기도 하다.

공림사에서 왼쪽 섬목골 골짜기의 산길을 따라 40분 남짓 걸으면 미륵산성이 있는 능선 안부 사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오른쪽 능선으로 15분 남짓 더 오르면 낙영산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에서는 우거진 숲 때문에 시원스러운 조망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상에 올라서기 10분쯤 전에 만나는 전망대가 주변 산들을 조망하기 좋다. 백두대간 주능선의 힘찬 기상과 톱니처럼 이어진 속리산 연봉의 기묘한 자태를 감상할 수 있다.

낙영산 기슭에 안긴 신라 고찰 공림사
천년 넘은 느티나무 등 고목 군란 아늑한 운치 선사

낙영산 서남쪽 기슭에 안긴 공림사는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 경문왕 13년(873년) 자정선사(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자정선사의 법력이 뛰어나다는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자 경문왕은 자정을 국사로 삼고 공림사(空林寺)라는 사찰 이름을 지어 사액(賜額)했다.

한때는 본사인 법주사보다도 흥했으나 조선 정종 원년(1398년) 기화(함허당 득통화상)가 명산명찰을 돌아보다가 공림사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폐사된 상태였다고 한다. 기화는 이곳의 경치에 반해 머무르면서 공림사를 중건했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대웅전과 요사채를 제외한 건물들이 불타 없어져서 인조 때 다시 지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사찰 건물들이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1965년에 법당과 요사를 재건했으며 탄성 스님이 1981년부터 13년에 걸쳐 대웅전, 일주각, 산신각, 삼성각 등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공림사는 현재 부도, 사적비, 석조 등의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공림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괴산군 보호수 54호로 지정된 느티나무다. 높이 15미터, 둘레 8미터에 이르는 이 느티나무는 보호수 지정 당시인 1982년에 수령 990년으로 추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이는 1010년이 넘은 셈이다. 이 나무는 나라에 큰 변화가 있을 때 우는 신목으로도 알려졌는데 1945년 광복 때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시에 울었다고 전해진다.

20여 그루가 우거진 공림사 느티나무 숲
이 느티나무 외에도 절 아래 마당에 우거진 20여 그루의 수백년생 느티나무 고목 군락이 시원한 그늘과 더불어 아늑한 운치를 선사한다. 느티나무 군락 그늘 아래에는 지름이 1.5미터나 되는 대형 맷돌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한다.

산수가 빼어난 사담동천, 휴양지로도 그만

"골짜기의 안개와 노을 열리려 하는데 깊은 밤 별빛 아래서 잠시 배회하네.
시냇물과 밝은 가을달이 서로 어우러지는데
이 인생은 언제 다시 찾아오려나."

우암 송시열이 공림사를 둘러보고 남긴 시다. 이 시에서 느낄 수 있듯이 공림사는 번잡한 일상생활에서 찌든 삶을 추스르기에 좋은 곳이다.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으면서 평안을 되찾기에 알맞은 고찰이다.

공림사 일원의 마을과 자연을 사담동천이라고 일컫는다. 우암 송시열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큰 바위에 사담동천(沙潭洞天)이라고 암각했다고 해서 그렇게 불린다. 사담은 이곳에 고운 모래밭과 깊은 못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며 동천이란 산과 내가 어우러진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1980년 9월 천연기념물 제266호로 지정된 망개나무 자생지도 있다.

느티나무 숲 아래의 대형 맷돌
산수가 빼어난 사담동천은 봄가을의 피크닉이나 여름철 피서를 즐기기에 그만인 맑은 계곡과 시냇물도 품고 있다. 특히 공주폭포와 대왕폭포는 외지인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숨어 있는 진주다.

중대방래에서 대왕봉 쪽 계곡 길로 30분 거리에 있는 공주폭포는 수줍은 새색시처럼 단아하면서 조형미가 빼어나다. 흡사 공주의 속살을 훔쳐보는 듯한 은밀한 느낌을 자아낸다. 공주폭포 위쪽의 대왕폭포는 거대한 암벽을 타고 내리는 30미터가 넘는 물줄기가 장엄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수량이 별로 없어 그저 웅장한 바윗덩어리로 보인다.

찾아가는 길

중부고속도로-증평 나들목-증평-592번 지방도-청안-부흥(백봉)-37번 국도-청천-37번 국도를 거치다가 사담리에서 공림사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한다. 대중교통은 청주에서 청천까지 직행버스를 이용한 다음, 사담리로 가는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동서울 터미널에서 괴산행 버스를 탄 다음, 청천을 거쳐 사담리로 와도 된다.

맛있는 집

사담리의 어울마당(043-833-1257)은 이 지방 토속 별미인 칡국수로 이름난 맛집이다. 이곳 칡국수는 칡가루와 우리밀가루를 섞어 면을 뽑고 느타리버섯, 표고버섯, 호박, 당근 등을 넣어 멸치국물에 끓이는 것이 특징이다. 약간 쌉쌀하면서 톡 쏘는 맛이 매콤한 듯하지만 부드럽고 구수하면서 시원해 여름철 입맛을 돋우기에 좋다. 얼얼할 정도로 맵지만 먹을수록 감칠맛 나는 민물고기 매운탕과 메기찜 등도 내며 민박도 받는다.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