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쇼메 등 보석에 스토리텔링과 시대상 담아

1960년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착용한 불가리 네크리스
"당신은 어떤 보석을 간직하고 계십니까?" 전 세계 여성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서랍 속, 깊게는 장롱 속 어딘가에 소장해 두었을 보석들을 떠올릴 것이다.

머릿속에는 보석의 모습과 함께 그에 얽힌 사연들도 스쳐간다. 꽁꽁 싸매놓은 그 보석들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느리 혹은 딸, 손녀에게 남겨줄 보석들은 여전히 많은 추억을 간직하며 소장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보석, 스토리텔링을 갖다

'대양의 심장.'루이 16세의 왕관을 장식했던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영화 <타이타닉>의 첫 장면은 이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를 찾으면서 시작한다.

<타이타닉>에서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는 여주인공 로즈(케이트 윈슬렛 분)가 목에 걸고 사랑하는 남자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분)을 위한 누드화에서 영롱하게 빛난다. 영화는 이 다이아몬드의 전설을 들려주면서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저주를 몰고 오는 다이아몬드'라고 설명한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착용한 불가리 브로치
영화의 시작을 알렸던 블루 호프 다이아몬드는 결국 100세가 넘은 로즈가 아름다운 사연과 함께 바닷속 깊숙이 던져버리면서 끝을 장식한다. 다이아몬드의 추억이 영화와 함께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프랑스의 보석 브랜드 쇼메(Chaumet)도 <타이타닉>에 못지 않은 히스토리를 갖고 있다. 쇼메는 나폴레옹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주얼리다. 쇼메는 1780년 프랑스의 마리 에티엔 니토가 파리 방돔 광장에 보석상을 차리면서 230년의 역사를 시작했다. 마리 에티엔 니토는 어느 겨울 밤 자신의 가게 앞에 쓰러진 한 군인을 돌봐주었다.

그 군인이 바로 프랑스의 황제가 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니토는 나폴레옹과의 이 특별한 인연으로 황실 전속 보석 세공사로 임명된다.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대관식에 필요한 왕관 등을 모두 쇼메에 의뢰했고, 부인인 조세핀의 결혼 예물도 맡긴다. 쇼메에서 만들어진 조세핀을 위한 티아라는 황실과 권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최근 쇼메가 진행한 '조세핀 컬렉션'에 진열된 티아라 3종이 총 19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그 가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듯싶다. 티아라가 단순히 주얼리를 뛰어넘어 역사적 상징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230년 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티아라와 주얼리들은 희소성을 더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가장 사랑한 주얼리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6월 서울 신라호텔에선 이탈리아 보석 브랜드 불가리가 <영원과 역사 사이: 1884~2009> 회고전을 개최했다. 1884년 불가리가 비아 시스티나에 처음 스토어를 오픈할 때부터 현재까지 장대한 스토리를 담은 컬렉션을 선보였다.

1960년대 불가리 네크리스를 착용한 키이라 나이틀리
총 6개의 섹션으로 나눠져 불가리 125년의 역사를 한 눈에 보게 했다. 특히 1950~1960년대 불가리 주얼리의 변화가 눈부시다. 당시 보석은 부드러운 스타일과 더불어 '카보숑컷' 원석 사용이 두드러졌다. 불가리는 고유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완성해 컬러 혁명을 불러 일으켰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시기에 할리우드의 핫 아이콘으로 부상하면서 불가리의 뮤즈로 떠올랐다. 그녀는 불가리가 만들어낸 탐스러운 보석의 초록빛 네크리스와 브로치 등을 착용하고 각종 영화시상식과 공식석상에 나섰다. 그 결과 엘리자베스 테일러하면 원석 고유의 아름다움이 살아난 초록빛 주얼리가 함께 떠오를 정도다.

불가리는 이번 회고전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고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이미지가 더욱 빛날 수 있었던 주얼리도 선보했다. 불가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잉드리드 버그만,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1950~1970년대를 풍미했던 여배우들에게 사랑받는 아이템이었다.

할리우드 배우 키이라 나이틀리도 1960년대를 재현하듯 화려한 불가리의 보석으로 눈을 자극했다. 나이틀리는 2006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6년 전 다양한 색채의 변화기를 겪던 시대의 네크리스로 한껏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냈다. 67캐럿의 사파이어 25개, 총 48캐럿의 에메랄드 71개, 총 75캐럿의 루비 88개와 348개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자랑하는 네크리스를 목에 건 것. 키이라 나이틀리는 투명한 광채의 형형색색 네크리스로 시대를 뛰어넘으며 아름다움의 극치를 표현했다.

