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닝한 피부에 짙은 눈화장, 형형색색 부푼 헤어스타일 시선집중

4집 앨범 낸 이효리. (사진제공=엠넷미디어)
만화나 게임의 주인공을 모방하는 마니아적 시선의 '코스프레'가 아니다. 단지 화려함이 좋아 저절로 생겨난 문화, '갸루(ギャル)'.

갸루는 영어 '걸(Girl)'을 일본어로 발음한 것으로, 소녀 특히 젊고 활발한 여자아이를 뜻한다. 최근 이 갸루족에 흠뻑 빠진 젊은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개성을 중시하는 풍조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어색한 게 우리네 반응이다.

갸루 문화를 아시나요?

'더 과장되게 꾸며라. 그러면 더 예뻐지리니.'

태닝한 까무잡잡한 피부에 짙은 눈 화장. 형형색색의 과장되게 부푼 헤어스타일. 일본 '갸루족'의 모습이다. 일본에서는 갸루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여고생부터 20~30대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분류돼 자리 잡고 있다.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한 한국인 '갸루족'
갸루 스타일은 1990년대 일본의 인기가수 아무로 나미에에 의해 전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게 태닝한 피부에 갈색 빛 헤어스타일, 눈매를 강조한 메이크업이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하면서 일본의 문화 자체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일본 여성들은 그의 스타일을 따라하며 과장된 아름다움을 추구했다. 미니스커트와 10cm 이상의 높은 굽이 유행하면서 독특한 스타일의 갸루 패션이 완성됐다.

갸루 스타일은 최근까지 변화를 거듭하면서 그 종류도 다양해졌다. 고갸루, 야맘마, 오갸루, 비갸루, 히메갸루, 오네갸루, 펑크갸루 등은 일본 내 유행 트렌드를 이끌며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고갸루는 고등학생과 갸루의 합성어로, 태닝한 피부에 입술과 눈의 주변을 하얗게 더 강조해 그리는 스타일이다.

교복차림의 여고생들이 대부분이며 염색한 헤어스타일로 멋을 내기도 한다. 히메갸루는 공주라는 뜻의 '히메'와 갸루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고 속눈썹으로 눈을 크게 강조한 게 특징이다. 비갸루는 비보이와 갸루를 합친 말로, 힙합 여가수들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야맘바는 갸루 스타일 중 가장 과장된 하드코어 스타일. 얼굴을 검게 칠하고 눈을 강조한 메이크업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20대 젊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갸루 스타일은 오네갸루. 오네갸루는 위에 언급한 스타일 중 가장 성숙하면서 섹시함을 드러내는 스타일이다. 오네갸루는 국내에서도 '갸루족'을 낳으며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갸루라는 말은 일본에서도 과장된 화장법을 추구하는 젊은 여성들을 비하하는 단어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개성을 중시하는 일본문화의 아이콘으로 손꼽히며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제 갸루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시간이나 비용을 아끼지 않는 여성들을 통틀어 지칭하기도 한다. 특히 일본에선 '갸루산업' 분야로까지 확대되면서 최근까지 300억 엔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 중이다.

보아 트위터 사진
<2010 트렌드 키워드>(김민주 미래의 창)는 갸루산업을 "경영난에 시달리던 도쿄의 시부야109 백화점을 살려냈다"라고 표현했다. 시부야109는 원래 의류, 가구 등을 판매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갸루 전문 쇼핑몰로 바뀌면서 매출이 줄곧 상승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8년 매출액만 약 286억 엔을 기록해 13년 전 141억 엔보다 두 배 이상 늘었다. 갸루족의 증가가 갸루산업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현재까지도 일본에선 요지부동한 비즈니스 분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형' 갸루 스타일은?

"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갸루족은 화장만으로 예뻐질 수 있다. 갸루는 나를 돋보이게 한다."

국내 갸루 스타일의 동호회 '프린세스 갸루'의 회장 김초롱(21)씨는 얼마 전 케이블 채널 tvN <화성인 바이러스>에 출연했다. 그녀는 속눈썹 4개를 붙여 과장될대로 과장된 눈과 노란색 가발을 쓰고 나타나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녀는 당당했다.

"성형수술 대신 갸루 화장술로 만족감을 느낀다"고 당차게 말한 것. 히메갸루 족의 공주풍 드레스와 액세서리로 치장한 김 씨는 방송 내내 갸루 스타일을 극찬했다. 그녀의 갸루 동호회(인터넷) 회원은 3만여 명. 김 씨는 "성형보다 갸루 스타일이 낫다"를 외치며 성형열풍에 휩싸인 국내 젊은 여성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외모지상주의에 빠진 현재 우리의 모습에 반기를 드는 듯한 행위로까지 보인다.

물론 갸루 문화를 두고 왜색문화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생각 없이 일본의 문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과 개성을 표현한다는 데 더 큰 의미를 두기도 한다. 김 씨도 동호회를 통해 일본 속 갸루가 아닌 한국의 갸루 문화를 전파하고자 한다. 일본 문화에 시초를 두고 있지만 우리만의 갸루 스타일을 만들어 가자는 것이 그의 목표다.

국내 스타들도 예외가 아니다. 가수 보아와 이효리 등이 태닝한 피부에 눈매를 강조한 메이크업으로 예뻐지자, 갸루 메이크업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일본에서 갸루 스타일이 여러 형태로 유행할 때, 누드 메이크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누드 메이크업은 티끌 하나 없이 완벽하게 표현된 피부톤이 특징이다.

투명한 피부톤을 강조하면서 색조 메이크업을 최대한 자제하는 스타일이다. 2000년대 후반에는 스모키 메이크업이 유행하면서 아이라이너로 양쪽 눈 꼬리를 올려주는 과감한 시도가 트렌드였다. 최근에는 속눈썹을 더욱 풍성하게 한 한국형 갸루 메이크업이 가세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채나 씨는 "한국 스타일의 갸루 메이크업은 검게 그을린 피부톤보다는 강렬하게 눈매를 강조하는 스타일이다. 눈매가 시원하게 커지면 여성스러운 이미지도 상승해 섹시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며 "펜슬타입의 아이라인과 인조 속눈썹으로 개성을 살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은영 기자 kiss@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