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문희 마을
비오리가 있었다. 원앙처럼 암수가 항상 붙어 다니는, 그래서 원앙과 더불어 찰떡궁합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예쁜 오리였다.
비오리 새끼들이 어미의 뒤를 따라 종종거리며 헤엄치는 모습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족 사랑의 표상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 가족은 본디 철새였으나 동강의 맑은 자연을 사랑한 끝에 텃새로 자리잡기로 마음먹었다.
1997년 동강에 영월댐이 건설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뉴스가 메아리쳤을 때 비오리 가족도 그 소식을 들었을까? 숱한 우여곡절 끝에, 이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환경보호 단체들의 끈질긴 노력에 힘입어 2000년 동강댐 건설은 백지화되었다.
그러나 희생이 너무 컸다. 그 사이, 매스컴이 다투어 동강의 아름다움을 알렸고, 이를 틈타 한몫 챙기려는 상인과 댐 건설로 사라질지도 모르는 비경을 보려는 관광객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동강은 장터처럼 득시글댔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동요 분위기 떠올라
무거운 가슴으로 다시 찾은 동강 문희 마을. 그래도 여기는 옛 정취가 어느 정도 남아 있다. 동강의 다른 곳에 비해 래프팅 보트가 그다지 붐비지 않는 구간인 까닭이다. 래프팅으로 가장 몸살을 앓는 곳은 평창군 미탄면 마하리 진탄 나루에서 어라연을 거쳐 영월군 영월읍 거운리 섭새에 이르는 구간이다.
동강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손꼽혀온 어라연은 세 바위섬으로 이루어져 삼선암(三仙岩)이라고도 불린다. 그 옛날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도 전해지는 어라연 일원에는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만큼 물고기가 많았으나 무분별한 래프팅 탓에 수중 생태계가 크게 훼손되었다. 지금은 래프팅에 대해 엄격한 규정이 적용되고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기에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진탄 나루에서 문희 마을에 이르는 10리 강변길은 아직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는 동요 분위기를 떠올리게 한다. 승용차로는 달리기 힘든 비포장 길이었지만 최근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되었다. 평화롭고 고요한 듯한 강을 유심히 살피면 물살 세찬 여울이 곳곳에 보인다.
고즈넉한 고원 분지 마을 고마루
문희 마을 앞 동강의 정취를 제대로 맛보려면 밤이 좋다. 손전등으로 물속을 비추면 낮에는 깊은 물에서 놀다가 밤이면 강가로 나와 잠에 빠져든 물고기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깊은 잠을 깨우지는 말자.
문희 마을 뒤편으로 나 있는 칠족령 트레킹 길을 더듬는 것도 좋다. 칠족령 전망대까지 약 1.7㎞ 거리인데 처음 3분의 1이 가파를 뿐이고 그 후로는 경사가 완만해 손쉽게 오를 수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휘돌아가는 동강의 물굽이 풍광이 그림 같고 제장 마을, 소사 마을, 연포 마을 등의 강변 마을도 정취를 돋운다.
문희 마을을 찾는 김에 오지 마을 고마루도 들러보자. 미탄과 문희 마을을 잇는 길 중간 지점에서 재치길로 들어섰다가 고마루길로 좌회전하면 고마루로 이어진다. 예전에는 비포장 험로였지만 최근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포장되어 승용차도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오르막과 내리막 경사가 심하고 급커브 구간이 많은데다 노폭도 좁으므로 조심해서 운전해야 한다.
찾아가는 길
새말 나들목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안흥-42번 국도-방림-31번 국도-평창-42번 국도-미탄을 거친다. 미탄에서 정선 쪽으로 3분쯤 달리다가 42번 국도를 벗어나 우회전하면 고마루 입구 및 문희 마을로 이어진다. 대중교통은 동서울 터미널에서 평창 경유 정선 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미탄에서 내린다. 미탄에서 마하리로 가는 군내버스나 택시 이용. 맛있는 집 평창읍에서 미탄 방면 42번 국도로 잠시 오면 1965년 국내 최초로 송어 양식을 시작한 평창송어양식장(033-332-0505, 0506)이 있다. 용출수를 뽑아 송어를 키우는 방법을 일찍이 개발한 집이다. 쌈장에 찍어 상추나 깻잎에 싸 먹는 회가 일반적이지만 튀김이나 구이도 맛있다. 문희 마을 입구 기화천 일원도 송어 양식으로 유명한데 기화양어장횟집민박(033-332-6277)이 대표적인 집이다. |
글·사진=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