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인의 독립디자이너 설렉숍 '랩5' 오픈… 따로 또 같이 운영

100인의 lab5 독립 디자이너들
디자이너들이 뿔(?)났다. 백화점도 여의치 않고, 쇼핑몰이나 쇼핑센터도 마땅치 않은데…, 그렇다고 자체 숍을 열기에는 부담스러운 터.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냈다. 모두 100명, 아니 정확히 105명의 디자이너들이 뭉쳤다.

광복 65주년을 맞은 8월 15일 서울 명동 입구에 자리한 쇼핑센터 '눈스퀘어'. 100여명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5층 레벨5 매장에 일제히 몰려들었다. 일요일의 늦은 아침 이들이 시간을 함께 한 이유는 '대한민국 패션의 독립선언'을 위해서다. 국내 최대 독립 디자이너 셀렉숍 '랩5(Lab5)'의 확대 오픈을 기념하는 자리다.

보통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디자이너들이 걸어가는 길. 유명 브랜드의 패션 회사에 들어가거나 아님 자신만의 독립 브랜드를 갖고서 디자인을 계속한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만으로 일어서고 자리를 잡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 거대 자본과 유통구조에 막혀 있는 개별 디자이너들의 힘든 현실이기도 하다.

이들이 패션과 유통의 메카인 명동에 모인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대형 브랜드 및 국내 패션 브랜드들의 각축장인 명동에서 그간 흩어져 있던 독립 디자이너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들만의 목소리를 내보겠다는 것. 대한민국 패션독립을 선언한다는 의미에서 8월 15일 광복절에 맞춰 랩5도 문을 열었다.

명실공히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 디자이너 편집 숍의 면모를 갖추며 디자이너들이 한 자리에 모인 '랩5' 의 비즈니스 모델은 새롭고 독특하다. '랩5'라는 공통된 하나의 브랜드를 기치로 내걸지만 100여명의 디자이너들은 각자 자신만의 이름과 브랜드를 그대로 사용한다. 매장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의 안쪽 라벨마다 각기 다른 이름이 쓰여져 있고, 행거 위에 꼽혀 있는 브랜드 푯말만으로 디자이너와 브랜드를 구별해 준다.

디자이너 개별 부스로 입점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수많은 상표와 이름들 속에 신생 브랜드가 쉽게 묻혀 버리는 염려를 덜기 위한 배려에서다. 디자이너와 셀렉션숍의 관계가 단순한 임대인, 임차인이라기보다는 함께 나가는 파트너라는 메시지이다.

그렇다고 이들 디자이너가 이 매장에 입점해 있다거나 일반적인 납품 형태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백화점처럼 매출에 따른 수수료 형식의 매장이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파트너십. 아직 규모가 작은 신진 디자이너이더라도 마음껏 자유로이 패션의 날개를 펼쳐 보일 기회를 제공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물론 수수료도 30% 이상을 넘나드는 백화점 보다 합리적이다.

취지가 좋고 조건이 좋아서인지 디자이너들의 호응도 무척 좋았다. 디자이너들이 서로 앞다퉈 랩5에 참여하겠다고 먼저 나섰을 정도였다고 한다. 출범 안이 처음 기획되고 나서 100여명의 디자이너팀이 꾸려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2달.

"랩5가 런칭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어떻게 100명의 디자이너들을 모을 수 있느냐는 질문이 첫 번째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었습니다. 디자이너들이 원래 한 자리에 쉽게 모이지도 않거니와 그들을 어떻게 설득했냐는 궁금증 때문이죠." 랩5의 디자이너 선정과 설득에 실무작업을 이끌었던 박영준 디렉터는 "기획 의도를 전해들은 디자이너들이 너도 나도 공감을 표시하며 협조해 줘 예상보다 훨씬 빠른 시간 안에 일을 마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디자이너들의 패션 독립에 동참한 디자이너들의 면면도 뛰어나다. 패션업계에서 주목받는 독립 디자이너들을 비롯, 성장 가능성 높고 창의성 뛰어난 신진 디자이너들도 이번 랩 5 확대 오픈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8.15 행사 & lab 5 매장
서울패션위크의 서울 컬렉션 및 제네레이션 넥스트에서 주목받던 디자이너, 송혜명, 예란지, 주효순, 지일근 등과 국제 유수의 콩쿠르인 '디나르(Dinard)' 그랑프리 수상자 이재환, '프랑스 이에르(Festival d'hyeres) 입상자 유환선, 이명제, 이탈리아 피티워모 참가자 신재희, 대한민국 패션대상 대통령상 수상자 안태옥,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참가자 정재웅, 최형욱, 김홍범 등이 주목받는 디자이너들.

보통 국내에서 나름 높은 인지도와 시장성을 갖고 활발히 활동중인 독립디자이너를 꼽으라면 50여개 정도라는 것이 시장에서의 일반적인 평가이다. 레벨5 이재훈 팀장은 "처음 디자이너 섭외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염려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밀려드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선별하고 추리는 과정이 더 힘들었다"고 토로한다. 참가 디자이너들 중에는 당초 하던 사업을 접고 포기하려던 이도 있었지만 랩5의 출범 소식을 전해 듣고는 다시금 용기를 얻고 새 출발하는 이들도 끼어 있다고.

100인의 독립 디자이너들 평균 연령대는 20~30대가 대부분, 그 중에서도 20대 후반대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연령대 만으로는 20대부터 골고루 분포돼 있지만 이채로운 것은 60대와 70대의 독립 디자이너도 함께 한다는 점이다. 효방 브랜드의 김석분 디자이너는 70대로 최고령 디자이너로 기꺼이 대열에 참여했다.

특히 랩5의 출범은 한국 독립 디자이너들의 세계화 진출 시도와도 맞닿아 있어 더욱 패션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상 랩5가 새롭게 떠오르는 국내 신진 디자이너들의 역량을 한 곳에 모아 국내 및 해외의 성공적인 진출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인큐베이팅' 공간이란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다. 때문에 글로벌 진출을 염두에 두고 인테리어 디스플레이도 세계적인 디자인 전문 회사 '에프알시에이치(FRCH Design Worldwide)'에 매장의 전체 컨셉과 인테리어를 총괄 의뢰했다.

당장 랩5는 같은 빌딩에 자리한 자라 (ZARA), 망고 (MANGO), 에이치앤엠 (H&M)등 글로벌 패션 브랜드와 경쟁을 벌이게 된다. 국내 독립 디자이너들의 브랜드가 향후 개별 브랜드로서 확대 발전해 나갈 수 있는지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성적표도 금방 드러난다. 여기서 성공한다면 나아가 디자이너 개개인의 글로벌 진출 토대가 마련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레벨5의 강력한 의지이다.

레벨5의 독립 패션디자이너들이 선보이는 품목은 패션의 모든 것을 아우른다. 남녀 의류에서부터 제화, 액세서리 등 패션에 관계된 것은 하나도 빠짐없다. 평균 가격대는 중저가 대에서 중상 이상 수준.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주로 한 디자이너들의 성격에 맞춘 것이다.

이번에 오픈한 랩5는 국내 최대 규모의 독립디자이너 셀렉숍이란 타이틀이 주어졌다. 그리고 10월에는 싱가포르에 첫 해외매장을 열 준비도 한창 진행 중이다. 이 역시 국내 독립디자이너들이 해외로 독립 브랜드 셀렉션숍 형태로 단일 진출하는 첫 케이스가 될 전망이다.



박원식기자 park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