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년 장수 브랜드 톰보이 부도, 한국 패션사에 남긴 열매

톰보이가 무너졌다. 최종 부도가 나고 며칠 후 경기도에 있는 톰보이 물류 센터에 사채업자들이 몰려 들었고 재고 의류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직원들이 그 앞을 막아 섰다.

곧 다가올 하반기 백화점 MD 개편에서는 더 이상 자리를 지키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33년의 역사가 허무하다. 국내 1세대 패션 브랜드는 이대로 힘없이 사라지게 될까?

톰보이의 추억

"톰보이 하면 최초로 광고에 요트를 등장시킨 패션 브랜드 아닙니까?"

한 패션업계 종사자의 회상이 아니더라도 톰보이의 모든 것이 혁신인 시절이 있었다. 톰보이가 론칭한 1977년은 한창 섬유수출 사업의 부흥기였다.

옷이 패션이 아닌 원단이었던 그때 고 최형로 회장은 전통의 섬유기업 성도를 과감하게 패션기업으로 바꿨다. 2차 산업 속에서 5차 산업의 가능성을 미리 본 리더의 지휘 아래 톰보이는 그 후로도 내내 최초의 기록을 써나갔다. 정장과 정장이 아닌 옷으로 구분되던 시절에 처음으로 캐주얼이라는 용어를 도입했고, 여성복 톰보이가 성공하자 아동복 톰키즈, 남성복 코모도, 액세서리 톰보이위즈 등으로 가지를 뻗어 최초의 브랜드 토털화를 이뤘다.

그 중 톰키즈와 톰보이위즈는 각각 중국과 파리에 진출시켜 글로벌화를 노렸다. 정부가 '글로벌 패션 코리아'를 선포하기 약 10년 전의 일이다. 요즘 유행하는 SPA와 편집숍의 개념도 일찌감치 한 번씩 답습했다. 명동에 '더 톰보이'라는 대형 매장을 꾸미고 거기에 톰보이의 모든 브랜드와 다른 브랜드의 사입 상품을 함께 구성해 유통형 브랜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념에 있어서도 시대를 앞서가기는 마찬가지였다. 90년대 들어 수많은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면서 캐주얼 시장의 격전지가 된 한국에서 톰보이가 내세운 광고 카피는 브랜드의 정신인 혁신을 다시 한 번 공고히 하며 지금도 명 카피 중 하나로 기억된다.

'천만 번을 변해도 나는 나, 이유 같은 건 생각하지 않는다 – 더 톰보이'

소위 나쁜 여자 콘셉트로 지금은 식상해졌지만 당시만 해도 참으로 '싸가지 없는' 발언이었고 그만큼 센세이셔널했다.

그랬던 톰보이는 시스템, A6, EXR, 폴햄 등 기라성 같은 후배들에게 점차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캐주얼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던 시장에 이지 캐주얼, 감성 캐주얼 등의 구분이 생겼고 사람들은 톰보이는 어떤 캐주얼인지 역으로 질문했다. 대한민국의 캐주얼이 곧 톰보이였다는 사실은 잊혀졌다. 브랜드가 견뎌낸 세월이 훈장이 아닌, 죄가 되는 한국에서는 그래도 기록이라고 할 만큼 오래 버텼다.

천만 번을 변해도 나는 나, 더 톰보이

7월 15일 톰보이는 16억 원의 어음 결제를 하지 못하고 끝내 최종 부도처리되었다. 원인 규명을 놓고 여러 가지 설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고 누군가는 반대로 지긋이 정체성을 지키지 않고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어떤 이는 입으로는 민족주의를 외치면서 패션에 있어서만은 사대주의가 여전한 소비자들 때문이라고 말하고, 또 다른 이는 이제 해외 명품 브랜드와 대형 SPA가 몰려오면 토종 브랜드는 하나둘 몰락할 것이며 톰보이가 그 시작이라고 겁을 줬다. 얼마 전 일어난 쌈지 부도 건이 그 예가 되었다. 그러나 사건의 충격이 클수록 지나친 비약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패션 큐레이터 김홍기 씨는 마구잡이식 비교에 거부감을 표했다.

