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보 시크 hobo chic취향 아닌 기후가 빚어낸 스타일… 한국서는 희귀

계획 없이 아무렇게나 걸쳐 입는 무심함은 자신감이나 타고난 센스, 무수한 옷입기 경험으로부터 나오기도 하지만 패션에 전혀 신경 쓸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이를테면 호보들 같은.

군인, 게이, 창녀, 수도사… 패션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상으로부터 아름다움을 추출한다면 당연히 거지도 예외는 아니다. 부랑자 패션을 의미하는 '호보 시크(hobo chic)'는 서구에서는 그 유래가 제법 오래됐다.

영화 <나홀로 집에>에 등장하는 강도 2인조의 칙칙하고 낡아빠진 착장은 미국 호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털 모자 아래로 삐져 나온 머리카락은 기름에 절다 못해 딱딱히 굳어 가닥가닥 흩어지고, 튼튼한 치노 팬츠까지 뚫어버린 몇 개의 구멍은 고단한 삶의 흔적이다. 오직 추위를 피하기 위해 셔츠 위에 스웨터, 카디건, 야상 점퍼를 꾸역꾸역 껴입은 모습에서는 색 조합에 대한 조심스런 고민도, 주변 시선을 신경 쓸 만한 여유도 찾아볼 수 없다.

생존형 패션, 취향이 아닌 기후가 빚어낸 스타일인 호보 시크는 2010년 F/W 비비안 웨스트우드 컬렉션에서 재현됐다. 천연 기름때 대신 왁스로 까치집 머리를 만든 모델들은 일명 '양복 바지' 위에 등산 양말을 무릎까지 올려 신고 그들의 터전인 담요와 신문지를 액세서리 삼아 손에 들고 무대 위를 걸었다.

데일리코더 안데스
때에 절은 노숙자들의 모습이 하이패션에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디자이너의 반사회적 기질이나 새로움에 대한 집착, 아니면 정말로 너무 멋진 부랑자를 발견해서–무엇보다 그 속에 녹아있는 '계획 되지 않은' 이라는 마인드가 핵심이다.

서구에서 '신경 안 쓴'은 최고의 미덕 중 하나다. 발다사레 카스틸리오네가 16세기에 쓴 <궁정인>에서는 젊은이들에게 바람직한 행동거지로 품위와 함께 가볍고도 초연한 정신적 에스프리를 아우르는 개념인 '스프레차투라(sprezzatura)'를 추천한다. 우아함은 힘들이지 않는 정신의 가벼움으로부터 나온다는 말로, 스프레차투라의 원 뜻은 경멸이다.

무엇을 경멸하는고 하니, 치밀한 준비, 빈틈 없는 계획, 뼈 빠지는 노력을 경멸한다. 어려운 일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할수록 그들은 쿨하다고 여긴다. 웃음보다는 감동에, 천재보다는 개천에서 난 용에 한 표를 주는 한국과는 정말이지 완벽하게 정반대다.

스프레차투라! 네 멋대로 입어라

얼마 전 인터넷에서 중국의 노숙자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30대 남자가 떡진 머리에 셔츠, 스웨터, 재킷, 점퍼를 겹겹이 껴입고 벨트 대신 붉은 끈을 동여맨 채 담배 연기를 풀풀 뱉으며 걷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인터넷에서 유명해진 중국의 노숙자
실험적인 레이어링과 극적인 헤어 스타일, 액세서리로 준 포인트는 확실히 런웨이적 요소였다. 게다가 표정과 걸음걸이는 완벽한 스프레차투라! (이 사건으로 유명해진 그가 패션 모델로 발탁되었다가 무심한 태도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바람에 하차했다는 후문이 있다)

호보 시크는 한국에서는 특히 희귀하다. 낡은 것, 헌 것, 시간의 때를 아름다움으로 여길 수 있는 여유가 아직 우리에게 없어서일까?

"한국 사람들은 옷을 진지하게 입어요."

서울의 스트리트 패션을 찍는 미국의 인류학자 마이클 허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포멀하고 드레시하게 차려 입은 여자들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한국만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예쁜 머리, 예쁜 화장, 샬랄라 원피스에 귀고리, 하이힐, 작은 가방까지.

"서구에서는 재킷처럼 포멀한 옷을 입더라도 아래에는 빈티지 치마를 입든가 해서 위트를 가미해요. 반면 한국인들은 옷을 갖고 장난치는 법이 없죠."

비비안웨스트우드 10 F/W
정신의 무거움이 패션에까지 영향을 미친 한국인들의 옷입기는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 담긴 의미가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한 나머지 스스로에게 옷 입기의 자유를 박탈한 것이라면 차라리 길거리의 노숙자로부터 한 수 배우는 편이 낫다.

온라인 사이트 데일리 코디(http://dailycodi.com)에서는 노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꺼려지는 금기 패션의 수호자를 만날 수 있다. 쌈지의 아트 디렉터로 일했던 운영자 안데스가 추구하는 것은 노점상 패션. 재래시장 한 켠에 붙박인 듯 웅크리고 앉아 물건을 파는 나이 들고 가난한 상인들의 스타일이다.

몸빼 바지와 고무신, 깔깔이, 전대, 선캡으로 무장한 그의 모습은 우리네 부모들이 어릴 적 골목에서 찍은 사진을 보는 것 같다. 명품 옷으로 그런지한 느낌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구제 시장에서 단돈 1000원에 산 옷들이다.

그는 '세계는 부산으로' 같은 한글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티셔츠를 입고 볕에 붉게 그을린 얼굴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힘이 잔뜩 들어간 한국 패션신을 테러한다. 그가 입은 옷에는 시기적인 적절함도, 디자이너의 의도도, 민족성도, 경제적 가치도 없다. 오직 입는 이의 대범하고 화려 뻑적지근한 취향뿐이다.

"황학동 구제 시장에 가면 옷을 무게 단위로 달아서 팔아요. 바닥에 늘어 놓은 건 다 1000원이구요. 파는 사람들이 옷의 가치를 몰라요. 바로 그 점이 좋아요. 조금만 유명한 시장에 가도 이건 폴로 빈티지라 비싸게 받아야 한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데 저한테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요."

데일리 코디에서는 '신경 쓰지 않은 패션'이 발휘하는 의외의 치료 효과를 목격할 수 있다. 운영자는 자기가 입은 옷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한 켠에 작은 게시판을 하나 만들어 놓았는데 거기에 올라오는 글들은 상담 게시판을 방불케 한다. "오늘 너무 화나요"부터 시작해서 "죽도록 외로우면 어떻게 해요?" 까지. 사회적 상징이 완벽히 제거된 취향의 놀이터에서 사람들은 비로소 힘을 빼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떠든다.

"한국 사람들이 너저분한 것, 빈티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비단 패션에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 방 좀 치우라는 이야기 많이들 듣죠. 반대로 옷을 늘어놔도 아무 소리 하지 않는 부모님이 있었다면 그 사람의 패션은 어땠을까 생각해요"

그에 따르면 '깔끔'과 '블랙&화이트'로 대변되는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뿌리는 부모들의 "방 좀 치워라"는 소리가 아니었을까?

참고서적: <트릭스터>, 최정은 저, 휴머니스트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