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가 제안하는 4가지 커피 페어링

'훌륭한 식사 후에 나오는 자판기 커피, 최고의 커피에 매치된 인스턴트 샌드위치'

만족스러운 커피와 만족스러운 식사를 한 자리에서 하기는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둘 다 맛있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자연식 레스토랑 '소 트루(so true)'를 운영하는 최지영 셰프의 고민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소문난 맛집을 섭렵하고 다니던 시절 항상 아쉬운 건 커피였어요. 정성스러운 음식에 만족하기도 전에 밍밍한 커피 맛에 실망하고, 반대로 잘 내린 커피를 파는 곳에서는 음식에 공을 들이지 않고.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지 않고 한 곳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을까 생각했죠."

와인 열풍이 몰고 온 마리아주(음식과 와인의 궁합)라는 개념은 이제 맥주, 사케 등 주류를 넘어 커피에도 적용되고 있다. 술과 달리 커피는 식사가 끝난 후에 마시는 후식 개념이지만, 엄연히 입 안에 잔류하고 있는 식사의 여운은 '아무 커피나!'를 외칠 수 없게 만든다.

아무 커피나 주세요?

음식과 커피 궁합의 기본은 같은 맛끼리 매치하는 것이다.

"서로 전혀 다른 맛을 매치해 파격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무난한 조합은 비슷한 맛을 가진 음식과 커피를 매치하는 거에요. 고소한 음식은 고소한 커피와, 상큼한 음식은 상큼한 커피와."

커피에 무슨 그렇게 다양한 맛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커피 마니아들의 탄식을 자아내는 것이다. 커피의 재료가 되는 생두는 와인의 원료인 포도와 마찬가지로 자라난 토양과 기후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아열대 기후, 고산지대, 화산 지형 등 전 세계 각종 기후와 지형, 토양이 다양한 맛의 커피 열매를 생산해내고 있다.

커피에 대한 평가 역시 와인과 마찬가지로 까다롭다. 향기(aroma), 향미(flavor), 산미(acidity), 농도(body), 여운(after taste) 등의 5가지 요소를 골고루 평가하며 이들이 전체적으로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커피의 레벨이 결정된다.

"커피를 고르는 기준에는 입 안에 남아 있는 음식의 여운뿐 아니라 그날의 기분이나 날씨도 포함돼요. 레몬처럼 상쾌한 향이 나는 예가체프 커피는 축 쳐진 기분을 업 시켜주고, 꾸물꾸물한 날씨에 묵직한 탄자니아 커피를 마시면 더욱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죠."

1.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혀가 뇌를 정의하는 경우도 있지만 뇌가 혀를 정의하는 사례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 어떤 조건을 타고 생산된 커피인지 알아두는 것은 둔감하게 뭉쳐 있는 개인의 취향을 세심하게 쪼개준다. 안티구아 커피의 스모크 향이 과테말라의 화산 지대로부터 비롯됐다는 것을 안 순간 희미하게 존재하던 훈연 향이 잡힐 듯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이 때문이다.

최지영 셰프가 음식의 여운을 늘려주고 취향을 일깨우는 세심한 커피 페어링 4가지를 제안했다.

에는?
복분자 드레싱을 곁들인 가든 샐러드 + 유자청 포카치아

샐러드에 빵을 곁들인 가벼운 식사 후라면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커피가 훌륭한 마무리를 도와줄 것이다. 커피계의 귀부인으로 불리는 예가체프는 커피 특유의 쓴 맛이 적고 레몬과 시트러스 계열의 산뜻한 맛, 그리고 꽃 향기를 연상케하는 기분 좋은 풍미가 있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약간의 신맛과 구수함, 그리고 부드럽고 적당한 바디감과 혀끝을 맴도는 잔향 때문에 커피 초보자들이 가장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커피이기도 하다.

여기에 어울리는 음식은 신선한 가든 샐러드와 새콤한 유자를 넣은 포카치아 빵. 복분자를 갈아 만든 드레싱이 신선한 제철 채소로 이루어진 가든 샐러드에 상쾌한 맛을 더한다. 포카치아는 밀가루 반죽에 올리브유, 허브 등을 넣어 구운 폭신폭신한 빵으로, 셰프는 여기에 유자청을 넣어 특별한 향미를 부여했다. 예가체프 특유의 감귤향과 은은하게 퍼지는 유자향이 식사 시간 내내 상큼한 기분을 돋운다.