"왜 내셔널 브랜드와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경쟁구도에 놓고 서로 비교하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서로 추구하는 소비자의 프로파일이 완전히 달라요. 당연히 운영 체제도 달라야 합니다. 지금 인터넷 패션 시장의 규모가 백화점을 넘어 섰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백화점에게 왜 인터넷 쇼핑몰들처럼 하지 못하냐고 따질 수 없는 것 아닙니까?"

국내 브랜드가 해외 브랜드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외국 브랜드는 공고한 정체성을 비싼 가격으로 파는 명품과, 정체성 따위는 버리고 가격과 물량 공세로 승부하는 패스트 패션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있다. 이에 반해 국내 브랜드는 가격이 아주 비싸지는 않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감도와 품질을 생각하면 선뜻 지불하기에는 애매하다.

콘셉트도 어느 정도는 구획정리가 되어 있지만 매 시즌 바뀌는 유행에 속절없이 쓸려가는 바람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브랜드 추종, 그것도 서구 브랜드에 대한 추종은 아직도 한국인들의 태도 속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어 밖에서는 싸구려 브랜드가 한국에서 명품으로 대접받는 일은 여전히 되풀이 되고 있다. 패션 블로거 엘리에 따르면 이는 기성 세대뿐 아니라 젊은 이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위를 보면 그다지 매력적인 아이템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외국 브랜드라는 이유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라도 그다지 브랜드로서 가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든 데도 국내 브랜드에 비해 훨씬 더 이미지가 좋죠. 해외에서 온 새로운 브랜드라고 하면 그저 다 같이 몰려가서 열광해야 직성이 풀리는 듯해요."

톰보이는 계속된다

톰보이 몰락에 대한 분명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지금, 이 불행한 사태를 이용해 자기 목소리를 드높이는 것은 사태를 더 악화할 뿐이다. 패션 관계자들의 중론은 경영상의 문제다. 예견된 사태라기보다는 뜻밖의 사고라는 것. 한 매체에 따르면 톰보이의 1/4분기 매출은 366억 원, 영업이익은 21억 원, 당기순이익은 4억 원으로 5월까지 경영목표의 97%를 달성했다고 한다.

실적부진이 아닌 다른 곳에 원인이 있다는 뜻이다. 패션 전문지 패션지오의 최명숙 는 2009년 회사 매각 이후 바뀐 경영진에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2006년 암으로 일찍 사망한 최형로 회장 이후 자금난에 시달리던 톰보이는 회사를 매각했고 새 오너는 금융권 출신이었다.

"패션 관계자가 아닌 사람들이 회사를 인수했고 경영진 간의 분쟁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기업 사냥꾼 냄새도 났지만 그래도 금융권 출신이니 직원들은 자금 유통에 대해서는 노하우가 있을 것으로 믿었죠. 하지만 결국 부도가 났고 경영진은 자취를 감춘 상태입니다. 아마도 상장기업이라는 점을 노려 인수 경쟁에 뛰어든 것 같습니다."

경영진 교체 이후 톰보이의 부채는 어느 정도 해결되는 듯했지만, 부도 후 드러난 경영진의 자금 조달 방법은 사채였다. 재고 의류로 담보를 잡는 바람에 사채업자들은 물류 창고로 몰려 들고 있다. 현재 남은 직원들은 톰보이의 기적적 회생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직원협의체를 구성하고 코모도 사업부장을 직원 대표로 선출했다. 백화점 퇴출이 눈 앞에 다가온 급박한 상황이지만 협력 업체에 도움을 구하며 33년 된 브랜드가 쓰러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컬처마케팅그룹의 김묘환 대표는 안타까운 상황 속에서 톰보이가 한국 패션사에 남긴 업적과 씨앗이 다시 한번 상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톰보이는 80년대 한국 패션의 시작을 열었습니다. 브랜드의 주기를 30년으로 친다면 자연스럽게 수명이 다했다고도 볼 수 있죠. 그러나 톰보이는 톰보이에서 끝나지 않고 그가 스스로 뿌린 열매를 보고 있습니다. 톰보이에서 배출된 인력들이 90년대 한국의 영캐주얼을 일으킨 선봉장들 아닙니까. 이들 때문에 해외 브랜드에 대항해 캐주얼 부문은 비교적 선방할 수 있었습니다. 톰보이의 미래는 알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유전자는 한국 패션사 곳곳에 남아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