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의 주방] (11) 이란석류 카레와 홀리 브래드… 중동 음식 아우르는 '페르시안 궁전'

페르시아라는 고색창연한 이름이 비교적 최근인 1935년, 그러니까 일제 강점기에도 존재했다는 것은 참 새삼스러운 사실이다.

우리에게는 까마득한 고대의 일로 느껴지지만 이란인들은 아직도 이집트에서부터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인도까지 아울렀던 당시의 영광을 잊지 못하는 듯하다.

대학로 근처에 있는 페르시안 궁전에서는 하늘을 찌를 듯했던 페르시안 제국의 흔적을 음식으로나마 추억할 수 있다. 이란 사람인 샤플씨는 2002년 페르시안 궁전의 문을 열었는데 가게 상호에서부터 메뉴 설명에까지 이란이 아닌 페르시안을 연신 강조한다.

이란 음식뿐 아니라 인도 음식인 카레, 아랍 음식인 베리야니(볶음밥), 터키 음식인 케밥을 모두 취급하기 때문이다.

"이란은 워낙 나라가 넓어서 남쪽과 북쪽 음식의 특색이 완전히 달라요. 북쪽에서는 카레를 주식처럼 먹지만 남쪽에서는 카레가 뭔지도 모르죠. 아마 전체 국민의 3분의 1 정도만 카레를 알 거에요."

바하루 차
24가지 향신료가 전부 들어가야 진짜 카레

페르시안 궁전에서 사용하는 재료는 양파와 감자를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이 샤플씨가 이란에서 직접 공수해오는 것들이다. 그 중에서도 중동 음식의 혼이라고 할 수 있는 향신료는 24가지를 구비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강황부터,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코리앤더, 거의 모든 한국인이 질색하는 지라 등 그 종류가 다양하다.

식당이 있기는 하지만 소수이고, 그나마도 가정에서 만드는 음식에 비할 바가 못 되는 이란에서는 집집마다 한국의 집된장처럼 고유의 향신료를 가지고 있는데, 페르시안 궁전 역시 24가지 향신료를 교묘히 배합해서 그들만의 가정식 카레를 선보이고 있다. 그 중 특히 유명한 것은 매운 카레다.

"이란 사람들도 매운 맛을 즐깁니다. 이열치열이 한국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인도 카레와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석류가 들어간다는 건데 석류를 넣으면 새콤달콤하면서 고소한 맛이 나요. 카레뿐 아니라 이란 음식의 절반에는 다 이 석류가 들어 간다고 보면 됩니다. 한국의 고추장이나 다름없죠."

주인은 2단계부터 10단계로 맵기를 나눠 놓고 손님들의 도전 의식을 부추기는데 5단계부터는 주인을 포함한 모든 직원이 말릴 정도로 지독하게 맵다. 가장 맛있게 매운 카레를 즐길 수 있는 단계는 2.7부터 3.0까지다.

위:타딕, 아래:페르시안 볶음밥
처음부터 외국인들이 아닌 내국인에게 이란 음식을 알리고자 하는 생각으로 음식점을 시작한 샤플 씨는 한국인들이 이란 음식에 적응하지 못할 경우 맛을 바꾸기보다 메뉴에서 빼는 쪽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개업 때의 메뉴와 약간 차이가 생기기도 했다. 현재 이란 식당인 페르시안 궁전의 주 메뉴가 카레와 케밥인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처음에는 이란 정통 음식 중 하나인 고르메 싸브지도 만들었다. 녹색 야채를 잘게 썰어 고기와 함께 삶아서 덮밥처럼 밥 위에 얹어 먹는 고르메 싸브지는 이란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음식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김치찌개와 비슷하다. 그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소울 푸드이지만 안타깝게도 내국인 손님들로부터 한약 맛이 난다는 평을 들으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 고유의 음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풀로 머르그는 닭 요리의 일종인데 대부분의 이란인들이 좋아하는 국민 음식이다.

"양고기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란에서는 양보다 닭을 더 많이 먹어요. 육류 소비의 60% 정도가 닭이죠. 이란 닭은 기본이 3~5kg으로 엄청나게 크기는 한데 맛이 약간 떨어져요. 한국 닭은 크기는 작지만 맛이 좋죠. 저희는 제일 맛있는 800g짜리 닭으로 풀로 머르그를 만듭니다."

조리법 역시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른다. 4가지 향신료와 양파를 넣은 물에 20분간 닭을 삶은 뒤 건져서 다시 10분 간 살짝 튀기는 것. 이렇게 하면 너무 오래 튀겨서 겉껍질이 딱딱해지는 것을 막고 겉은 바삭하게, 속살에는 양념이 은은하게 배이게 된다. 튀긴 닭은 피클, 토마토, 양파 등과 함께 낸다.

세트를 시키면 라이스 케이크와 난이 함께 나오는데 '타딕'으로도 불리는 라이스 케이크는 페르시안 쌀에 올리브 오일과 버터, 향신료를 넣고 누룽지처럼 바싹하게 구워낸 것이다. 한국의 누룽지와 비슷해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이란에서는 귀한 손님이 올 때만 내놓는 고급 요리다.

난은 우리가 흔히 아는 인도의 난과 약간 다르다. 인도의 난이 이스트, 설탕, 버터 등을 넣어 화덕에 구워 낸다면 이란은 이스트 없이 물과 소금만을 넣어 3일에서 7일 간 자연 숙성 시켜 만드는 것. 성경에 나오는 홀리 브래드(holly bread) 즉 예수의 살이 바로 이 이란식 난으로, 인도의 것보다 조금 더 두껍고 바삭한 맛이 적다.

아직도 이란의 모든 가정에서는 난이 바닥에 떨어지면 흙을 털어 입 맞추고 이마에 댄 후 깨끗한 곳에 두는 풍습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먹고 남은 난은 절대로 버리지 않고 동물에게 주거나 산에 버린다.

오리지널 난, 홀리 브래드

페르시안 궁전을 찾는 손님의 대부분은 한국인이지만 간혹 고향의 맛을 느끼기 위해 먼 길을 돌아오는 이란인들도 있다. 그들이 가게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찾는 것은 다름 아닌 다.

바하루나렌지라는 약초와 헬리치, 홍차를 섞어서 우려내는데 더위에 지친 이란인들의 피로와 부기력증, 우울증을 덜어주는데 특효다. 바하루나렌지는 꽃송이처럼 피어나는 젊음을 상징하는 식물로, 그들은 하루에 3~4잔씩 를 마시며 축 처진 기분을 상승시킨다.

매일 마시는 차 외에도 달콤한 요구르트인 마스트와 짠 요구르트인 두그도 있다. 마스트는 인도의 라씨와 비슷한데 매운 카레로 얼얼해진 입 안을 달래기에 알맞고, 두그는 케밥과 함께 먹으면 잘 어울린다. 마스트에 물, 소금 등을 넣어 희석시킨 두그는 매일 점심 때 마시는데, 그 안에는 숙면을 유도하는 성분이 들어 있어 땀을 흠뻑 흘린 이란인들은 짭짜름한 두그를 마시고 낮잠을 자는 것이 중요한 일상 중 하나다.

페르시안 궁전의 또 다른 즐거움은 어설프게 재현한 이국의 인테리어 대신 오리지널 페르시안 스타일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인테리어가 취미인 주인은 지하에 작업실을 마련해 놓고 문살부터 창틀까지 모두 직접 만들었다. 1층이 화려하고 전형적인 이란식 인테리어라면, 2층에는 꽤 고급스럽고 심플한 룸이 마련돼 있다. 매일 정오에 문을 열어 밤 10시에 닫는다. 연중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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