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ste in the City] (8) 미국 시애틀스타벅스의 고향, 수 많은 부티크 카페 '커피의 성지'로 불려

시애틀에서 며칠을 보내다 보면 아니 반나절만 둘러봐도 유난히 카페가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게 된다.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커피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라도 말이다. 인구 60만 정도의 도시에 카페의 수가 약 1만 개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렇게 양은 물론 질적으로도 커피문화가 발전된 시애틀은 에스프레소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도, 카페 문화의 본고장인 프랑스도 갖지 못한 '커피의 성지'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들의 시각에서 볼 때 인정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커피문화는 시애틀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대 커피 시장의 판도와 커피의 역사가 글로벌한 대형커피 기업들에 의해 새롭게 쓰여지고 있고 그 중심에 서있는 거대공룡 스타벅스가 시애틀에 둥지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애틀에서 태어난 또 다른 커피브랜드 '시애틀스 베스트', '툴리스'까지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시애틀이 커피 애호가들 사이에서 성지로 꼽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대형 메이커들의 고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시애틀에서 태어난 수많은 부티크 카페와 시애틀 사람들의 유난한 커피사랑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아이러니하게도 스타벅스를 키워낸 시애틀에서 이미 스타벅스는 더 이상 맛있는 커피가 아니다. 동네마다 건강하고 맛있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수많은 부티크 카페들이 산재해 있으니 말이다.

시애틀의 스타벅스 1호점
부티크 카페는 우리가 흔히 보는 거대 커피브랜드와 대척점에 서있다. 대형화가 아닌 소형화를 선택한 대신 개성 있고 독특한 자신만의 커피를 만들어내고, 몸집 불리기 대신 맛있는 커피 만드는 데 집중하는 집들이다.

대부분 커피콩을 직접 구매하고 직접 볶는다. 맛뿐만 아니라 건전한 커피소비를 위해 농장 단위로 원두를 구매하고, 커피 무역의 착취 구조를 근절시키기 위해 공정무역 커피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들은 감미로운 최고의 커피를 생산함과 동시에 새로운 문화와 커뮤니티를 생산하고 있는 셈이다. 이 문화가 시작된 곳이 바로 시애틀이다.

시애틀은 미국 내에서도 문맹률이 낮고 젊은 도시 중 하나인데, 마이크로 소프트나, 아마존, 보잉사와 같은 첨단 산업에 종사하는 젊은 인텔리들이 커피문화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여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자연 조건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여름을 제외하고는 안개와 비에 젖어있는 시애틀은 그야말로 커피를 부르는 날씨다. 이 모든 것의 조합이 시애틀을 그저 스타벅스의 도시 정도에서 커피의 성지로까지 끌어올린 가장 큰 힘이 아닐까.

캐피톨 힐(Capitol Hill)에 오르면 수많은 개성 넘치는 독립 까페와 커피를 마시는 시애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시애틀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 중의 하나인 비앤오 에스프레소(B&O Espresso), 각종 공연을 보기 위한 관객이 길거리까지 넘치는 커피 메시아(Coffee Messiah), 지난해 최고의 커피로 선정된 스텀프타운(Stumptown Coffee), 시애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비바체(Vivace) 등이 그곳이다.

비 내리는 밤거리를 거닐다 동네 어귀의 카페에 들려 마시는 감미로운 커피 한 잔 두 잔….그렇게 시애틀 커피 순례를 하다 보면 영화 제목처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이 될 수도 있다. 그 불면의 밤 후엔 커피 향과 오버랩되는 우수에 찬 시애틀의 풍경이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B&O에스프레소의 커피


이유진 푸드칼럼니스트 euzinle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