2. 콜롬비아 수프레모
에는?
100% 채소로만 이루어진 채소밭 피자

중남미의 대표적인 커피인 콜롬비아 수프레모는 엄격한 품질관리로 유명한 콜롬비아 커피 중에서도 최고로 비옥한 지역에서 생산된다. 흔히 마일드 커피의 대명사로 불리는데, 커피의 기본적인 쓴맛, 신맛, 고소한 맛, 단맛 등이 어느 하나 튀는 것 없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어 가장 무난하고 맛있는 커피로 꼽힌다.

양념이 강하게 들어간 음식은 콜롬비아 수프레모의 점잖은 신맛과 부드러움을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좋은 궁합이 아니다. 따라서 될 수 있으면 담백하고 단순한 맛을 가진 음식과 매치하는 것이 좋다. 채소밭 피자는 얇고 바삭한 도우에 향긋한 바질 페스토 소스를 바른 뒤 단호박, 감자, 마늘쫑, 가지, 양파, 버섯 등의 채소와 고소한 견과류를 듬뿍 올린 100% 채소 피자다.

치즈 등 유제품도 일절 쓰지 않았기 때문에 비건(vegan)들도 먹을 수 있는 국내 몇 안 되는 메뉴 중 하나. 마와 찹쌀을 함께 갈아 치즈의 쫀득한 식감을 보완했다. 풀로만 이루어진 피자라 풍성한 기름기가 아쉬울 것 같지만 제철을 만난 채소들이 뿜어내는 진한 맛이 입 안을 가득 채워 부족함을 느낄 새가 없다.

에는?
오리엔탈 소스의 햄버거 스테이크와 감자전

3.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만델링
양념이 강한 음식을 선호한다면? 답은 수마트라 만델링이다. 인도네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수마트라에는 고도 3000m가 넘는 화산들이 집중돼 있는데 여기에서 대부분의 커피가 재배되고 있다. 수마트라 커피 중에서도 만델링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데 입 안을 꽉 채우는 듯한 무게감과 쓰디쓴 고소함, 거친 흙 내음 등으로 아라비카 종 중 가장 강렬한 커피로 불린다. 고온 다습하고 강수량이 많은 수마트라 섬의 특별한 기후와 토양은 만델링에 고소한 비스킷 향과 초콜릿 향을 부여했다.

셰프는 배, 사과, 양파를 갈아 넣은 부드러운 쇠고기 햄버거 스테이크를 추천한다. 소스에는 구운 버섯과 마늘, 감자 등 각종 채소에 청양 고추를 다져 넣어 매콤한 맛을 냈다. 여기에 계란 프라이를 얹은 감자전까지. 풍성한 식사를 마치고 나서 즐기는 수마트라 만델링의 묵직한 맛과 초콜릿 향은 별도의 디저트도 필요 없게 만든다.

에는?
모듬 채소와 고소한 들깨 덮밥

한국인들이 자주 이야기하는 감칠맛을 커피에서도 느끼고 싶다면 코스타리카 따라주가 제격이다. 카리브 해 서쪽에 위치한 코스타리카는 활화산이 도처에 널려 있는 열대우림 지역으로 최고의 커피를 생산할 수 있는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따라주 지방에서 나는 라미티니 따라주 커피는 상쾌한 신 맛과 입안 가득 퍼지는 구수함이 특징으로, 혹자는 깨소금으로 참기름을 짤 때 퍼지는 고소한 내음을 따라주의 향기에 비유하기도 한다.

깨소금 같이 고소한 커피에는 들깨를 넣은 음식을 매치해보자. 밤과 대추를 넣고 찰지게 지은 현미밥과 단호박, 감자, 마늘쫑 등 각종 채소에 멸치 우린 육수와 들깨로 고소하게 맛을 낸 들깨 덮밥. 들깨 고유의 맛과 향이 풍부한 고소함과 감칠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커피 애호가들이 자기의 영혼을 묻어 달라고 할 정도로 사랑 받는 코스타리카의 따라주 커피는 식사 후 입안에 남는 고소함을 연장시켜주는 훌륭한 파트너다.

4. 코스타리카 따라주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