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갈은구곡제1곡 갈은동문서 제9곡 선국암까지 비경의 골짜기

제1곡 갈은동문 앞 계곡
우리나라에는 구곡(九曲)이라는 별칭이 붙은 계곡이 많다. 아홉이라는 숫자를 신성시한 선현들이 아름다운 계곡마다 아홉 굽이의 절경을 정하고 구곡시를 읊었던 것이다.

특히 충북 괴산군은 화양구곡, 선유구곡, 쌍곡(쌍계)구곡, 연하구곡, 갈은구곡, 고산구곡, 풍계구곡 등 무려 7곳의 구곡을 거느린 구곡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 가운데 연하구곡과 풍계구곡은 댐 건설로 수몰되어 이제는 만날 수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괴산의 구곡 중에 갈론 마을 상류에 있는 갈은구곡은 바깥 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비경 지대다.

갈론 마을로 가다 보면 괴산댐이 나타난다. 조선 중기의 대학자이자 명신인 우암 송시열(1607~1689년)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기다가 '언젠가 산이 막혀 강을 이룰 것이다'라고 예언하고 물길을 거슬러 화양구곡으로 올라가 은거했는데, 그 예언대로 1957년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발전소인 괴산 수력발전소가 세워졌다.

비학산과 옥녀봉 기슭에 펼쳐진 갈은동(葛隱洞)은 칡이 많이 우거져서 은거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비경의 골짜기는 조선 명종 및 선조 때의 명신인 노수신(1515~1590년)이 사랑했던 곳이다.

갈은구곡 옆으로 드리운 오솔길
1565년부터 1567년까지 갈론에서 유배생활을 했던 노수신은 갈은동의 아홉 명소를 꼽아 9곡으로 정하고 연하수석 정일건곤(煙霞水石 精一乾坤)이라는 말을 남겼다. '하늘에는 안개와 노을, 땅에는 물과 돌이 어우러지니 천지에 하나뿐인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다.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내려와 놀고

1998년에 폐교된 갈론분교를 지난해 리모델링한 숙박 시설인 갈론 산촌체험관 앞이 갈은구곡 트레킹의 시발점이다. 이곳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넓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잠시 후 길 오른쪽으로 집채보다 큰 바위가 나타난다. 갈은구곡 제1곡인 갈은동문이다. 이 바위는 한 길쯤 되는 못을 굽어보고 있으며 갈은동문(葛隱洞門)이라는 글씨가 큼직하게 음각되어 있다. 갈은동문 앞 계곡은 바닥이 비칠 만큼 투명한 물과 너른 너럭바위가 어우러져 운치를 돋운다.

조금 더 오르면 왼쪽 계곡 건너편에 큰 바위가 보인다. 제2곡인 갈천정으로 갈천씨의 백성, 즉 갈천민(葛天民)이 은거했다는 곳이다. 갈은동 본류를 건너 잠시 더 가면 제3곡인 강선대가 반긴다.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어린 곳이다. 계류 옆 바위에 강선대(降僊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왜 仙이 아니라 僊이라고 되어 있는지 궁금하리라. 이 선(僊)은 '불로장생하는 신선'이라는 뜻이다.

강선대는 갈은구곡 중 유일하게 갈은동 지류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위쪽 계곡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곧 길이 끊긴다. 강선대에서 하류로 잠시 되돌아 나온 다음 비닐하우스가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 길로 가야 제4곡~제9곡이 이어지니 유의하도록 하자.

제2곡 갈천정은 갈천민이 은거했던 곳이다
옛 선비들이 정자에서 풍류 즐기고

본류 옆 산길로 800미터쯤 오르면 제4곡 옥류벽(玉溜壁)에 이른다. 넓은 물웅덩이와 절벽 옆으로 시루떡처럼 생긴 암벽이 층층이 쌓인 바위인데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잠시 더 오르면 제5곡 금병(錦屛)에 다다른다. 금병은 비단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절벽이라는 뜻이다. 맑은 계류 옆으로 층층이 솟은 3단 바위가 웅장하다.

거북 모양의 바위인 제6곡 구암(龜岩)을 지나면 이내 제7곡 고송유수재(古松流水齋)에 이른다. 고송유수재는 노송 아래로 흐르는 물가에 지은 집이라는 뜻이다. 흡사 칼로 자른 듯 반듯한 바위 협곡 바로 위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펼쳐져서 작은 집(齋) 한 채 짓기에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옛날에는 이곳에 정자가 세워져 있어 옛 선비들이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고송유수재 바로 위에는 제8곡 칠학동천(七鶴洞天)이 있다. 칠학동천은 일곱 마리의 학이 살았다는 맑은 골짜기지만 언제부턴가 학은 날아가고 없다. 칠학동천 위쪽 10미터 남짓한 곳에는 갈은구곡의 마지막으로 신선이 바둑을 두었다는 제9곡 선국암(仙局岩)이 있다. 3평 넓이의 너럭바위 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으며 양모서리에는 움푹하게 바둑돌을 놓을 자리도 마련되어 있다.

갈은구곡은 한마디로 신선들의 별장 같은 곳이다. 더욱이 소박하면서 단아한 자연미는 '나물 먹고 물장구치던' 옛 고향산천을 보는 듯 호젓하면서 정겹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 다슬기를 잡는 재미도 쏠쏠하고 쪽빛 계류와 맑은 물, 평평한 반석이 이어져 심신의 피로를 씻으며 쉬기에도 그만이다.

제3곡 강선대는 신선들이 노닐었다는 곳이다
찾아가는 길

중부내륙(45번)고속도로-연풍 나들목-괴산 방면 34번 국도를 거쳐 달리다가 칠성면 소재지로 들어온다. 칠성면에서 괴산댐 방면으로 좌회전해 3km 남짓 달리면 달천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지 말고 왼쪽 좁은 길로 5.5km쯤 가면 갈론 산촌체험관 앞 주차장에 닿는다.
대중교통은 동서울이나 청주에서 괴산행 시외버스를 탄 다음, 칠성 경유 수전행 시내버스로 갈아탄다. 수전에서 갈론 마을까지는 1시간 30분쯤 걸어야 한다.

맛있는 집

괴산읍 외곽 괴강교 앞에 자리한 괴강매운탕(043-834-2974)은 60여년 전통의 매운탕 전문점이다. 매운탕에 사용하는 모든 민물고기는 괴강에서 직접 잡은 100% 자연산으로 죽은 고기는 절대로 쓰지 않는다. 또한 괴산의 특산품인 마늘과 고추, 직접 담가 알맞게 익혀 쓰는 된장과 고추장 등이 매운탕 맛을 좌우한다. 다시 말해서 좋은 민물고기와 뛰어난 양념 이 잘 조화를 이루어 전국적인 매운탕 전문점으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것이다. 메기, 쏘가리, 배가사리, 잡어 등을 이용한 매운탕과 함께 메기조림과 쏘가리조림도 인기 있다.


괴강매운탕의 잡어매운탕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