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여행] 무섬 마을

무섬 마을의 돌담길
낙동강의 지류 가운데 가장 길고 큰 하천인 내성천(乃城川)이 동쪽 일부를 제외한 삼면을 오메가(Ω) 형상으로 휘돌아 흐른다. 하천 안쪽으로 펼쳐진 산자락 아래로는 고택들이 똬리를 튼 듯 모여 있다. 그 모습이 흡사 물 위에 떠 있는 섬 같다고 해서 무섬 마을이라고 일컬었다. 한자 지명으로는 수도리(水島里)라고 부른다.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연꽃이 물에 떠 있는 듯한 형상을 이루고 있어 연화부수(蓮花浮水) 또는 매화나무 가지에 꽃이 피는 형상이어서 매화낙지(梅花落地)라고 불리는데 이러한 형국은 길지(吉地) 중의 길지로 꼽힌다.

무섬은 마을을 휘감아 도는 물길 탓에 외지와 단절되어 왔다. 육지라고 하지만 마을 앞으로는 물이 흐르고 뒤로는 산이 둘러싼 배산임수의 지형이다. 논이나 밭을 일굴 공간도 부족하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내성천 건너 30리 바깥으로 나가 농사를 지었다.

무섬 마을로 드나드는 유일한 통로는 외나무다리였다. 농사를 지으러 오가기도 하고, 장보러 나가기도 했으며, 가마 타고 시집 오거나 상여가 나갈 때도 요긴하게 쓰였다. 구조는 간단했다. 통나무를 절반으로 쪼개어 의자처럼 다리를 붙이고 물에 박아 넣으면 그만이었다. 흔들거리는데다 너비가 한 자도 채 되지 않아 익숙하지 않으면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1979년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 다리인 수도교가 놓이면서 외나무다리는 사라졌다. 그러다가 2005년 마을의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외나무다리가 다시 돌아왔다.

무섬 마을 입구 내성천의 외나무다리. 물이 흐르는 부분이 휩쓸려 내려갔다.
이 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것이 바로 이 외나무다리다. 지금 현재 물길 위에 놓였던 외나무다리는 여름에 비가 많이 내려 휩쓸려 내려갔고 모래밭 위의 부분만 남아 있다. 그런 까닭에 물에 빠질 염려는 없으니 안심하고 건너도 된다. 해변의 백사장만큼 고운 모래밭이니 실수로 떨어진들 다칠 우려도 전혀 없다. 이 외나무다리는 오는 10월 무렵 다시 놓을 예정이라고 한다.

반남박씨와 선성김씨의 집성촌으로 남아

이 마을에 사람이 정착해 살기 시작한 것은 1666년이다. 반남박씨(潘南朴氏) 입향조인 박 수 선생이 처음으로 들어와 자리잡은 뒤, 그의 증손녀 사위인 선성김씨(宣城金氏) 김 대가 영조 때 다시 무섬 마을로 들어왔다. 그때부터 반남박씨와 선성김씨가 함께 살면서 오늘날까지 두 집안의 집성촌으로 남아 있다.

무섬 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학구열이 대단했다. 90세가 넘은 노인들 중에서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있을 정도다. 관직보다는 학계에 진출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특징이다. 50여 가구에 1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만 현직 대학교수가 16명이나 된다고 한다. 시인 조지훈의 처가도 이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마을의 집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고, 16동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형적인 사대부 고택이다. 유명한 안동 하회마을과 지형적으로 비슷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지만 바깥세상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아 옛 선비 고을의 정취를 한가롭게 음미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무섬마을 민속자료 제92호로 지정된 해우당 고택
이 마을의 50여 채 가옥 중에 12채는 빈집이다. 빈집의 주인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고 있으며 방학이나 휴가 때 가끔 내려와 머물다 간다. 그러나 한 집도 외지인에게는 팔지 않았다고 한다. 반남박씨와 선성김씨 가문에서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것이다.

아홉 고택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이 마을의 고택 중에 9점은 경상북도 민속자료와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수도교를 건너 가장 먼저 보이는 왼쪽의 고택은 해우당(海愚堂)이다. 1990년 8월 7일 민속자료 제92호 로 지정된 이 건물은 김영각이 1836년에 세웠고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1879년에 중수하면서 그의 아호를 땄다. 정면 5칸, 측면 6칸의 □자형 가옥으로 다.

1990년 8월 7일 민속자료 제93호로 지정된 만죽재고택은 박 수 선생이 이 마을로 들어온 1666년에 세운 가옥이다. 안마당을 중심으로 ㄷ자형 안채와 一 자형 사랑채가 口자형을 이루고 있다. 안채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5칸이며 평면구성은 대청 3칸을 중심으로 왼쪽에 상방 1칸, 고방 반 칸, 문간 반 칸이 이어져 있다.

이밖에도 무섬 마을에는 김덕진 가옥(민속자료 제117호), 김뢰진 가옥(민속자료 제118호), 김위진 가옥(문화재자료 제360호), 김규진 가옥(문화재자료 제361호), 김정규 가옥(문화재자료 제362호), 박덕우 가옥(문화재자료 제363호), 박천립 가옥(문화재자료 제364호)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1999년 8월 9일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해우당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
무섬 마을은 어찌 보면 심심한 곳이다. 주민들은 마을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음식점은 물론 구멍가게조차 세우지 않았다. 변변한 놀거리도 없다. 하지만 호젓하게 고풍스러운 마을을 돌아보며 우리의 옛 전통과 문화를 음미할 수 있으니 한번쯤 찾아볼 만한 곳이다.

찾아가는 길

영주 나들목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난 다음 문수면을 거친다. '수도리 전통마을' 안내판을 따라가면 된다. 대중교통은 영주 시내버스터미널(영주여객)에서 하루 4회 운행하는 무섬 마을행 버스를 이용한다. 문의는 054-633-0011~0013.

맛있는 집

영주시 하망동에 있는 풍기삼계탕(054-631-4900)은 삼계탕으로 명성이 높은데 요리법도 특이하다. 큼직한 무쇠솥에 100마리에 가까운 닭을 넣고 물을 부은 다음 장작불을 때며 한 시간쯤 푹 삶아 건져낸다. 주문이 들어오면 건져놓은 닭을 뚝배기에 앉히고 국물을 부은 다음 약간의 간을 해 다시 끓여 낸다. 삼계탕에 들어가는 인삼은 풍기 인삼만을 고집하는 것도 특징이다.

박수 선생이 1666년에 세운 만죽재 고택


글∙사진 신성순 여행작가 sinsatgat@hanmail.net