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희, 김선혜, 노영승 요리사

2010년 에스꼬삐에 1위 박종희
최근 세계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의 젊은 요리사들이 늘고 있다.

촉망 받는 신예 요리사에게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이들이 스타셰프로 성장해 식문화를 이끌 주역이기 때문이다. 한식세계화에 있어서도 이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으로 기대된다. 떠오르는 젊은 요리사 3인을 만나본다.

박종희, 지방 레스토랑에서 갈고 닦은 일품 프랑스 요리솜씨

지난 달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제3회 에스꼬삐에 영 홉 콘테스트(Escoffier Asia Youth Hope Contest)'에서 한국 대표로 출전한 박종희 씨(23·전주 소재 레스토랑 '쏘뇨')가 1위를 차지했다.

'에스꼬삐에 영 홉 테스트'는 프랑스 농식품 진흥공사(SOPEXA)가 후원하는 요리대회로 매년 아시아권 특급호텔에 근무하는 실력 있는 젊은 요리사들이 각국의 대표로 출전해 실력을 겨루는 아시아 최고의 요리대회 중 하나다.

2009년 에스꼬삐에 2위 김선혜
박 씨는 대회에서 버터를 이용한 연어요리인 '노르웨지안 살몬 코트레트 포자르스키(Norwegian Salmon Cotelette Pojarski)'와 아스파라거스, 감자, 굴 등을 이용한 6가지 가니쉬(사이드메뉴)를 만들었다. 그는 "포자르스키는 1800년대에 나온 클래식한 레시피인데, 이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했고, 가니쉬를 곁들여 섬세하게 다듬었다"고 설명했다.

또, 재료 본연의 질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카터기나 믹서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료 준비에서부터 프리젠테이션까지 모두 손으로 작업했다. 요리에 깊은 맛을 더하기 위해 물 대신 육수를 현장에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대회 심사위원들은 "박종희 씨는 재료의 성질, 향과 맛을 잘 파악하고 있으며, 창의적이고 맛도 좋은 완성도 높은 일품요리를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어떻게 지방에서 그것도 특급호텔이 아닌 일반 레스토랑에서 일품 프랑스 요리 실력을 익혔을까?

"서울의 특급호텔에서 일해야 최고급 요리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다 개인의 열정에 달린 문제죠."

요리경력 10년 차인 그는 최고의 프랑스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다부지게 내공을 쌓아왔다. 독학으로 불어와 영어를 공부해 닥치는 대로 외국 요리서적을 읽었다. 또, 쉬는 날엔 서울의 일본 요리학원 '쯔지'에서 공부를 했고, 이름난 레스토랑을 찾아 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봤다. 외국 요리대회에도 몇 번 출전했다.

르네상스호텔 노영승 셰프
주방에서 하루 13시간을 일하는 강행군 속에서도 틈틈이 와인을 공부하고, 새로운 메뉴를 개발해보기도 한다.

"미쉐린 스타 요리사 알랭 듀카스 같은 요리사가 꿈이에요. 그는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만의 요리세계를 선보이는 개성 강한 셰프거든요."

창의적인 요리사가 되기 위해 박 씨는 대화와 독서, 여행과 낚시, 등산 등의 취미생활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 대회 수상 후 박 씨는 런던의 유명 레스토랑 '르 가브로시'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레스토랑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사양했다.

"외국에 가서 일할 생각이 없어요. 내년 아시아 대표로 벨기에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대회에 참가하는데요. 대회가 끝나면 프랑스 파리에서 2~3달 정도 공부할 계획입니다. 기회가 생기면 잠깐씩 외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계속 지방에서 일할 거예요. 저 같은 지방의 요리사 지망생들은 교육환경이 열악해요. 좀더 훌륭한 요리사가 되어 후배 양성에 힘쓰고 싶습니다."

김선혜, 여자 요리사가 선사하는 섬세한 맛

김선혜(26세·웨스틴조선 부산호텔) 씨는 작년 '제2회 에스꼬삐에 영 홉 콘테스트'에서 2등을 수상했다.