<보석이야기>의 저자 문희수 씨는 책을 통해 "원석이 채광이 되어 장인의 손길을 거치면서 계산된 경로를 통하여 그 빛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때부터 보석으로서 마력을 발휘하게 시작한다. 아름다움을 주는 대상으로서가 아닌 재화로서의 가치를 갖는 물질로 변화되면서 인간의 탐욕이 더해지면 더 이상 보석은 보석이 아닌 인간파멸의 도구로 전락되기도 한다"며 "높은 가격의 돌들이 갖는 아름다움이나 희소성이 더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반드시 그런 돌들만이 보석으로서 진정한 가치를 갖는 것은 아닐 것이다.

불가리 125주년 역사 주얼리 회고전
만약 당신이 소지하고 있는 보석이 남다른 의미나 사연을 가진 돌이라면, 그 돌은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가진 나만의 보석이 될 것이다"고 설명했다.

주얼리 트렌드, 시대를 말한다

주얼리가 시대를 대변하는 작은 증거물이라면 믿어질까? 최근 구찌는 신상품 컬렉션을 열고 '아이콘 볼드 컬렉션', '뱀부 컬렉션', '디아망띠시마 컬렉션' 등 세 가지 신상품을 공개했다. 신상품이라고는 하지만 시대를 반영하듯 기존 디자인을 고수한 모습이었다.

특히 뱀부 컬렉션과 디아망띠시마 컬렉션은 역사적인 시대상을 담고 있다. 뱀부 컬렉션은 말 그대로 대나무 형태로, 2차 세계대전 동안 생필품 부족에 대한 대안으로 1940년대 처음 도입됐다. 그 이후 뱀부는 지속적으로 구찌의 가장 독특한 아이콘이 되어왔으며, 1971년에는 실버와 에나멜, 18K 골드 팔찌로까지 확대돼 재생산되었다.

디아망띠시마 컬렉션의 디아망띠시마는 구찌의 오래된 유산과 결합된 고유의 원단 디자인인 디아망테 캔버스로부터 영감을 받은 주얼리 컬렉션이다. 1950년대 이래로 디아망테 캔버스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프리다 지아니니가 구찌의 기록 보관소에서 그것을 재발견하기까지 상대적으로 묻혀 있었으나, 우아하고 오묘한 디자인의 이 상징적인 패턴은 현재 핸드백과 지갑류를 포함한 구찌 제품의 리미티드 에디션에서 재현되고 있다.

팬지(루지)-골든듀
그러나 이 모티프는 구찌 주얼리의 럭셔리한 형태로 재해석되어 18K 옐로우 혹은 화이트 골드의 반지와 팔찌로 심플함과 모던함이 표현됐다. 구찌는 1921년 설립된 이후 의상과 가죽 제품으로 유명해지면서 평면적 디자인과 무늬를 주얼리에 가미해 독특한 아이템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구찌, 불가리, 쇼메 등의'파인(fine) 주얼리'는 다이아몬드나 금과 같은 값비싼 재료와 섬세한 세공으로 패션 액세서리와 재산가치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지닌다.

하지만 코코 샤넬의 등장은 파인 주얼리에서 '커스튬(costume) 주얼리'의 시대를 열었다. 커스튬 주얼리는 인조 보석으로 만든 모조품으로, 주얼리가 갖고 있던 전통성과 희소성에 안녕을 고했다. 커스튬 주얼리의 등장은 1940년대 세계대전과 관련이 있다.

여성들이 전쟁에 나선 남성들을 대신해 돈벌이에 나서면서 패션에 대해 보다 깊은 관심을 드러냈지만, 전시 상황 탓에 여유롭지 못한 경제상황은 커스튬 주얼리에 눈을 돌리게 했다. 저렴한 패션 아이템으로서 손색이 없었던 커스튬 주얼리는 1940년대부터 전통성이 짙었던 파인 주얼리을 제치고 인기 아이템으로 부상했다. 커스튬 주얼리는 6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대중에게 사랑받는 주얼리가 됐고, 파인 주얼리를 선호하던 패션 하우스에서도 커스튬 주얼리의 상품화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주얼리 브랜드 골든듀 담당자는 "현재 여성들이 사회활동이 많아지면서 패션과 분리되지 않고, 패션 트렌드와 밀접한 주얼리들이 많이 사랑받고 있다"며 "2010년의 패션 주얼리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으로 오버사이즈 펜던트, 새로운 금속(핑크빛의 로즈 골드, 브라운 컬러의 초콜릿 골드), 다양한 컬러 보석이 세팅된 칵테일 주얼리, 자연소재 꽃과 곤충을 주제로 한 디자인들이 눈에 띈다"고 전했다.

구찌의 뱀부 컬렉션
이런 경향은 국내 주얼리 시장의 경우에도 적용된다. 커스튬 주얼리 브랜드들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파인 주얼리에서도 다이아몬드만을 고집하지 않고 디자인 및 스톤 크기, 종류의 다양성을 추구하면서 소비자의 기호를 채워주고 있다.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