대회에서 그는 참가자 가운데 유일하게 우유에 레몬을 넣어 생선의 비릿한 냄새를 없애고, 메인 요리 위에 금가루를 뿌려 음식의 고급스러움을 돋보이게 하는 감각을 발휘했다. 심사위원들은 "김선혜 씨는 매우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음식을 선보여 1등 중국에 근소한 점수차로 2등을 차지했다"며 장래가 매우 촉망되는 요리사라고 칭찬했다.

이 밖에도 김 씨는 2008년 소펙사가 주최하는 '쥔느 꼬미 로띠쐬르(Jeune Commis Rottiseur)' 국내 요리대회에서 1등을 수상해 한국 대표로 파리 세계대회에 출전한 바 있다. 유명 국제대회 수상경력 덕분에 직장에서 동료들보다 진급도 빠른 편이다.

"5년 전 처음 입사했을 때 여자요리사는 저밖에 없었어요. 이 세계가 오랫동안 금녀의 영역이었고, 지금도 차별과 불이익이 많은 게 현실이에요. 하지만 자기 하기에 따라 길은 얼마든지 열려있다고 봅니다. 여자가 갖는 장점도 많거든요. 아무래도 남자보다 섬세한 게 있어요. 그리고 남자보다 체력이 약해 일하는데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가 해보니까 그렇지 않아요. 혼자서 100kg이 넘는 짐을 옮기는데, 남자들도 그렇게 못 들어요. 남자들보다 힘이 더 세기 때문이 아니라 지혜가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는 창의적인 요리사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요리책은 기본이고, 서점에 가서 각종 미술잡지를 보며, 색감을 익힌다. 타 분야의 책도 열심히 읽는 편이다. 새로운 트렌드를 읽고 요리에 접목시키기 위해서다. 수시로 인터넷을 뒤져가며 외국요리의 레시피를 구하고, 조리법이나 양념 등을 변형해 자기만의 레시피로 바꿔보기도 한다.

하지만 혼자서만 만족하는 요리사는 훌륭한 요리사가 아니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결국은 고객을 만족시켜야 훌륭한 요리사가 아닐까요? 고객의 마음을 읽고, 고객과 소통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어요."

노영승, 젊고 현대적인 감각으로 한식세계화에 앞장

르네상스호텔에서 근무하는 노영승(33) 씨는 지난해 10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2회 세계한식요리경연축제 세계권역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그는 한 팀으로 출전한 같은 호텔 조리부 이상훈(40)씨와 함께 마요네즈와 과일즙을 많이 넣어 매운 맛을 없앤 비빔냉면, 소스를 찍어 먹는 떡갈비 등 외국인 입맛에 맞는 한식을 요리했다. 또, 한식의 '약식동원(藥食同源·음식이 곧 보약)' 정신을 살리면서 시각적으로도 세련된 메뉴를 선보였다.

심사위원은 모두 미국조리중앙학교(CIA·Culinary Institute of America) 교수들로 구성됐다. 세계적인 요리학교의 교수들이 인정한 한식요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한식의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메뉴를 개발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기존에 한식을 하는 분들은 틀에 얽매여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내지 못해요. 또, 일부에선 타당하지 않게 변형을 시키고요. 한식을 어느 정도로 변형시키는 게 좋은지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미쉐린 가이드를 비롯해 요리관련 서적을 많이 읽었고, 해외여행이 도움이 됐다. 노 씨는 장식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그는 "한식은 투박하다는 고정관념이 강하지만 요리사의 기량에 따라 한식도 일식이나 프랑스요리처럼 얼마든지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식세계화의 전망을 밝게 내다본다. 건강식이 세계적인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한식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맛있고 세련된 한식 못지 않게 건강식을 지향한다.

"국력이 모자라서 한식세계화가 어렵다는 생각은 안 해요. 태국이나 인도음식도 세계화에 성공했잖아요.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중요해요."

노 씨는 스타셰프가 되려면 요리에 대한 지식과 기술은 기본이고, 어학과 문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요리는 종합예술이기 때문이다.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